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RI Korea 주최 부대행사서 ‘디지털 전환과 장애인권’ 집중 조명
-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와 거버넌스”… AI 시대 새로운 과제 제시
- 한국 장애계, CRPD 20주년 유엔 현장서 본격 활동 전개
- 시민사회포럼에선 교차차별·청년대표성·유엔 접근성 문제도 제기
[더인디고] 인공지능(AI)이 장애인의 교육과 노동, 자립생활 등을 확대하는 새로운 권리실현의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장애인이 배제된 채 개발할 경우 기존 차별을 대규모로 재생산할 수 있다는 경고가 유엔에서 나왔다.
뉴욕 현지시간 8일, 한국장애인재활협회(RI Korea)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채택 20주년을 맞아 주최한 ‘사이드이벤트(부대행사)’에서 국제기구, 학계, 장애계 관계자들은 “AI 시대 장애인권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거버넌스와 참여”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토론은 주유엔 대한민국대표부, 국제장애인연합(IDA), 유니세프(UNICEF), 아시아태평양장애포럼(APDF), KOICA, 개발협력연대(DAK) SDGs10 (장애)분과위원회 등이 함께했다.
“AI는 새로운 접근성 의제”… 패러다임 전환 강조
기조강연에 나선 호세 마리아 비에라(Jose Maria Viera) 국제장애인연합(IDA) 사무총장은 AI와 디지털 전환을 “새로운 접근성 의제”로 규정했다.
그는 “과거 접근성은 교육·건강·고용 등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었다면, 이제 디지털 전환과 AI 자체가 장애포용의 핵심 기반이 되고 있다”며 “AI를 단순 규제 대상이 아닌 오히려 사회참여 등 권리의 영역을 확장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AI 거버넌스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 정부뿐 아니라 기술·통신 부처를 비롯해 재정 당국과 민간기업, 연구 및 투자기관, 국제기구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이해관계자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AI 규제와 접근성 보장을 넘어 장애인이 디지털 전환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는 기회이지만, 동시에 차별을 대량 확대할 수 있다”
이날 토론에서는 AI의 양면성도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한나 쿠퍼(Hannah Kuper) 교수는 AI 기반 수어통역, 쉬운 정보 제공, 원격의료나 원격근무 등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디지털 기술은 장애인의 삶을 변혁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위험”도 함께 지적했다.
그는 “디지털 격차와 접근성 부족, 알고리즘 편향, 개인정보 침해, 과도한 감시 등 심각한 위험, 특히 장애인의 인터넷·휴대전화 이용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언급하며, “디지털 전환이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팔 미트라(Gopal Mitra) 유니세프 장애아동 글로벌 총괄 역시 “AI가 사회보장 행정과 서비스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차별적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기존 불평등을 대규모로 증폭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성민 APDF·RI Korea 사무총장은 AI의 과도한 의존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대화형 AI가 비판적 판단 없이 사용자의 부정적 감정에 동조할 경우 자살 충동 등 정서적 취약성을 강화할 수 있다”며 “실제로 국내외에서 관련 우려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AI 시스템이 장애를 여전히 무능이나 결함으로 묘사하고 있다”며, 이러한 데이터 구조가 장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재생산할 수 있는 만큼, AI 전 과정에 당사자 참여와 윤리적 안전장치 마련, ‘데이터 정의’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시대, 강한 권력은 정부? 거버넌스가 핵심“
토론 과정에서 크리스토퍼 구텐베르너(Christopher Gutenbrunner) 글로벌 RI 회장은 “보건과 교육은 정부가 제도 설계를 주도하지만, AI는 글로벌 기업이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통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새로운 권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물었다.
이에 대해 토론자들은 공통으로 “정책과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트라 글로벌 총괄은 “공공조달과 서비스 계약 과정에서 접근성과 포용성을 의무화하는 방식 등 제도적 장치”를 제안했고, 김경란 한국장애인개발원 본부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지능정보화기본법 등을 통한 웹·모바일 접근성 기준 운영, AI 기반 의사소통 지원 기술, 디지털 문해교육 및 보조기기 지원 등 디지털 포용 정책의 확장 사례”를 언급해,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쿠퍼 교수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이 접근성 기술 발전을 주도해 온 사례를 언급하며, “결국 기업과의 적극적인 협력과 설계 단계부터 당사자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해, “정부 중심 거버넌스만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AI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
특별발언에 나선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은 AI 시대 핵심 과제를 “사후 대응이 아닌 설계 단계의 장애포용”으로 규정했다.
최 의원은 “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보편적 권리를 확장하는 열쇠가 될지, 또 다른 장벽을 세우는 칼날이 될지는 결국 제도적 설계에 달려있다”고 전제한 뒤, “처음부터 ‘포용적인 설계’를 위한 가장 시급한 변화는, 기술이 완성된 후에 보완하는 사후 처방식 접근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기술의 기획과 알고리즘 설계라는 시작점에서부터 데이터 편향을 필터링하고 장애 포용성을 내재화하는 법제도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AI 기본법’ 개정 과정에서 취약계층 참여를 제도화하고, 접근권을 국가계획에 반영했다”면서, 자신이 대표 발의한 ‘장애평등정책법’을 강조하며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장애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묻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Nothing About Us Without Us… AI 시대 더 큰 의미로 다가와”
이날 토론자들은 ‘제도적 설계’뿐 아니라 ‘당사자의 참여’에 대해서도 한목소리를 냈다.
리합 모하메드 보레슬리(Rehab Mohamed Boresli) 유엔장애인권리위원은 “디지털 전환을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시민권 구조의 재편”이라며, “다만 새로운 배제 구조를 막기 위해서는 설계 과정부터 당사자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CRPD가 지난 20년간 강조해 온 “Nothing About Us Without Us” 원칙이야말로 앞으로 20년은 물론, AI 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한편 8일 열린 CSO 포럼에선 지난 20년 동안 UN장애인권리협약 제정으로 적지 않은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시민사회 관계자들은 전세계 곳곳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권리 중심 정책 강화, 장애인 당사자 참여 확대 등 인권패러다임의 변화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CRPD 이행 속도는 더디고 장애여성과 장애소녀가 겪는 교차차별 문제나 청년, 정신적 장애인 등에 대한 대표성 등은 포럼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또한 전 세계 분쟁과 난민 위기 속에서 장애인의 취약성이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에이블리즘(Ableism)과 에이지즘(Ageism) 등 구조적 차별 역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UN 기구 역시 수어통역과 실시간 자막 등 접근성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유엔 개혁을 강조한 것도 이번 19차 당사국회의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포럼에서 장애포괄개발협력단 측은 김영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함께걸음미디어센터장과 이리나 RI Korea 대외전략국장이 AI 시대 기회와 위기, 사이버 폭력 등을, 이기환 국제협력팀 대리와 이영서 인턴은 장애인의 대표성을 가로막는 이슈와 대안 등을 공동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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