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계의 날에 돌아보는 장애 분리통계의 의미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이 국내에서 비준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수 법률은 협약 기준과 충분히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에 2023년 12월 출범한 ‘CRPD 국내법 개정 연대’는 규범 반영 지표를 마련하고, 상충 법률의 제·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연대는 39개 법률을 분석·검토해 16건의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모자보건법, 상법, 최저임금법 등 주요 쟁점 법률을 중심으로 사회적 논의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장애인권리협약 채택 20주년을 맞아, 연대는 릴레이 기고를 통해 협약의 국내 적용 필요성과 향후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l 안희연 한국장애인재활상담사협회 대리

[더인디고] 매년 9월 1일은 ‘통계의 날’이다. 우리는 통계를 숫자의 집합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통계는 사회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으며 누구를 놓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특히 장애인의 권리 보장에 있어 통계는 단순한 행정자료가 아니라 정책의 출발점이자 차별과 불평등을 확인하는 가장 객관적인 근거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의 통계는 장애인의 현실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을까.
국가가 매년 생산하는 수많은 국가승인통계 가운데 상당수는 장애 여부를 조사하지 않거나 장애인을 별도로 분석하지 않는다. 그 결과 장애인은 평균 속에 묻혀 보이지 않게 되고, 정책 역시 장애인의 실제 삶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반복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승인통계는 1,300여 개가 넘지만 장애인 정책 수립에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장애 관련 국가승인통계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장애인실태조사나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와 같은 개별 통계만으로는 교육, 노동, 주거, 안전, 문화, 보건 등 사회 전반에서 장애인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장애 분리통계(disability-disaggregated data)이다.
장애 분리통계는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별도의 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국가통계에 장애 여부와 장애 특성을 함께 조사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결과를 비교·분석할 수 있도록 하는 통계체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동일한 통계 안에서 장애인의 현실도 함께 확인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보편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제31조는 국가가 장애인의 권리 실현을 위하여 적절한 통계와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정책의 수립과 이행, 평가에 활용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Leave No One Behind)” 하기 위해 장애 여부에 따른 분리통계를 핵심적인 국가통계체계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국제사회는 이미 장애 분리통계를 국가통계 전반으로 확대하고 있다.
호주와 이탈리아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 관련 상당수 지표에서 장애 여부에 따른 통계를 생산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코로나19 이후 ‘세분화된 데이터 실행계획(Disaggregated Data Action Plan)’을 수립하여 성별뿐 아니라 장애 여부를 주요 국가통계의 기본 분류항목으로 확대하였다. 특히 고용, 사회조사, 청소년조사, 건강조사, 흡연조사 등 장애와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통계에서도 장애 여부를 함께 조사하여 정책 사각지대를 줄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애 분리통계 확대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동안 “모든 통계에 장애 항목을 넣으면 비용이 많이 든다”, “표본이 부족하다”, “기존 장애통계가 이미 있다”는 이유로 논의가 쉽게 진전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우선 모든 국가통계에 일률적으로 장애 항목을 추가하자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 정책 수립과 권리보장에 필요한 인구, 노동, 교육, 보건, 복지, 소득, 주거, 안전 등 정책 활용도가 높은 국가승인통계를 우선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적용하면 된다. 정책 필요성이 높은 분야부터 도입하고, 기술적 한계가 있는 통계는 예외를 인정하는 방식이라면 비용 부담과 통계 품질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
실제로 질병관리청 등 일부 국가통계에서는 이미 장애 여부를 반영한 분리통계를 생산하고 있으며, 해외 여러 국가 역시 정책 중요도와 작성 가능성을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즉 장애 분리통계는 새로운 통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통계체계를 조금 더 포용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에 가깝다.
평균은 모두의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고용률이 상승했다고 하더라도 장애인의 고용률도 함께 향상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의료 접근성이 개선되었다는 통계가 발표되더라도 중증장애인의 의료 이용이 실제로 나아졌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교육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결과 역시 발달장애 학생이나 청각장애 학생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지는 별도의 장애 분리통계가 없다면 알 수 없다.
또한 장애 분리통계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단순히 비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장애유형, 장애 정도, 성별, 연령, 지역 등을 함께 분석함으로써 장애인 내부의 다양한 격차를 확인하고, 보다 정교한 정책 설계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이제는 장애 관련 통계를 별도로 생산하는 수준을 넘어, 정책 수립에 필요한 국가통계에 장애를 기본 분류항목으로 포함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는 장애인만을 위한 특별한 통계가 아니라 국가통계의 완성도를 높이고 모두를 포괄하는 통계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최근 국회에서도 이러한 취지의 「통계법」 개정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정책적으로 필요한 국가승인통계를 중심으로 장애 분리통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통계는 숫자로 시작하지만 결국 사람의 삶을 기록한다. 숫자 속에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다면 정책 속에서도 장애인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통계의 날을 맞아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통계를 생산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누구를 담아내고 있는가이다. 장애 분리통계의 확대는 더 많은 숫자를 만들기 위한 일이 아니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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