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우리 학교는 여름마다 전교생이 수련회를 떠난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수련회는 물놀이, 레크리에이션, 장기자랑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일정을 채운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평소 경험하기 힘든 활동들을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 주목적인데 나를 포함한 교사들에게도 새로운 배움의 시간이 될 때가 많다. 암벽을 타고 양궁 과녁에 활을 쏘았던 것도 모두 여름 수련회 덕분이다.
올해는 네덜란드의 교육학자 브루겐 박사가 고안해 만든 카프라 블록 체험을 했다. 카프라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3:5:15의 비율로 만들어진 작은 블록을 접착제나 자석 없이 오직 중력과 무게중심을 이용해서 쌓는 교구이다. 가장 넓은 면이 바닥에 닿도록 하는 눕혀 쌓기를 비롯해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까지, 총 3가지 방법으로 작은 조각들을 쌓으면 수만 가지의 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선생님들과 학생들 앞에 여러 박스의 카프라 블록이 놓였고, 지도사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블록 쌓는 방법을 연습했다. 의욕과는 다르게 블록은 쉽게 의도한 모양으로 높이 쌓아지지 않았다. 우리 중에는 꽤 높게 블록을 쌓아 올린 사람도 있었는데, 그중 대부분은 조금 더 쌓으려고 시도하던 중 블록 전체가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했다.
처음 받아 든 과제인 눕혀 쌓기 미션에서 다른 도전자들이 30층 넘게 블록을 쌓아 올리는 동안, 난 온갖 꼼수만 생각하다가 10층도 올리지 못하고 종료 시간을 맞이했다. 두 번째 과제인 가로 쌓기 과제에서는 8개의 블록을 쌓았는데, 당연히 등수 안에 들지 못할 거라는 생각으로 조금 더 쌓으려다가 블록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가장 높이 쌓은 도전자가 7개의 블록을 쌓았다는 것을 알았을 땐 굉장히 허탈했다.
마지막 연습 과제인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가로 쌓기하여 앉은키 넘기기에서는 어찌어찌 목표를 달성했지만, 다른 도전자들의 높이를 따라잡으려다 또다시 블록이 전부 무너져 버렸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망연자실하기보다 남은 시간 동안 다시 쌓기를 택했고, 처음 쌓았던 높이와 거의 비슷하게 블록을 쌓아 올렸다.
학생들과 나는 앞을 볼 수 없어서 다른 선생님들처럼 빠르게 블록을 쌓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여러 번 반복해서 블록을 만지다 보면 나름의 방법으로 각자의 속도에 맞게 블록을 쌓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이의 속도나 높이를 신경 쓰지 않고 착실하게 나의 블록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블록이 무너져 내렸을 때 실망하지 않고 천천히 다시 쌓는 것이었다.
지도사 선생님이 제시해 준 목표치가 있긴 했지만, 나는 주어진 조건에서 남들과 같은 속도로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고, 내가 할 수 있는 나름의 목표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쓰러지는 블록들 속에서 때로는 천천히 쌓아 올린 나의 블록이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도 있었고, 한순간에 우르르 무너져 버린 블록들을 다시 쌓아 올리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언제나 의미 있었다.
개인 과제를 모두 마친 우리에게는 힘을 합쳐 성곽 쌓기를 하는 마무리 미션이 주어졌다. 조금 느린 사람도 있었고 서투른 사람도 있었지만, 서로 끌어주고 도와주는 시간 속에 멋진 하나의 성이 완성되었다.
나는 오늘도 내 삶의 카프라를 쌓는 중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다른 이들의 높이와 비교하는 것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때때로 우르르 무너져 내릴 땐 다시 쌓을 용기마저 잃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난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한 번 블록이 무너졌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시간에서 우리는 함께 블록을 쌓고 있다.
가로로 쌓을 수도 있고, 세로로 쌓을 수도 있고, 마음 편하게 눕혀서 쌓을 수도 있다. 얼마만큼 높게 쌓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쌓았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도 나만의 블록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G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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