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필의 모두까기] 당사자 후보가 전당대회에서 바꾼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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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을 하기 위해 서미화 후보가 지원인력과 함께 계단으로 무대에 오르는 모습/사진 출처: 유튜브(https://www.youtube.com/watch?v=Rf2NSzauIr0) 화면 캡처
▲연설을 하기 위해 서미화 후보가 지원인력과 함께 계단으로 무대에 오르는 모습/사진 출처: 유튜브(https://www.youtube.com/watch?v=Rf2NSzauIr0) 화면 캡처

    [더인디고 = 무필 집필위원]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서미화 의원의 최고위원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지명직이 아닌 선출직으로 장애당사자가 최고위원에 선출된 것은 분명 특별한 기록이다. 장애인의 정치 참여를 오랫동안 이야기해왔지만, 장애당사자가 직접 지도부 선거에 출마하고 당원들의 선택을 받아 최고위원이 된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이번 당선을 축하하며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하고 싶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의미 있었던 것은 장애당사자가 최고위원이 된 결과만이 아니다. 장애당사자가 출마했기 때문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장애당사자가 출마하니 달라진 것들

    비장애인 후보들은 준비한 발언문을 문서로 읽으며 연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인 서미화 후보는 발언문을 음성파일로 만들어 노트북으로 들으면서 발언해야 했다. 같은 시간에 발언한다고 해서 같은 조건에서 발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장애당사자인 후보에게 2분의 추가 발언시간이 주어졌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2분일 수 있다. 그러나 그 2분은 장애인에게 특별한 혜택을 준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조건에서 실질적으로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한 조정이었다. 장애당사자가 직접 출마했기에 가능했던 변화다.

    지원인력이 후보의 옆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것도 그랬다. 그리고 후보들이 함께 입장하는 순간, 다른 후보들이 시각장애인인 서미화 후보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 들어오는 모습도 있었다. 이 역시 장애당사자가 후보로 출마했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었고 만들어질 수 있었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미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당사자가 후보로 존재했기 때문에 정치의 공간에서 ‘함께 입장한다’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었다.

    작아 보이는 변화들이지만, 나는 이런 장면들이 오히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애당사자가 정치에 참여하면서 정치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방식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있어야 보이는 장벽

    하지만 아직 보이지 않는 장벽도 있다. 특히 전당대회와 같은 큰 정치행사는 장애당사자가 후보로 출마할지 여부를 미리 알고 장소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상당히 오래 전에 공간을 예약하고 행사를 준비하기 때문에 후보 등록 이후에야 접근성을 확인하고 시설을 보완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사후적인 보완보다 사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앞으로 전당대회 장소를 선정할 때부터 장애인 접근성을 기본 조건으로 포함해야 한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경사로가 있는지, 경사로 설치가 어렵다면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낮은 단상을 마련할 수 있는지, 객석과 이동 동선은 충분한지 등 장소 예약 단계에서부터 확인해야 한다.

    이번에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당사자가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사로나 낮은 단상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에는 달라져야 한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당사자가 출마한 뒤에야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출마하더라도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공간을 처음부터 선택하는 것이다. 장애당사자가 출마할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출마 여부와 관계없이 보장되어야 할 권리

    장애인의 정치 참여를 위한 접근성은 장애당사자가 후보로 출마했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은 후보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원으로 토론을 듣고, 공약을 살펴보고, 후보를 판단하고, 투표하는 사람 역시 정치의 주체다.

    수어통역이 그렇다. 전당대회에서 수어통역이 제공되는 것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청각장애인의 정보접근을 위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다.

    특히 후보자 간 토론회에서는 더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비장애인 후보자들끼리 토론하는 자리라고 하더라도 그 토론을 지켜보는 청각장애인 당원이 있다. 한 명의 수어통역사가 모든 발언을 양방향으로 소화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후보자의 발언뿐 아니라 사회자의 질문과 다른 후보자의 발언, 현장의 흐름까지 정확하게 전달하고 청각장애인 당원이 토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면 2명 이상의 수어통역사를 배치해 양방향 통역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청각장애인 후보가 출마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청각장애인 당원도 다른 당원들과 똑같이 후보자 토론을 보고 판단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선거자료와 토론자료가 눈으로 읽는 것을 전제로 제공된다면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장애당사자가 후보로 출마했는지와 관계없이 정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확인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접근성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한 사람의 편의가 다음 사람의 권리가 되도록

    이번에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서미화 의원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만큼, 이제 최고위원회에서 논의되는 모든 문서 역시 시각장애인 최고위원이 다른 최고위원들과 동등하게 직접 읽고 판단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되기를 기대한다.

    비장애인 최고위원에게는 당연한 문서가 시각장애인 최고위원에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별도의 변환 과정을 거쳐야만 확인할 수 있는 자료여서는 안 된다.

    스크린리더로 읽을 수 있는 전자문서와 접근 가능한 PDF 등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은 서미화 최고위원 한 사람을 위한 특별한 편의가 아니다.

    장애당사자가 정치에 참여하면서 처음 드러난 문제를, 다음 장애당사자가 출마했을 때는 더 이상 같은 문제로 겪지 않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한 사람의 편의가 다음 사람에게는 당연한 권리가 되는 것. 어쩌면 장애당사자의 정치 참여가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변화일 것이다.

    장애당사자의 출마가 정치에 던지는 질문

    장애당사자의 정치 참여는 장애인 정책을 잘 만들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장애당사자가 정치에 들어오면 정치가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왜 모든 발언문은 눈으로 읽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져 있는지.
    왜 모든 무대는 계단으로 올라가도록 만들어져 있는지.
    왜 정치적 소통은 말과 글을 중심으로만 이루어지는지.
    왜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특별한 편의’라고 생각해왔는지.

    장애당사자의 출마는 이런 질문을 정치에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장애인만을 위한 질문이 아니다.

    휠체어 사용자가 편하게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나 낮은 단상은 노인이나 일시적으로 이동이 어려운 사람에게도 편리할 수 있다. 접근 가능한 문서는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정보를 더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은 청각장애인뿐 아니라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넓힌다.

    장애당사자의 출마는 정치에 특별한 요구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누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음 장애당사자가 출마할 때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장애당사자가 선출직 최고위원이 된 것은 하나의 기록이다. 하지만 그 기록이 한 사람의 당선으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 출마를 통해 보이기 시작한 장벽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다음 장애당사자가 출마할 때는 또 다른 장벽을 발견하고, 그것을 다시 없애는 일이 이어졌으면 한다.

    언젠가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후보가 출마했기 때문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전당대회 장소가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공간으로 선정되고 무대에도 자연스럽게 오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청각장애인 후보가 출마했기 때문에 그때 양방향 수어통역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의 출마 여부와 관계없이 청각장애인 당원 누구나 토론과 정치적 논의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준비되기를 바란다.

    시각장애인 후보가 출마했기 때문에 자료를 접근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선거자료와 회의자료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공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나씩 바뀌다 보면 장애당사자가 출마했기 때문에 달라진 것이 아니라, 장애당사자가 출마할 수 있도록 정치가 먼저 달라진 것이 될 것이다.

    서미화 의원의 최고위원 당선은 축하받아 마땅한 하나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당선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장애당사자가 정치에 들어오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장벽이 보인다. 보이지 않았던 장벽이 보이면 그것을 없앨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장벽이 사라지면, 그 다음 사람은 조금 더 쉽게 정치에 들어올 수 있다. 그 변화가 계속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장애당사자의 출마 자체가 특별한 일이 아닌 날이 올 것이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무대에 오르고, 청각장애인이 토론을 온전히 보고 자신의 방식으로 소통하며, 시각장애인이 필요한 모든 자료를 직접 읽고 판단하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정치.

    장애당사자가 출마했기 때문에 비로소 편의를 마련하는 정치에서, 장애당사자가 출마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장벽을 없애놓은 정치로.
    그것이 이번 전당대회가 우리 정치에 남긴 다음 과제가 아닐까.

    다시 한번 서미화 의원의 최고위원 당선을 축하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mercy_jc@hanmail.net'
    공자의 자절사 중 무필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결론을 미리 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했습니다. 필명 무필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드러난 문제를 그대로 비판하겠다는 다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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