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21개월을 지나며 부쩍 키가 큰 햇살이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손이 닿는 곳의 물건은 그곳이 책상이든 식탁이든 싱크대이든 만져보고 꺼내보고 옮겨놓는다. 수도꼭지의 물은 틀어놓으면 잠그고 잠가놓으면 다시 틀어놓는다. 밥은 대체로 잘 먹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먹고 싶은 것은 아빠 자리에 놓인 것들이다.
아내도 나도 특별히 위험하거나 큰일 날 것이 아니라면 하고 싶은 것들은 허용해 주자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언제라도 모든 것을 다 허락해 줄 수는 없다. 부엌의 그릇이나 냄비를 궁금해하는 마음은 알지만, 떨어뜨리거나 깨질 수 있는 것들을 언제 만지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적당한 선에서 정지 신호를 보낸다. 화장실이나 테라스에 들어가고 싶은 호기심은 알지만 바닥이 미끄러울 수 있으므로 안전한 장치를 설치한 이후에만 출입을 허가한다. 아빠의 옷이나 엄마의 물건들을 들고 다니는 녀석이 귀엽기는 하지만 어른들도 정리할 수 없을 만큼의 혼란 상태가 예상되면 아기의 행동을 제지한다. 아빠가 먹을 음식이라도 쌀밥이나 식빵같이 아기도 먹을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나누어 줄 수 있지만 본인의 밥을 먹지 않아서 영양의 불균형이 생길 것 같다면 그 나눔의 한계를 정한다.
세상 모든 걸 다 나눠줄 것 같던 부모에게서 불허의 사인이 떨어질 때마다 햇살이는 가장 슬픈 표정으로 울음을 토한다. 어른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현재 시점에서 작은 아이에겐 가장 큰 욕구를 제한받는 장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흔하디흔한 유리그릇 하나를 만지지 못하게 했지만, 햇살이에겐 눈앞에서 금은보화가 사라지는 느낌이었을지 모른다. 아빠의 밥그릇에 담긴 쌀밥 몇 숟가락을 먹고 싶은 아기의 마음은 나에게 있어 세상 가장 귀한 음식을 먹을 기회를 박탈당한 것과 비길 만할 것이다. 물놀이를 멈추는 것도, 장난감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것도 21개월 아기가 담담하게 받아들이기에는 그 욕구의 크기가 너무나 크다.
생각해 보면 우리를 닮은 그 녀석의 욕구는 언젠가의 부모의 욕구였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 이유식 대신 아버지의 밥그릇을 탐했을 것이고 놀이를 멈추는 것이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런 대상과 행위들에 아이처럼 큰 욕구를 느끼지 않는 것은 자라고 경험하는 시간 동안 그 욕구를 충분히 채우고 해결했기 때문이다. 난 많이 먹고 싶은 음식을 당장 먹지 못한다 해도 다른 것들로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물놀이를 하지 못한다는 것에 크게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전히 내게도 큰돈이나 시력처럼 반사적이고 원초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욕구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런 대상들 앞에서 아이보다 초연할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이 가지지 못함으로 인한 간절함일 뿐 내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빠르게 자라는 햇살이가 오늘은 물놀이의 끝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수도꼭지를 잠갔다. 블록을 정리하고 잠이 들 때에도 큰 저항이나 울음을 보이지 않는다. 이 녀석도 그것과 관련한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졌거나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 중일게다.
견과류가 너무도 먹고 싶었던 지난주에 커다란 믹스넛 한 통을 사무실에 사다 놓았다. 쉬는 시간마다 한 줌씩 집어 먹는 간식의 맛이 너무나 고소했다. 오늘 책상을 무심코 정리하다가 며칠째 견과류 통에 손이 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욕구라는 것들은 대부분 이루고 나면 허망할 만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대부분이다.
목표를 정하고 목적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그것이 당장 혹은 영영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크게 슬퍼할 필요는 없다. 내게 눈이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준다거나 수천억의 자산을 가질 기회가 생긴다거나 한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그런 것들을 가지기 위해 아기처럼 울 필요는 없다. 햇살이가 집착하는 유리병 옆에 그 녀석이 놓치고 있는 훨씬 더 재미난 세상이 있는 것처럼 내겐 가지고 싶지만 가지지 못하는 것보다 이미 누리고 있고 앞으로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더 많다. 가지지 못한 것들로 인해 하루를 우울하게 지내는 사람은 그것을 소유하게 된 이후에 또 다른 가지지 못하는 것으로 다른 하루를 슬픔으로 채울 것이다. 많은 것을 가지고도 작은 하나 때문에 울고 있는 아기의 모습이 나의 지금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집착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더인디고 THE INDG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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