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금순의 토크백] 나는 와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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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실 병실 모습/ 이미지=챗GPT
▲다인실 병실 모습/ 이미지=챗GPT
▲유금순 더인디고 집필위원
▲유금순 더인디고 집필위원

[유금순 = 더인디고 집필위원] 피치 못할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내 신체 일부 어딘가를 남에게 보여줬다 한들 ‘그냥 남의 살이겠거니 하세요’라며 그만일 수 있는 그 어디쯤 나이이다. 전동휠체어에 앉아 있을 땐 보무도 당당, 표정도 당당녀인 내가 대학병원 침대 위에서만큼은 무기력의 최대치를 경험한다.

간만의 토크백은 병실 첫날 이야기다.

지금은 오늘 뽑힌 피의 양만으로도 이제 그만 푹 자야 할 시간이지만, 이대로 지쳐 잠들면 굳세어라 금순이로 영 못 돌아갈 것만 같은 심약 상태에서 잠 못 이룬 채 가래 대신 글을 길어 올린다.

노인 서너 분이 이미 병실 안 좋은 자리를 차지하셔서 난 문간방 신세 지듯 병실 내 화장실도 가깝고, 모두의 냉장고도 옆에 있는 침대에 휠체어와 함께 자리 잡았다. 새 나라의 어르신들은 모두 소등할 시간이라 침대맡의 개인 등을 켜고 병상 기록을 한다.

노인분들 곁엔 하나같이 간병인이 있고, 지금 내 곁엔 1년 반을 나와 함께하는 활동지원사가 보호자 의자 겸용 침대에 지친 하루를 뉘었다.

노인 위주의 돌봄에 익숙한 간병인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내 장애 특성과 생활 자세 등을 이해하는 활동지원사만큼 간병할 수 없기에 활동지원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조기 퇴원은 패혈증을 부를 수 있다는 내과 교수의 말에 입원일 수가 다음 주까지 이어질 수도 있겠다 싶다.

올해 초 폐렴을 앓았었는데, 40도에 육박하는 찜통더위로 새벽녘 가동한 에어컨 바람에 입을 벌리고 잤더니 목이 컬컬해지면서 바로 가래가 끓었다. 동네 내과에 가니 폐렴 같다고 해서 받아온 사흘 치 약을 공들여 먹고, 재차 원장을 만나니 진단서를 써줄 테니까 바로 입원하란다.

대략 중요한 것들을 짐 싸서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순간부터 무수히 피가 뽑히고, 심전도에 흉부 엑스레이, CT 촬영, 혈압과 체온 점검까지 줄줄이 이어지는 것만으로도 그냥 난리였다.

생각해보니 불과 2주 전 재활의학과에 입원했던 후유증이 한몫했을 수도 있다.

석션기 가동음과 약에 취한 집중치료실 환자들의 신음과 고성, 똥판을 벌인 환자의 변 처리를 새벽 3시에 반은 손으로, 반은 입으로 치우던 노인 간병인들의 노고도 이해가 됐다.

똥 쌌다고 등짝을 맞고 아파서 소리 지르는 환자 모습은 무기력하게 서글펐다. 자꾸 먹기 싫은 약을 먹으라고 잠을 깨운다면서 간병인의 머리를 때리는 나무막대기 같은 노파의 앙상한 팔에선 무슨 기운이 어디에서 솟아나는지.

이대로 장애를 갖고 존엄하게 늙어갈 수 있을 것인가.

병원에서 환자라는 이름으로 의료진과 간병인을 만나면서 그 존엄성이란 그저 먹고, 자고, 배설하는 그 이상일 것일진대 그것을 바란다는 건 언감생심인 것을.

근데 대부분의 의료진은 누가 누가 잘하나 채혈하고, 검사하고, 처치하는 타이밍만 기막히게 맞추는 기술자들 같다.

난 무릎이 일정 각도 벌어지면 치명적인 통증을 경험하는 유리무릎을 가졌고, 두 자세로밖에 누울 수 없는 형태의 척추측만증을 가진 근이영양증 장애인이며, 며칠 항생제 복용을 위한 최소한의 음식밖에 못 먹었다고 몇 번이나 사용설명서를 일러줬건만, 이름만 묻고 무조건 다리를 펴려 들고 ‘우리가 알아서 한다’는 의료진의 ‘장애 몰라 근자감’ 때문에 나는 몹시 불안했다.

“제발 좀 환자분 성함이 뭐냐고만 묻지 말고, 환자 특성이 뭔지 좀 고려해달라고요.”라고 언성을 높였다. 살고 싶은 사람으로서.

활동지원사의 노고를 줄이고자 소변줄을 자청했다.

침대 발밑 수액걸이에 걸린 ‘낙상주의’라는 팻말을 바라본다. 휠체어 반경만큼이나 체위 반경도 있어야 하는 나 같은 장애인 환자에겐 신체 특성과 상황에 맞는 환자용 침대(침대 폭 확장, 간호사 호출벨 침대에 설치, 변기 장착, 체위 변경 옵션의 확장, 가벼운 소재의 침구, 슬라이딩 패드 등)가 호텔 편의객실처럼 몇십 개당 1개 정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중증장애인뿐 아니라 내 옆 할머니 환자도 체위 변경과 배변할 때 좀 더 존엄하고, 슬기롭게 지낼 수 있지 않을런지.

옆 침대의 96세 할머니는 폐에 물이 차고, 소변이 나오지 않아 결국 1인 격리실로 이사했다. 임종을 준비하는 절차라고 했다. 밤새 등 좀 긁어달라고 내 귀에는 닿지만, 보호자 침대에 누운 간병인 귀에 닿을락 말락 맴돌던 할머니 목소리가 시어머님 목소리처럼 맴돈다.

앞 침대 94세 할머니는 모든 먹을 것과 주사 치료를 거부하며 간병인에게 욕하고, 때리면서 빨리 떠나야 한다는 말만 도돌이표처럼 하신다. 그래도 자기만의 시간을 채울 때까진 아프면 아픈 대로, 늙으면 늙는 대로 제 삶을 지고 살아간다.

이 침상에서 잠자고, 밥 먹고, 배변하고, 항생제를 맞고, 글을 쓴다.

스마트폰에 이 글을 적는 지금 더는 못 견디겠다 싶은 눈꺼풀의 무게와 몽롱함이 내려앉는다.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 내가 살아 있었다는 방증이 되어서.

[더인디고 THEINDIGO]

장애인권강사, 동료상담 및 사례상담가로 활동하였으며 2019년 대전 무장애 관광 가이드북(무장애대전여행)을 발간(5인 공저)하였습니다. 현재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이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소속 직장내장애인인식개선교육과 활동지원사 및 근로지원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실제 교육과 보수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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