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호의 마음가짐] 눈 맞추고 삼십 년을 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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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틈으로 지는 저녁노을/이미지=제미나이
▲블라인드 틈으로 지는 저녁노을/이미지=제미나이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최병호 집필위원] 한 병원을 삼십 년 넘게 다녔다. 교복 입은 앳된 청소년이었다가, 풋풋한 청년을 거쳐, 이제는 차분한 사십 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환자인 나만 나이가 드는 건 아니었다. 교수님들도 하나둘 은퇴하셨다. 물리치료사 세 분은 치료실에서 함께 보낸 세월을 담아 책을 내셨다.

엄마는 선생님께 직접 그 책을 건네받았다. 이십 년 전쯤 찍은 사진을 작품으로 만들어 액자에 넣어두었다는 일화도 들으셨단다. 휠체어 탄 내 곁에서 키를 낮춰 눈높이를 맞춘 선생님들을 그린 캐리커처가 눈에 익었다. 그 밑에 적힌 글을 서너 번 읽고서야 겨우 숨을 골랐다.

“병호야! 너와 동행하면서 행복했어. 어머님께도 사랑을 배웠어.” 그 얼굴들이 수채화로 그려지고, 목소리가 테이프처럼 되감겨 재생됐다.

책을 덮고 몽글몽글한 추억에 잠겼다. 때마침 울리는 알림음에 아련함을 잠시 누르고, 환우 대화방을 열었다. 화면에 뜬 글자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친한 동생이 바뀐 심장약을 먹고 온종일 가슴이 뛰어서 식은땀을 흘렸다고 했다. 그 후로는 심박동이 조금만 빠르게 느껴져도 신경이 곤두섰다.

몇 주가 지나고, 진료를 받으러 간 날에 그 걱정을 내비쳤다. 나를 새로 맡은 재활의학과 교수님은 모니터에 띄운 기록을 무심히 살피다가 고개를 들었다. “당사자와 가족들이 보수적일 때가 많아요. 좋은 약이 나오면 잘 써야죠. 근육병 환자 중에 큰 문제가 나타난 사례는 없었고요.” 조곤조곤 전하는 말에 반박할 구석이 보이지 않아서, 티 나지 않게 마른침만 삼켰다.

계절이 바뀌고, 입원한 병실에서 재활의학과 교수님을 다시 뵈었다. “병호 씨가 밥 먹을 때 자주 사레들리고, 한 시간 넘게 걸린다면서요. 그러면 위에 관을 꽂는 시술을 해야죠.” 나도 모르게 낯빛이 파래지고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곁에 선 엄마를 괜히 쳐다봤다. 교수님이 건네는 담담한 눈길과 말을 마음에 눌러 담으며, 굳은 몸과 마음을 달래려 애쓸 뿐이었다.

맞은편 환자의 간병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창가에 오십 대 중국 동포 여성이 보였다. 내 또래 근육병 남성을 돌보는 분이었는데, 그는 목과 위를 뚫은 채 온종일 누워 지냈다. 그를 살피는 눈이 진지하고, 만지는 손이 세심했다. 내 입이 바짝 마르고 등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밤새 쳐놓은 커튼을 응시하거나 손을 꼼지락대며 시간을 보냈다. 이튿날 늦은 오후, 병실이 한적해졌을 때 엄마가 그녀에게 인디고에 실린 내 칼럼 한 편을 보여줬다. 그녀는 보조 침대로 가서 돋보기를 썼다. 스마트폰 화면을 검지로 내리며 글을 읽더니, 촉촉해진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말없이 그녀를 보았다. 칠 년 전 심장병으로 가슴을 부여잡던 아버지를 맡았던 간병인이 떠올랐다. 병문안 온 내게 “건강 챙기고 맛있는 거 먹으라”며 돈 봉투를 손에 꼭 쥐여주시던 분이었다. 내가 병원에 다닌 삼십 년 동안,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 동포들은 점점 늘었다. 오늘도 그들의 눈과 손이 환자들의 안색을 살피고, 온몸을 씻기고 어루만진다.

“병호 씨와 어머님께서 사시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에요. 저도 시를 좋아하고, 글을 적으면서 마음을 달래요.” 그녀는 말하는 내내 미소를 잔잔히 머금었다. 우리 기분도 살짝 개었다. 내려둔 블라인드 틈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며 노을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더인디고 THE INDIGO]

페이스북에 질병과 장애를 겪는 일상과 사유를 나누는 근육장애인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의 영토를 넓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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