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PD 제14·15·16조와 국내법의 간극, 그리고 개정 과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이 국내에서 비준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수 법률은 협약 기준과 충분히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에 2023년 12월 출범한 ‘CRPD 국내법 개정 연대’는 규범 반영 지표를 마련하고, 상충 법률의 제·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연대는 39개 법률을 분석·검토해 16건의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모자보건법, 상법, 최저임금법 등 주요 쟁점 법률을 중심으로 사회적 논의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장애인권리협약 채택 20주년을 맞아, 연대는 릴레이 기고를 통해 협약의 국내 적용 필요성과 향후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l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더인디고] 2025년 4월,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으로 매년 6월 22일이 ‘장애인학대 예방의 날’로 법정 기념일에 이름을 올렸다(동법 제59조의20, 시행 2025. 10. 23.).
2026년은 이 날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해다. 예방의 날 지정은 분명 뜻깊은 진전이다. 그러나 기념일 하나가 학대 현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법정 기념일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이 촉발하는 법·제도의 변화에 있다.
한국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을 2008년 비준하였고, 협약은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지닌다. 그런데 CRPD 제14조(신체의 자유 및 안전), 제15조(고문·잔혹한 대우로부터의 자유), 제16조(착취·폭력·학대로부터의 자유)의 기준과 비교할 때,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여전히 상충 또는 흠결이 존재한다. 첫 번째 장애인학대 예방의 날을 맞아, 그 간극을 직시하고 개정 방향을 제안한다.
1. 장애인학대 예방의 날: 법적 의의와 한계
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20은 “범국민적으로 장애인학대의 예방과 방지에 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하여” 예방의 날을 지정하고, 국가·지방자치단체가 행사와 홍보를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6월 22일은 ‘장애인학대 예방주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조항은 노력의무 수준에 그친다. 학대 피해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실질적 지원의무, 피해자 중심의 사법 절차 보장, 시설 내 학대에 대한 독립 감시 체계 등은 규정되지 않았다. 법정 기념일이 형식으로 머물지 않으려면, 예방·발견·대응·회복의 전 단계를 아우르는 법제 정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2. CRPD와의 간극: 세 개의 조항, 세 개의 과제
① CRPD 제14조(신체의 자유 및 안전) : 비자발적 입원·격리의 법적 허용
CRPD 제14조는 장애를 이유로 한 신체의 자유 박탈을 금지하며, 장애의 존재 자체가 구금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 제43조는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만으로 비자발적 입원을 허용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당사자의 이의신청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 나아가 장애인복지법은 피해 장애인이 시설 외 공간에서 안전하게 거주할 권리를 명시적으로 보장하는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 개정 과제: 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9(금지행위) 및 관련 조항에 ‘당사자 의사에 반한 격리·억제를 금지하는 명시적 규정’을 신설하고, 장애인복지법 제60조 등 시설 입소 조항을 폐지하고 지역사회 자립을 명확히 권리로 전환해야 한다. 정신건강복지법 제43조의 비자발적 입원 요건을 강화하여 독립적 사법 심사를 의무화해야 한다.
② CRPD 제15조(고문·잔혹한 대우로부터의 자유) : 시설 내 학대에 대한 독립 감시 흠결
CRPD 제15조는 국가에게 장애인이 고문 또는 잔혹하고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대우를 받지 않도록 효과적인 입법·행정·사법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CRPD Committee)는 한국에 대한 최종견해(2022)에서 시설 내 학대에 대한 독립적 모니터링 기제의 부재를 지적하였다. 현행 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4는 신고의무와 권익옹호기관의 조사권을 규정하나, 조사기관이 시설 운영 주체와 구조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다.
▶ 개정 과제: 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11(지역장애인권익옹호기관) 조항을 개정하여 권익옹호기관에 독립적 조사권을 강화하도록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피조사기관인 복지시설과 장애인복지법 제5장에 같이 기재되어 있는 문제가 지역사회에서의 독립적인 조사권을 만들어가는 배경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③ CRPD 제16조(착취·폭력·학대로부터의 자유) : 피해자 중심 보호 체계의 불완전성
CRPD 제16조는 장애인이 모든 형태의 착취, 폭력,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지며, 회복과 사회 재통합을 위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예방에서 회복까지 연속적 지원 체계를 요구한다.
그러나 현행 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13(피해장애인 쉼터)는 쉼터의 설치를 임의규정(‘둘 수 있다’)으로 두고 있어,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쉼터가 부재하거나 운영이 형식화되어 있다.
▶ 개정 과제: 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12를 개정하여 쉼터 설치를 임의에서 의무 규정으로 전환하고, 피해 장애인의 쉼터(제59조의13)와 사후관리(제59조의12) 조항을 개정하여 온전한 독립 주거와 자립지원, 권익옹호기관 권한 강화를 의무화 해야 한다.
3. 기념일을 법의 실질로: 입법 촉구
첫 번째 장애인학대 예방의 날을 맞는 2026년 6월 22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호 그 이상이다. CRPD 비준국으로서 한국은 협약 제4조(일반의무)에 따라 협약에 상충하는 법률을 개정하고 흠결을 보완할 국제법적 의무를 진다. 법정 기념일은 사회적 관심을 모으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이 실제로 학대받지 않는 사회는, 기념식이 아니라 법과 제도의 견고함 위에 세워진다.
특히 국가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을 형식적으로 설치하고 실질적인 운영에는 관심이 없다. 예산지원에 따른 인력부족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기관마다 편차가 심하고 적극적인 학대지원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충분한 인적물적 기반을 마련하는 시스템과 기관의 독립성, 그리고 관리감독이 철저하게 진행되는 시스템 마련이 급선무이다.
국회와 정부가 예방의 날을 입법 행동의 계기로 삼기를 촉구한다.
4. 제1회 장애인학대예방의날에 열리는 집회를 소개하며 기고글을 마무리한다.
CRPD 제13조(사법에 대한 접근)에 대한 간극
– 통신비밀보호법의 벽: 학대를 입증할 수 없는 현실
첫 번째 장애인학대 예방의 날인 6월 22일(월), 대법원 정문 앞에서는 집회가 열린다. ‘제3자 녹음금지 예외적용을 통한 학대피해 장애인 권리보장 대책위원회’가 주최하는 이 집회의 핵심은 단 하나다. “학대를 증명할 방법조차 없다.“
현재 대법원에는 사건번호 2025도8020이 계류 중이다. 자폐성 장애 아동의 어머니가 특수교사의 학대를 확인하기 위해 녹음기를 아이에게 달아 보냈고, 1심은 이를 유죄의 증거로 인정했지만 2심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을 이유로 증거능력 자체를 부정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2024년 장애인 학대 피해 6,031건 중 10명 중 7명이 스스로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발달장애인이다. 스스로 녹음조차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직접 증거를 확보하라”는 법은, 학대를 방관하는 법이다.
이 문제는 CRPD 제13조(사법에 대한 접근)와도 직결된다.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사법 절차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협약의 요구는, 증거 자체가 원천 배제되는 현실 앞에서 공허해진다.
김예지 국회의원이 집회에 직접 발언자로 참여해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맥락이다. 법 개정을 통해 자기방어가 불가능한 장애아동·중증장애인에 대한 학대 의심 상황에서의 제3자 녹음에 예외를 인정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예방의 날이 요청하는 가장 시급한 입법 과제 중 하나다.

관련하여 탄원운동에 함께하기를 제안드린다.
▶ https://forms.gle/r96BrB4DGai2wd2S9
학대를 받으면 증거가 왜 필요한지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스스로 할 수도 없는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위해 당사자가 아닌 보호자가, 제3자가 학대를 확인한 녹음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학대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된다면, 이 최소한의 확인수단마저 모두 배제된다면, 자기 보호가 어려운 학대피해자는 어떻게 해야됩니까? 이번 탄원은 교사와 종사자의 권리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방어와 의사표현이 어려운 장애아동·발달장애인의 현실을 재판부가 신중히 살펴봐 달라는 절박한 외침입니다. 자기방어를 전혀 할 수 없는 학대피해자에 대해서는 녹음금지에서의 예외를 인정해야 합니다!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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