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시선]② 돌봄을 지키는 또 다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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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권과 생존권이 대립이 아닌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함께 지켜져야 할 공동의 가치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챗지피티
▲노동권과 생존권이 대립이 아닌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함께 지켜져야 할 공동의 가치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챗지피티
  • 노동권과 생존권의 충돌, 사회적 해법 찾을 때
  • ILO ‘최소서비스원칙이 던지는 시사점
  • 청암재단을 넘어 돌봄현장의 새로운 기준 논의 시작해야

[더인디고] 청암재단 노조 파업이 던진 가장 큰 질문은 노사갈등 자체를 넘어선다.

돌봄현장에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과 장애인의 생명·안전이 충돌할 때, 우리 사회는 어떤 원칙으로 이를 조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이번 사태는 특정 사업장의 노사분쟁으로 끝날 수 있지만, 같은 질문은 다양한 서비스 현장에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시대에서 돌봄은 더 이상 특정 시설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생명과 안전, 노동자의 권리, 그리고 국가의 돌봄 책임이 함께 만나는 공공의 영역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논의를 해야 할까! 논의의 출발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기존 제도나 국제사회 흐름을 돌봄 영역으로 확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동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생명을 지키는 원칙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핵심적인 노동기본권으로 인정한다. 동시에 업무가 전면 중단될 경우 국민의 생명이나 안전이 직접 위협받는 분야에서는 ‘최소서비스(Minimum Service)’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소서비스가 파업을 금지하거나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노동자의 파업권은 최대한 보장하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최소한의 업무는 유지할 수 있도록 노사협의, 나아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기준을 마련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국가마다 제도는 다르지만 공통된 원칙은 분명하다. 노동자의 권리와 국민의 생명·안전은 어느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보호해야 하는 권리라는 점이다.

영국에서도 이러한 논쟁은 지속돼왔다. 보수당 정부는 2023년 「최소서비스법(Minimum Service Levels Act)」을 제정해 일부 공공영역에서 최소서비스를 법률로 강제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파업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반발했고, 이후 집권한 노동당 정부는 2025년 최소서비스법 폐지 절차를 추진했고 관련 법률은 폐기됐다. 영국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법률에 의한 강제보다 노사 간 자발적 협정(Voluntary Agreements)​과 예외업무 지정(Derogations)​을 통해 응급의료와 환자 안전에 필요한 서비스를 유지하는 방식이 운영되고 있다. 이는 최소서비스가 반드시 국가의 강제명령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노사 간 신뢰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돌봄이 중단될 경우 대안 논의를 시작할 때

우리나라 역시 관련 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은 병원사업과 철도, 전기, 수도, 통신 등 국민의 일상생활과 생명·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를 필수공익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병원의 경우에는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통해 응급의료 등 최소한의 업무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거주시설 등 돌봄현장은 이러한 제도 밖에 있다. 다만 돌봄현장 등을 곧바로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자는 주장 역시 신중해야 한다. 필수공익사업 지정은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할 수 있는 만큼 ILO 역시 엄격한 기준을 요구한다.

중요한 것은 당장의 필수공익사업 지정 여부가 아니라 돌봄이 중단될 경우 이를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는 일이다.

#사회적 대화의 의제는 무엇이어야 하나

청암재단은 ‘최소 안전업무 유지협정’과 함께 장애계, 노동계,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이는 특정 사업장의 노사협상을 넘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무엇을 논의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의 의제 역시 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돌봄현장의 최소 안전업무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파업 상황에서도 이용자의 안전을 보장할 비상 돌봄체계는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지자체와 국가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노사협의를 통해 돌봄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논의 과정에는 대체인력 문제도 포함될 수 있다. 다만 현행법은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한 외부 대체인력 투입을 금지하고 있는 만큼, 노동자의 권리를 훼손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공의 돌봄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

청암재단 파업은 언젠가 끝나지만, 돌봄은 내일도 계속된다.

이번 사태가 남긴 가장 큰 과제는 누가 옳고 그르냐를 가리는 일을 넘어 노동권과 생존권이 충돌하는 돌봄현장에서 두 권리를 함께 지킬 사회적 원칙을 만드는 일이다.

청암재단이 던진 질문은 이제 우리 사회 모두의 질문이 됐다.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함께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 이제 그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이유는 없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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