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폭행 장면과 범행 수법은 반복됐지만 구조적 원인과 국가 책임은 사라져
- 경찰·보호자·전문가가 대신 말하는 언론… “장애인을 보호 대상 아닌 권리의 주체로 다뤄야”
[더인디고] 장애인은 방송뉴스에서 폭행당하고, 사기를 당하고, 시설에서 학대받는 피해자로 반복해 등장한다. 그러나 장애인이 왜 범죄의 표적이 됐는지, 피해를 예방해야 할 제도는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대표 성현정) 부설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는 방송뉴스와 시사프로그램에서 보도된 장애인 대상 범죄 관련 보도 121건을 분석한 「장애인은 왜 반복해서 피해자로 등장하는가?―폭력·폭행·사기 피해자 보도에 나타난 장애인 재현 모니터링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장애인 대상 범죄의 발생 건수나 유형을 정리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언론이 범죄 피해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을 어떤 존재로 묘사하고 있는지, 당사자의 목소리와 사건의 구조적 원인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지를 장애인 인권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분석 결과 장애인은 폭행, 사기, 학교폭력, 성폭력, 시설 학대, 정신병원 인권침해, 가정 내 경제적 착취 등의 피해자로 주로 재현됐다. 사건의 충격적인 장면과 범행 수법, 가해자 검거와 처벌 과정은 상세하게 전달됐지만, 장애인이 반복적으로 범죄에 노출되는 사회적 배경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상당수 보도는 이러한 환경보다 개별 가해자의 잔혹성과 도덕적 일탈을 부각했다. 시설 학대는 특정 종사자의 폭력으로, 학교폭력은 가해학생의 일탈로, 경제적 착취는 가족이나 지인의 탐욕으로 설명됐다. 시설을 감독하지 못한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학교의 예방·보호체계, 장애인 고용과 자립을 지원하지 못한 공공제도의 한계는 보도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다. 이 같은 보도는 장애인을 스스로 판단하거나 사회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재현하고, 장애인의 다양한 삶과 시민성을 가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장애인 사건인데 장애인은 말하지 못했다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거의 반영되지 않은 점도 핵심 문제로 확인됐다. 대부분의 보도는 경찰, 보호자, 학교 관계자, 시설 관계자, 변호사와 전문가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정작 피해를 경험한 장애인이 무엇을 겪었고, 어떤 지원과 변화를 요구하는지는 제한적으로 소개됐다. 발달장애인과 청각장애인, 언어장애인 등은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인터뷰에서 배제되거나 보호자가 대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의사소통보조기기인 AAC, 쉬운 정보, 수어·문자통역과 충분한 인터뷰 시간이 제공된다면 더 많은 장애인이 자신의 경험을 직접 설명할 수 있다. 언론이 이러한 지원을 마련하지 않은 채 당사자 인터뷰가 어렵다고 판단한다면, 장애인은 자신의 피해를 다루는 뉴스에서도 발언권을 갖지 못한다. 장애인을 대신해 말하는 관행이 반복될수록 장애인은 보도의 주체가 아니라 보호와 설명의 대상으로 남게 된다.
피해 장면보다 실패한 제도를 물어야
보고서는 해외 취업 사기 보도에서 범행 수법은 구체적으로 설명됐지만 장애인이 불확실한 취업 제안에 의존하게 된 고용 차별과 정보 격차는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장애학생 학교폭력 보도에서도 폭행 장면과 수사 과정이 반복됐으나 학교의 예방체계, 특수교육 지원인력, 피해학생 보호조치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시설 학대 역시 종사자의 일탈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시설 중심 복지체계와 폐쇄적 운영구조, 행정기관의 지도·감독 실패는 가려졌다. 장애를 범죄 피해의 원인처럼 연결하는 보도도 경계해야 한다. 장애인이 사기를 당한 이유를 판단능력 부족으로 단순화하거나 시설 내 폭력을 장애인의 ‘문제행동’과 연결하면 피해의 책임이 장애인에게 전가될 수 있다. 범죄의 원인은 장애 자체가 아니다.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환경과 지원체계의 부재, 이를 악용한 가해자의 행위, 피해를 예방하고 감독하지 못한 국가와 기관의 책임이 핵심이다.
모니터링센터는 장애인 대상 범죄 보도가 사건 중심에서 구조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애인을 피해자로만 재현하지 않고 권리의 주체로 다루며, 의사소통 지원을 통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피해자의 신원과 장애 특성, 가족관계 등을 불필요하게 노출하는 등의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 보도된 이후 피해자가 안전하게 분리됐는지, 회복과 법률지원을 받았는지, 관련 제도와 감독체계가 실제로 개선됐는지를 추적하는 후속보도도 필요하다.
안형진 책임연구원은 “장애인 대상 범죄 보도는 피해 사실과 가해자 처벌을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언론은 장애인이 왜 범죄에 노출됐는지, 피해를 막아야 할 제도가 왜 실패했는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함께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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