인권위 권고도 외면한 선관위·방미통위… 대통령 지시가 바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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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 선거공보, 후보자 토론 과정에서의 수어통역, 이해하기 쉬운 선거정보(Easy Read), 투표 접근성 등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현안 과제에 대해 선관위 등 국가기관의 소극적 대응이 논란이다. /챗지피티 이미지
▲점자 선거공보, 후보자 토론 과정에서의 수어통역, 이해하기 쉬운 선거정보(Easy Read), 투표 접근성 등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현안 과제에 대해 선관위 등 국가기관의 소극적 대응이 논란이다. /챗지피티 이미지
  • 장애인 참정권은 기본권인권위 촉구에도 미온적 대응
  • 인권위 권고에도 일부 불수용책임 떠넘기기·접근권 외면비판
  • 대통령, 발달장애인 그림 투표용지 검토 지시제도개선 전기 될지 주목

[더인디고] 선거 때마다 장애인의 참정권 침해 문제가 반복되는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의 제도개선 권고에 대해 일부 국가기관이 부정적 또는 소극적인 입장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 1월 30일 선거 과정에서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 제공이 미흡하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에 정책 개선을 권고했지만, 이들 기관의 최근 회신 내용을 검토한 결과, 일부 사항은 사실상 불수용된 것으로 판단했다고 2일 밝혔다.

점자공보는 이행불가”, 발달장애인 투표보조는 사실상 불수용

먼저 선관위가 명백하게 이행불가 의견을 낸 것은 ‘점자형 선거공보의 면수 제한’ 문제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점자형 선거공보를 일반 책자형 선거공보 면수의 2배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점자의 특성상 동일한 내용을 담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분량이 필요해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후보자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인권위는 선거공보가 동일한 내용으로 작성될 수 있도록 종합적인 이행계획을 수립하고, “점자형 선거공보의 면수 제한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권고했지만, 선관위는 이행불가입장을 밝혔다.

인권위는 구체적으로 ▲점자공보 수령 의사를 사전에 확인하면 제작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요약 과정을 생략하면 제작 기간도 단축할 수 있으며 ▲당장 면수 제한 폐지가 어렵다면 단계적 확대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선관위가 국회에 선거 관련 의견을 제출할 권한이 있음에도 법 개정을 이유로 이행 불가 입장을 밝힌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선관위가 이행의견을 밝힌 투표 보조 대상에 정신적 장애인 포함권고 역시 사실상 불수용으로 판단했다.

인권위는 “지적장애·자폐성장애·정신장애 등 정신적 장애가 있는 선거인은 글을 읽거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발달장애인의 경우 단독 기표 과정에서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 있다”며, “이해하기 쉬운 투표용지(Easy Read), 선거공보, 투표안내문 제공과 투표보조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기표 행위 보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리투표를 방지할 대책이 없다”는 이유와 함께 “치매, 섬망, 불안장애 등이 있는 시민들까지 확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는 선관위가 이미 시행 중이라고 밝힌 1층 혹은 승강기 편의시설 등 투표소 접근성 문제 역시 여전히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 제20대 대통령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조사 과정에서 장애인 보조인력 미배치, 가파른 경사로, 높은 턱, 장애인 화장실 미비 등 접근성 문제가 반복적으로 확인됐음에도 선관위가 이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비장애인 시청권 우선?” 수어통역 확대에도 소극적 태도

장애인 참정권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선관위만이 아니다.
방미통위는 최소 2명 이상의 한국수어 통역사를 배치하는 수어통역 방송을 공영방송 전반으로 확대하라는 인권위 권고에 대해 “수어 화면을 2개 이상 분할 배치할 경우 비장애인의 시청권을 저해할 수 있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비장애인의 시청권을 이유로 장애인의 정보접근권 확대를 주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방미통위가 방송사업자, 장애인 당사자, 시청자 등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발화자별 토론 내용 전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점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개선 가능성이 엿보인다.

인권위 역시 방미통위의 답변에 대해 일부 수용으로 판단하면서도, 발화자별 토론 내용을 장애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만난 발달장애인들 투표보조·그림 투표용지 보장해달라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문제에 직접 관심을 보인 점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29일 사전투표일 서울의 한 투표소 앞에서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단체인 한국피플퍼스트 회원 수십 명이 “발달장애인 참정권을 보장하라”는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그림 투표용지와 투표보조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이들은 발달장애인이 후보자 정보와 투표 절차를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을 알리며 이해하기 쉬운 선거정보(Easy Read)와 그림 투표용지 도입 필요성을 호소했다.

▲6·3 지방선거 사전투표를 마친 이재명 대통령이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건넨 손편지를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mbc 유튜브 캡처
▲6·3 지방선거 사전투표를 마친 이재명 대통령이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건넨 손 편지를 읽은 뒤 이야기를 나누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mbc 유튜브 캡처

사전투표를 마친 이 대통령은 현장에 있던 발달장애인들과 직접 인사를 나누고 한 당사자가 건넨 손편지를 받아 읽었다. 이어 관계자로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투표용지는 있지만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림 투표용지 등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설명을 들은 뒤 “발달장애인만 이런 도구가 없느냐”고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관련 비용과 도입이 어려운 이유 등을 검토해 보고할 것을 지시했으며, 그림 투표용지 보조용구에 대해서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본투표 적용 가능성을 검토해보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책임 떠넘기기보다 권리 보장 나서야

인권위가 밝힌 내용에 의하면, 선관위와 방미통위는 장애인의 참정권과 정보접근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려는 자세보다 현행 제도 유지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으로서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선거 환경을 조성해야 할 책무가 있음에도 인권위 권고에 대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거나 국회가 해결할 문제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이는 사실상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실제 선관위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림 투표용지와 이해하기 쉬운 선거정보 제공 등을 둘러싼 소송에서도 2심 법원이 장애인의 정보접근권 보장 필요성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음에도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장애계에선 이를 두고 참정권 보장을 확대해야 할 선관위가 오히려 제도 개선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방미통위를 향해 “장애인의 방송 접근권 확대 요구에 대해 비장애인의 시청권 침해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장애인의 접근권을 비용이나 불편의 문제로 바라보는 오래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인권위 권고가 사실상 외면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그림 투표용지 검토를 지시한 것은 중요한 변화의 신호일 수 있다”며 “장애인의 참정권은 단순히 투표소에 들어가는 권리가 아니라 정보를 이해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이번 논의가 실제 제도개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한편, 인권위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애인의 참정권은 헌법과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라며 “재정적 부담을 이유로 권리 보장을 미루기보다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검토 지시 이후 선관위와 관계 부처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그리고 수년째 제기돼 온 그림 투표용지·이해하기 쉬운 선거정보(Easy Read)·발달장애인 투표보조 제도 논의가 실제 정책과 법·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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