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취약계층’에 묶인 장애시민, 피해 통계조차 없다
- 쉼터·재난문자는 있지만… 이동과 정보접근은 여전히 사각지대
- 보호 대상에서 정책 설계의 주체로, 장애포괄적 기후정책 필요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지난 기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후위기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폭염과 집중호우, 태풍과 산불은 누구에게나 위험하지만 장애시민은 이동과 정보접근, 건강관리, 돌봄체계의 차이로 더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정부의 기후위기 정책은 이러한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는 장애가 있는 시민을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2026년 5월 15일부터 8월 8일까지 전국에서 3,237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28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환자와 사망자 가운데 장애시민이 몇 명인지는 국가 온열질환 공개통계로 확인할 수 없다. 정부가 장애시민을 ‘폭염 취약계층’으로 분류해 보호대책을 시행하면서도 실제 피해 규모를 보여주는 장애분리통계는 공개하지 않는 셈이다.
정부의 국가 기후위기 적응대책 역시 취약계층 보호를 주요 과제로 제시한다. 폭염·한파 대응과 건강영향 감시, 에너지 비용 지원, 주거환경 개선 등이 포함된다. 장애시민도 보호 대상이다. 문제는 장애시민 대부분이 ‘취약계층’이나 ‘건강민감계층’이라는 포괄적인 범주 안에서 다뤄진다는 점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시각장애가 있는 김 아무개 씨는 더인디고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폭염 재난을 겪으면서 느꼈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재난문자는 계속 오지만 ‘어느 지역을 피하라’거나 하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비가 많이 오거나 폭설이 내리면 평소 다니던 길도 점자블록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 난감하죠.”
정부가 재난문자를 몇 건 발송했는지는 정책 실적이 될 수 있지만 장애시민에게 중요한 것은 정보를 받은 뒤 안전하게 행동할 수 있는 적확한 정보다. 시각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음성지원과 청각장애가 있는 시민에게는 수어·자막,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정보가 함께 제공돼야 하는 이유다. 재난정보는 전달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정보를 이해하고 스스로 행동하거나 필요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정보접근권이 보장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통계다. 정부는 온열질환자와 사망자를 집계하지만 장애가 있는 시민의 피해는 통계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이러다 보니 활동지원 이용 여부, 전력 의존 의료기기 사용 등이 피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 길이 없다.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정책의 우선순위와 예산의 근거, 대책의 효과 역시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이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 장애시민의 참여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장애계의 한 관계자는 “기후위기 대응계획과 재난 매뉴얼은 장애시민의 일상과 직접 연결되지만 당사자가 정책을 기획하고 평가하는 구조는 여전히 제한적”이라면서, “장애시민을 보호 대상으로만 규정하고 정책 설계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현장에서 필요한 이동·정보·돌봄의 조건을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은 위험상황에서 장애시민의 보호와 안전을 보장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다. 이는 장애시민을 ‘취약계층’ 목록에 넣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접근가능한 정보와 대피·이동지원, 지역사회 기반 지원, 정책결정 과정의 참여까지 함께 보장해야 한다. 정부가 기후위기 정책을 확대하는 것은 필요한 변화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의 말미에 명분용 정책을 추가하는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장애시민의 이동과 의사소통, 돌봄과 건강, 전력 의존성, 주거조건을 기준으로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다.
정부 정책 속 장애시민은 더 이상 ‘취약계층’이라는 한 단어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폭염 속에서 이동해야 하고, 재난정보를 이해해야 하며,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살아가는 구체적인 시민으로 등장해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을 언급하는 기후정책에서 장애인의 삶을 반영하는 기후정책으로 넘어갈 수 있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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