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행 대중교통의 날은 장애인 등의 교통약자의 존재를 지우는 날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이 국내에서 비준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수 법률은 협약 기준과 충분히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에 2023년 12월 출범한 ‘CRPD 국내법 개정 연대’는 규범 반영 지표를 마련하고, 상충 법률의 제·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연대는 39개 법률을 분석·검토해 16건의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모자보건법, 상법, 최저임금법 등 주요 쟁점 법률을 중심으로 사회적 논의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장애인권리협약 채택 20주년을 맞아, 연대는 릴레이 기고를 통해 협약의 국내 적용 필요성과 향후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l 김주현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정책국장

[더인디고] 오늘(7월 22일)은 ‘대중교통의 날’이라고 한다. 세계 차 없는 날(9월 22일)을 계기로 국내 몇몇 지자체에서 매월 22일을 대중교통의 날로 지정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에는 2016년 7월부터 매월 넷째 수요일로 변형해, 오늘로 꼭 10년이 되는 날이며, 공교롭게 애초 취지와 같은 22일이기도 하다.
이 캠페인은 도로 혼잡과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해 승용차 이용을 줄이고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날 서울시, 대전시 등은 시청과 산하기관의 주차장을 폐쇄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 캠페인에는 전제가 있다. 바로 ‘대중교통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제는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 등의 교통약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정기 버스 탑승 시위를 재개했다. 2004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정 합의로 중단했던 시위 방식이 22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매주 수요일 아침, 서울 혜화로터리 버스정류장에서 활동가들은 저상버스가 오면 경사로로, 계단식 버스가 오면 휠체어에서 내려 계단을 기어올라 탑승을 시도한다. 빗속에서도, 시민들의 혐오 섞인 욕설 속에서도, 시위 정류장으로부터 버스를 우회시키는 경찰의 방해 속에서도 이 투쟁은 이어지고 있다.
2001년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시작하던 그때에도, 법 제정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장애인들에게 ‘버스 타기’는 출·퇴근이나 나들이와 같은 일상의 행동이 아니라, 그러한 평범한 일상을 쟁취하기 위해 신체적, 심리적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행할 수밖에 없는 직접행동인 것이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제20조 ‘개인의 이동’은 장애인이 스스로 선택하는 방법과 시기에,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당사국이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양질의 이동보조기구·보조공학·인적 자원에 대한 접근을 촉진하고, 이동기술훈련을 제공하며, 관련 업체가 장애인 이동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도록 장려할 의무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이동편의 증진법은 이동을 ‘편의제공’의 시혜적 틀에 머물게 함으로써, 협약이 요구하는 ‘자기 선택에 따른 이동의 자유’와 ‘비용의 감당 가능성’이라는 핵심 요소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흠결을 안고 있다.
전장연에 따르면,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44.4%에 그치고,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의 최대 대기시간은 경북 경산 기준 12시간 9분에 달한다. 시외·고속버스 중 휠체어 이용자가 탈 수 있는 차량은 단 한 대도 없다. 이는 장애인이 ‘스스로 선택하는 시기’에 이동할 자유 자체를 봉쇄한다는 점에서 협약 제20조와 정면으로 상충한다. 또한 대도시의 저상버스 및 특별교통수단 도입률이 높아지는 동안에도 지방 소도시와 도서산간 지역은 사실상 방치되어 있어, 이동권 격차는 지역 격차의 또 다른 이름이 되고 있다. 이는 접근성 형평이라는 협약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내 이동권 법제 정비는 이러한 협약 불합치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전장연이 국회에 계류 중인 ‘교통약자이동권보장법’ 전면개정안을 통해 요구하는 것은, 협약의 정신에 따라 이동을 ‘편의’가 아닌 ‘기본권’으로 재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된 교통약자이동권보장법 전면개정안의 연내 통과가 최우선 과제다. 노선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면서도 도로 구조나 시설 미비를 이유로 예외를 폭넓게 인정해온 현행 규정을 손질하고, 시외·고속버스에도 휠체어 탑승설비 도입 로드맵을 명시해야 한다. 아울러 법령명과 조문 전반에서 ‘편의’를 ‘권리’로 바꾸는 문구정비를 통해 법률이 상징적 의미를 넘어 실질적 정책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특별교통수단의 법정 운행 대수와 운영 인력을 실질적으로 확충하고, 대기시간 단축을 위한 구체적 목표와 이행 점검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서울시의 ‘서울동행맵’과 같은 저상버스 예약·모니터링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고, 승차 거부 사례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제재할 수 있는 체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도시와 지방 간 저상버스 도입률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국고보조금 차등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지역 간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
대중교통의 날이 ‘승용차 대신 버스를 타는 날’에 그친다면, 처음부터 버스를 탈 수 없었던 이들의 존재는 지워진다. 이 캠페인이 온전한 의미를 가지려면, 그날 하루만이라도 누가 여전히 버스 앞에서 발이 묶여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이동은 편의가 아니라 권리다. 그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한, 대중교통의 날은 지워진 존재에 대한 차별을 드러내는 ‘대중교통 차별의 날’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전장연이 출근길 버스 타기 투쟁을 전개하는 매주 수요일을 ‘대중교통 차별철폐의 날’로 지정하는 게 어떨까?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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