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호의 마음가짐] 만지는 삶과 눈감을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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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을 지키는 강아지의 온기가 전해진다./ 이미지=챗GPT
▲곁을 지키는 강아지의 온기가 전해진다./ 이미지=챗GPT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최병호 집필위원] 반려견 다롱이는 이웃 아파트에서 태어난 네 마리 새끼 중 하나였다. 긴 머리에 마흔 중반쯤 된 여성이 웅크린 새끼를 품에 꼭 안고 현관으로 들어왔다.

“울 아이 꼭 맡아주세요. 따뜻한 분들이라고 들었어요.”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우리 집을 소개해준 아주머니가 풀 죽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주었다. 여성은 숨을 고르고 잠시 망설이다가, 품에 안은 새끼를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 검은 눈망울로 영문도 모른 채 오들오들 떠는 강아지가 안쓰럽고도 앙증맞아서, 나는 그 모습을 오래 눈에 담았다.

앞서 키운 말티즈 아롱이와는 십삼 년을 함께했다. 내가 호흡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 쉭쉭 소리에 고개를 갸웃대는 모습에 둘러앉은 온 가족이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침대에 누워 모니터를 올려다보며 글을 쓰는 내 얼굴에 코를 바짝 대고 안색을 살피던 녀석. 병들어 고개도 못 가누게 되었을 때는 물에 갠 사료를 먹여주었는데, 한 달을 버티다가 동생 품에서 눈을 감았다.

3월 봄에 아롱이를 하늘로 보낸 뒤, 여동생은 강아지 한 마리를 또 데려오자고 두 계절 내내 노래를 불렀다. 그 진심이 통해 10월 가을, 새로 만난 치와와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다롱아, 너도 이제 우리 식구가 되었으니, 떨어지지 말고 꼭 붙어 지내야 해.”

우리 집에 적응한 다롱이가 거실을 가로지르며 동생과 뛰노는 장면이 눈에 선하다. 나는 소파에 누워 고개를 돌려 둘을 보며 히죽 웃었고, 잡힐 듯 말 듯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곤 했다. 열린 베란다 창으로 바람이 솔솔 불어왔고, 햇살은 거실 바닥에 길게 비쳤다.

나를 안거나 업어서 옮길 때마다 저도 나를 지키듯 따라다닌다. 꼬리를 흔들고 몸을 빙글빙글 돌면서 좋은 기분을 맘껏 표현하고, 가볍게 짖는다. 내가 식탁에 앉을 때는 그 아래 놓인 제 집에서 배를 까고 뒹굴고, 침대에 누울 때는 발치에 깔아둔 담요에서 쌔근쌔근 잠을 청한다.

새끼 때는 내 배 위로 뛰어올라 아프게 하더니, 저를 만져달라며 주둥이를 손안으로 파고들었다. 내 느린 생활에 제 몸을 맞춰가며, 자고 깨고 먹고 쉬는 순간마다 곁에서 숨을 불어넣었다. 벌써 열여섯 살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제는 소파와 침대에 오를 때 발판을 놔줘야 하는데, 그 힘겨운 동작을 물끄러미 지켜보게 된다.

나는 아픈 몸으로 쉰 살에 가까워지고 있다. 돌보는 손이 자주 가고, 눕는 시간이 길어졌다.

터치패드 위에 올려놓은 엄지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인다. 남은 힘이 다 빠지면 안구마우스로 바꿔야 한다. 다롱이는 내 얕은 한숨을 듣고 작은 몸을 일으켜 왼팔을 살살 핥아준다.

겨울 끝자락, 다롱이가 크게 아팠다. 두 살 때 심하게 앓은 뒤로 처음이었다. 엄마가 주사기에 미음과 약물을 넣어 아기를 어르듯 먹였다. 엄마 품에 안겨 혀를 날름거려 받아먹던 그 모습을, 나는 오래 눈에 담았다.

아롱이가 말없이 견뎠던 마지막 한 달간의 간병 장면과도 포개진다. 회복한 다롱이의 고른 숨결을 들으며 나는 긴장을 푼다. 떠나는 생명이 남겨질 생명을, 만지는 존재가 눈감을 존재를 놓지 않으면 — 그렇게 영원히 살게 되는 걸까.

[더인디고 THE INDIGO]

페이스북에 질병과 장애를 겪는 일상과 사유를 나누는 근육장애인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의 영토를 넓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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