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햇살은 테이블 위에 보드랍게 내려앉았고, 시원한 바람은 손등을 간지럽혔다. 손님들의 수다는 음악과 섞여 공간을 가득 채웠고, 그 소리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빠르게 흘러가던 일상이 이곳에서는 천천히 흐르는 것만 같았다.
여유를 느낀 지 채 얼마나 지났을까. 아까부터 나를 유심히 살펴보던 직원이 다가와 말했다.
“손님, 저희 매장은 한 사람당 1개 메뉴를 시키는 게 원칙이에요. 같이 오신 분도 꼭 주문해주셔야 해요.”
그 말은 나와 함께 온 장애인활동지원사를 향해 있었다. 순간 공기가 묘하게 가라앉았고, 조금 전까지의 평온은 순식간에 흩어져버렸다. 지원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애매한 순간이었다. 내가 사드리기도, 사드시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런 분위기를 읽은 직원은 “주문은 계산대에서 해주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직원이 떠난 뒤 지원사는 괜찮다고 말했다.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말이 정말 마음 편해서 나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결국 직원에게 다가가 설명했다. “저와 함께 오신 분은 국가의 공식 사회복지서비스인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시는 분입니다. 저 같은 장애인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고 계신 분이니, 일반 손님으로 보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직원은 난처한 얼굴로 “규정이라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결국 지원사와 함께 카페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통상 장애인이 지원서비스를 받는 시간 동안 식사를 하거나 어딘가를 함께 이동할 때 발생하는 식비와 교통비는 장애인 이용자가 부담하게 되어 있다. 장애인이 혼자 식사하거나 이동하기 어려워 지원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까지 장애인이 모두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지원사는 장애인활동지원법에 근거해 파견되는 노동자이다. 신체적·정신적 이유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동, 식사, 외출, 목욕 등을 지원한다. 이들은 장애인의 집뿐 아니라 카페와 식당, 병원과 마트 같은 공공장소에도 함께 들어간다. 그런데 이들은 이용자와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서이다. 소비는 개인의 선택이지 업무 수행의 조건이 아니다. 그들은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고 싶은 누군가의 일상을 지원하기 위해 온 노동자들이다.
카페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개인에게 요금을 부과하는 뷔페, 무한 리필 식당과 같은 공간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예식장에서 축의금 50,000원을 내고 식권을 두 장 받기도 참 민망한 일이다. ‘1인 1메뉴’라는 원칙은 너무 쉽게 적용되고, 늘 불편한 선택지 앞에 놓인다. 지원사의 음료값까지 부담하거나, 매번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거나, 아니면 그냥 자리를 떠나는 것. 어느 쪽도 마음이 편치 않다.
물론 카페의 ‘1인 1메뉴’ 원칙이 나쁜 의도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회전율을 유지하고 운영을 안정시키기 위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 테이블을 오래 사용하면서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는 손님이 가게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이해한다. 문제는 그 규칙이 개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데 있다. 지원사와 함께 온 장애인에게는 장벽으로 작동한다.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한 사람은 소비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지원 중인 것이다. 이 맥락을 지운 채 “두 명이 앉았으니 두 개를 주문해야 한다”라는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조적 배제다.
구조적 배제는 누군가를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쁜 의도가 있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특정한 사람이 반복해서 불편과 배제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장애인 접근성을 이야기할 때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점자블록과 같은 물리적 시설을 먼저 떠올린다. 물론 그것들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접근성은 단지 시설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직원이 장애와 지원체계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규정이 누구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는지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해법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몇 가지 작은 변화만으로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첫째, 업주와 직원에 대한 교육이다. 활동지원사 제도가 무엇인지, 이들이 왜 소비 의무 없이 동행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복잡한 지식이 아니다. 한 번의 짧은 교육으로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
둘째, 유연한 규정 설계다. ‘1인 1메뉴’ 원칙을 아예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활동지원사나 간병인과 같은 돌봄 서비스 인력과 동행한 경우, 혹은 유아를 동반한 경우처럼 소비 주체가 명확히 한 명인 상황에 관한 예외 조항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운영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는 방법이다.
셋째, 제도적 안내다. 보건복지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활동지원사 동반 이용 안내’를 음식점·카페 등에 배포하고, 이를 인식한 매장에는 작은 표식이라도 붙일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모든 변화는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고령 인구가 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에서 이러한 유연함은 결국 더 많은 사람의 접근성을 높이고, 누구나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길이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친구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잠시 쉬어가는 평범한 일상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 평범한 일상이 수많은 설명과 양해, 추가 비용을 감수해야만 가능한 일이 되기도 한다. 장애인은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활동지원사는 손님이 아니라 장애인의 일상을 돕는 사람이다. 그 사실을 이해하는 작은 배려 하나만으로도 누군가는 편안하게 자리에 머물 수 있고, 또 누군가는 굳이 떠나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진정한 접근성은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존재와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규칙을 조금 더 유연하게 적용하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다음번에는 활동지원사와 함께 카페에 들어갔을 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끝까지 누릴 수 있는 사회. 그것이면 충분하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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