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취약계층 보호’를 넘어 장애인의 삶을 기준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 쉼터·전력·돌봄·재난정보까지… 장애유형별 대응체계 필요
- 보호 대상에서 정책 결정의 주체로, 장애포괄적 기후정책으로 전환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니다. 폭염과 집중호우, 산불과 태풍이 일상이 되면서 정부도 대응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앞선 두 편에서 확인했듯 장애인은 여전히 ‘취약계층’이라는 포괄적인 범주 안에서 다뤄진다. 이제 질문은 ‘장애인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서 ‘장애인을 기준으로 기후위기 정책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첫 번째 변화는 ‘통계’다. 온열질환과 재난 피해를 조사할 때 장애 여부와 장애유형뿐 아니라 독거 여부, 활동지원 이용, 전력 의존 의료기기 사용 등 실제 생활조건을 함께 파악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피해가 집중되는지 알아야 예산과 지원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재난위험경감사무국(United Nations Office for Disaster Risk Reduction, UNDRR)은 「센다이 재난위험경감 프레임워크 2015-2030」를 통해 장애분리 데이터의 수집·분석과 정책 활용을 장애포괄적 재난위험경감의 주요 원칙으로 제시했던 바 있다.
두 번째는 접근 가능한 재난 인프라다. 무더위쉼터와 대피시설의 숫자만 늘려서는 부족하다. 휠체어 접근 출입구와 장애인화장실, 전동휠체어 충전시설, 보조기기 공간, 수어·문자 안내와 쉬운 정보까지 갖춰야 한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를 가진 고 아무개 씨의 상황을 가정하면 장애가 있는 시민에 대한 정책의 빈틈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폭염 때 쉼터로 가라고 하지만 가장 어려운 건 그곳까지 가는 일입니다. 휠체어로 한낮에 이동해야 하고, 도착해서도 경사로나 화장실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저에게 필요한 건 쉼터 주소가 아니라 실제로 갈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다는 정보와 이동수단입니다.”
재난시설의 기준을 ‘설치했는가’가 아니라 ‘장애인이 실제 이용할 수 있는가’로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UNDRR의 「2023 장애인과 재난에 관한 세계 조사 보고서(2023 Global Survey Report on Persons with Disabilities and Disasters), 이하 2023 세계 조사」에서도 장애시민들이 꼽은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가 재난 인프라·시설·교통에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전력과 돌봄을 재난안전의 영역으로 포함하는 것이다. 산소발생기와 인공호흡기, 전동침대, 전동휠체어 등을 사용하는 장애인에게 정전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당사자의 동의와 개인정보 보호를 전제로 비상전원과 긴급 충전, 우선 복구, 의료기관 이송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활동지원서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폭우나 폭염으로 활동지원사가 이동하지 못할 경우 대체인력과 긴급돌봄, 대피지원이 작동하는 별도의 재난 매뉴얼이 필요하다.
네 번째는 정보의 기준을 ‘발송’에서 ‘행동 가능성’으로 바꾸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에게 복잡한 재난문자를 반복해서 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발달장애가 있는 이 아무개 씨의 보호자는 더인디고와의 전화통화에서 “발달장애가 있는 자식의 휴대폰으로 들어오는 재난문자는 말이 어렵고 너무 깁니다. 재난문자가 수백 번 오더라도 이해를 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죠. 지금 밖에 나가지 마세요, 물을 마시세요, 도움이 필요하면 여기로 전화하세요 처럼 쉽게 알려주고 그림으로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변화는 ‘참여’다. UNDRR의 2023년 세계조사에서 장애인 응답자의 86%는 지역사회 재난위험경감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답했지만, 57%는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장애시민을 보호 대상으로만 두고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장애인 정책을 만드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국가와 지방정부의 기후위기 적응계획과 재난매뉴얼 수립·실증점검·평가 과정에 장애인 당사자와 단체가 참여하는 구조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자료: UNDRR, 2023 Global Survey Report on Persons with Disabilities and Disasters
기후위기 시대의 장애시민 재난 정책은 단순히 복지서비스로 한정하는 제한된 정책에 머물 수 없다. 재난안전·보건·주거·에너지·교통정책이자 인권정책 포괄적이어야 한다. 지난 2022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던 UN CRPD 국가보고서 심의 회의에 참석했던 장애계 한 관계자는 “이제는 우리나라의 법과 계획 역시 장애시민의 접근권과 정보접근권, 이동지원, 개별지원과 정책 참여를 구체적인 국가와 지방정부의 책무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위 ‘장애포괄적 기후정책’은 특별대책이 아니다. 장애시민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도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재난정보, 위기에도 끊기지 않는, 모든 시민에게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의 기준에 장애시민을 세우는 것, 그것이 누구도 재난에서 배제하지 않는 기후정의의 출발점이 될 터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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