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위의 행동은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시민의 ‘권리’까지 심판할 수는 없다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인플루언서 박위를 둘러싼 논란이 개인에 대한 비판을 넘어 장애가 있는 모든 시민 전체를 향한 적대적 혐오로 번지는 듯하다. 휠체어 승하차 지원 과정에서 발생한 일을 촬영하고 이를 자신의 영향력이 큰 SNS에 공개한 방식이 적절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현장 노동자의 실수와 운영기관의 교육·안전관리 책임을 구분했는지, 상대방이 감당해야 할 피해까지 충분히 고려했는지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비판에서 제외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영향력이 큰 인플루언서일수록 자신의 발언과 콘텐츠가 타인에게 미칠 결과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최근 온라인에서 등장하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권력이 됐다”, “장애인이라고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러면 앞으로 누가 장애인을 도와주겠느냐”는 반응은 박위 개인의 행동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혐오여서 황당하다. 장애시민이 서비스를 요구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행위 자체를 문제를 삼는다.
특히 “누가 장애인을 도와주겠느냐”는 말은 장애시민의 권리를 가장 손쉽게 무력화하는 표현이다. 휠체어 이용자가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누군가 마음씨 좋은 사람이 베푸는 선행이 아니다. 비장애인이 별다른 제약 없이 이용하는 교통서비스를 장애시민 역시 동등하게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접근성 시스템이다. 이 권리를 갖추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치열하게 싸웠다. 그런데 이를 ‘도움’이라고 부르는 순간 권리는 호의가 된다. 장애시민은 도움받는 사람이 되고 비장애인은 도움을 결정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장애시민은 그 도움을 계속 받기 위해 친절하고 겸손하며 감사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2020년 미국 장애 활동가 이마니 바바린(Imani Barbarin)은 배달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배달기사에게 주문한 음식을 자신의 아파트 문 앞까지 가져다 줄 것을 요구했다. 이동장애가 있는 그에게 배달서비스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배달기사가 이를 거부했고 바바린이 문제를 SNS에 공개하자 일부 여론은 그를 향해 자신의 장애팔이로 과도한 권리를 요구한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이런 아우성에 바바린의 반박은 되려 간명했다. 장애시민은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으며, 필요한 접근성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결국 비용을 지불하고도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는 것. 비장애인이 문 앞까지 배달받으면 서비스이고 장애시민이 그것을 요구하면 왜 특혜가 되냐는 거다.
영국의 방송인이자 휠체어 이용자인 소피 모건(Sophie Morgan)의 경험은 더욱 직접적이다. 그는 항공여행 과정에서 자신의 맞춤형 휠체어와 이동보조장치가 반복적으로 파손되는 일을 겪은 뒤 ‘Rights on Flights’ 운동을 시작했다. 장애시민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항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항공사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운동이다. 그가 내놓은 메시지도 명확했다. “우리는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비장애인과 같은 경험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건에게도 “장애 이야기를 그만할 수 없느냐”는 식의 공격이 몰아쳤다. 장애시민의 차별 경험은 일상적으로 반복되지만 이를 반복해서 주장하면 사회는 오히려 장애시민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이상할 정도로 장애시민의 잘못을 장애시민 집단 전체의 문제로 확대한다. 비장애인 인플루언서가 잘못했다고 해서 “앞으로 비장애인을 도와주지 말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어떤 여성이 잘못했다고 모든 여성을 싸잡아 비난하며 권리를 제한하자거나, 노인이 무례했다고 모든 노인의 이동권을 문제삼지 않는다.
그런데 장애시민에게는 이슈에 따라 “이래서 장애인을 도와주면 안 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개인의 행동에 대한 비판이 집단의 권리를 두드려 패는 근거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박위 사태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박위에 대한 비판 자체가 아니다. 한 장애가 있는 시민의 문제를 근거로 싸워 얻은 접근성과 편의제공, 이동권 등 정당한 지원까지 특혜로 규정하려는 담론의 확장이다.
더구나 현장 노동자와 장애시민의 권리를 서로 대립시키는 방식도 경계해야 한다. 충분한 인력과 교육, 표준화된 지원절차와 접근가능한 시설을 갖추는 것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의 책임이다. 이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갈등을 ‘까다로운 장애시민 대 힘없는 노동자’의 문제로 축소하면 정작 책임져야 할 시스템은 논쟁에서 사라진다.
장애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희생이나 선의가 아니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아도 장애시민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권리는 착한 장애시민에게 주어지는 포상이 아니다. 감사하는 장애시민에게만 주어지는 혜택도 아니며, 사회가 원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장애시민에게만 허락되는 자격도 아니다. 까다로운 장애시민에게도, 화를 내는 장애시민에게도, 심지어 잘못을 저지른 장애시민에게도 이동권과 접근권은 똑같이 보장돼야 한다. 박위 개인을 비판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 비판을 장애시민의 권리를 축소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박위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혐오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행위를 게임처럼 즐긴다. 돈 한 푼 들지 않고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이 짜릿한 도락을 누가 관두겠는가. 다들 박위 때문에 ‘장애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아우성이다. 과도한 착각이다. 박위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여기는 당신들이 장애혐오자였을 뿐이다. 불쌍하고 베풀어 줘야 하는 주변인이어야 하는 장애시민이 수천의 강의료를 받고, 이동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그저 못마땅한 것이다.
잔소리가 길었다. 그만 입 닥쳐야겠다.
[더인디고 THEINDIGO]








작년에 저희 친척분께서도 지하철에서 넘어지며 팔이 골절되는 사고를 겪으셨습니다. 연세가 있으셔서 회복이 더뎠고, 결국 팔 기능의 절반 정도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지금도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계십니다. 이번 일을 보면서, 만약 노약자나 더 취약한 분에게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정말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내 가족이 누군가의 부주의로 크게 다칠 뻔했다면, 단순히 사과를 받고 조용히 지나가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문제를 알리고 안전에 대한 우려를 전하는 것 역시, 또 다른 누군가가 같은 위험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당사자가 목소리를 낸 것도 결국 다른 누군가가 같은 위험에 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불편과… 더보기 »
언제부터 배려가 장애인의 권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반인들의 배려를 본인들이 누려야한 당연한권리로 생각하는 장애인들이 더 문제인데 딱 이 논평만봐도 서비스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있는것이 눈에보여 통탄하지않을수가없다.
그렇게 일반인과 차별하지말라고 울부짖을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차별화된 서비스와 권리를 추구하는모습을보면 그누가 동조해줄까?
논점이 이상하네요.
비장애인 인플루언서가 사고 쳤다고해서
앞으로 비장애인 도와주지말자고는 안한다고 하셨는데..
저 박위같은 사람은 일반적인 삶 이야기를 꺼낸게 아니라 장애인 컨텐츠로 사고쳤으니 까이는겁니다.
이상한 마인드인게,.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을 떠나 타인에게 폐를 끼치면 미안해하든, 최소한 그런 태도라도 가져야됩니다.
내가 휠체어를 타서든, 몸컨디션안좋은데 짐이 많아 버스 오래정차시키고 다른 승객한테 불편을 끼쳤다고 하면 권리 이전에 그냥 “나로 인해 다른 분들이 불편했구나” 라는거 인지하고 배려에 감사하다는 태도만이라도
하세요..
저 박위처럼 내가 누려야될 당연한 권리야라는 태도라면 그냥 반감밖에 안들겁니다..
정신차리세요. 비장애인들이 당신들때문에 불편함 감수하고 길에서 시간정체되는거를 당연하게 여기지마세요…
소피모건의 운동은 대부분 지지, 공감 또는 무관심이었고 소수 일부의 혐오, 부정반응, 업계내부의 불편함 등이 있었던 반면 박위의 경우는 커뮤니티나 언론에서 박위의 문제제기를 하나도 지지하지 않는 모양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잘 지적하셨습니다. 이거는 장애인 차별 및 혐오가 응축되어 나타난 구조적 괴롭힘이 잘 드러난 사례입니다.
공감하며 읽었는데 많은 장애인분들 역시 박 유투버에 대해 비난을 많이 하는 글들 보았습니다.한국행 비행기를 곧 탈건데 마음이 무겁네요.
제가 여기서 얼마나 호강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