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오래 전 TV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떠오른 건 영화 “멈출 수 없는 말”을 보면서였다.
덜컹거리는 전철의 객차와 객차 사이, 입에 청테이프를 칭칭 감은 청년이 있다. 거칠게 입을 비비면서 고통을 참아내느라 안간힘 쓰는 청년이 애처롭다.
결국 손으로 테이프를 뜯어내고 연신 머리를 흔들며 소리를 지르는데 전철의 굉음에 소음은 묻히고 일그러진 청년의 표정만 보인다. 간간이 들리는 청년의 소리는 듣기 거북한 욕설이었다.
화면이 바뀌어 인터뷰하는 청년은 그전의 모습과 완전 다르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운동 틱과 음성 틱의 신경 질환이라고 뚜렛증후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본인의 의지만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사회적 환경을 그대로 보여 준 방송이었다.
2025년에 개봉된 영화 “멈출 수 없는 말”은 스코틀랜드 활동가 존 데이비드슨의 실화가 바탕이다. 축구에 재능이 있던 존은 상급학교에 진학하여 축구 선수를 꿈꾸지만 갑자기 나타난 틱 증상으로 일상이 무너진다. 1980년대의 세상은 뚜렛증후군에 대한 정보가 없던 때였다. 내가 봤던 다큐도 그 시기에 방영된 걸로 기억한다. 존의 행동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의미 없는 혼잣말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이들로 인해 존은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영화는 질환의 증상을 보여주면서 그로 인한 주변인들의 오해와 편견을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갑자기 달라진 아들과 오빠의 모습에 가장 힘이 되어 주어야 할 가족이 등을 돌린다. 식사조차 식탁에 앉지 말라는 부모 요구에 벽난로 앞에서 혼자 밥을 먹는 어린 존의 모습은 아리고 아프다. 그런 존에게 다가온 사람은 친구 엄마 도티였다. 간호사 출신인 그녀는 존의 인생을 끌어안는다. 누군가의 삶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내 편이 있다면 그는 올바른 길로 성장한다고 했다. 도티는 존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만 결코 그냥 고기를 주진 않는다. 유대 격언처럼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직업을 알선해 주고 자신과 함께 살면서 단절된 삶을 다시 이어준다. 도티 덕분에 존은 새로운 세상에 접근하고 뚜렛증후군을 알리는 활동가로 거듭난다.
해피엔딩의 결말에 영화 보는 내내 불편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현실은 죽음으로 끝난 청년의 비극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부자연스런 몸의 움직임이나 소리로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장애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생각한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타나는 존의 음성 틱과 그리 다르지 않은 자폐인의 언행에 주위의 많은 이들은 두려움까지 느끼기도 한다.
한때 나는 자폐성 장애인 아들과 동행할 때 우리를 슬금슬금 피하는 이들에게 늘 하는 복화술이 있었다. “잡아먹지 않아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음 떼가 심했던 아들에게 기함하던 이들을 원망보다 그럴 수 있다고 너그러워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적응할 즈음 아들은 몸과 마음도 커가고 있었기에 다소 여유 부리며 잡아먹지 않는다는 말을 줄이며 살았다.
영화를 보면서 내 머릿속은 아들이 떠나지 않았다. 아들 존을 거두려 애쓰는 엄마는 나와 비슷했고 주변인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존은 아들을 닮아 있었다.
신경 질환으로 멈출 수 없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존은, 알 수 없는 이유의 웃음과 울음에 자해까지 반복되던 자폐인 아들이었다.
자폐인 아들이 내게 ‘엄마’라고 자발적 표현언어로 불러주길 간절히 바라던 시절이 있었다. 의미 없이 상대방 말을 따라하는 반향어 때문에 속상하다는 엄마 앞에서 나는 그마저 부러워 멍하니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나마 표현언어는 없어도 수용언어와 상황언어에 반응을 보이는 아들과의 소통이 늘면서 부러움을 내려놓으니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살게 되었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이 언어의 사용이라 믿은 적이 있다. 물론 아들을 만나기 전이다. 말이 인간의 특권이라 생각했는데 말이 어눌하고 표현언어가 전무인 사람도 있다는 걸 아들을 통해서 알았다. 말을 멈출 수 없는 삶도, 말을 못 하는 삶도 존재 자체로만 인정받으며 사는 세상이라면 언어 사용의 유무가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언어의 대체수단을 잘 활용하고 그 사람의 표정이나 행동을 통해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그것으로도 족하지 싶다. 화자의 말보다는 표정이나 몸짓으로 90% 이상의 소통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모르니까 불편하고 배타적일 수 있다. 정신장애인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인들의 의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비장애인들의 장애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적절한 배려, 국가의 제도적 장치만이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 내가 조금 불편해도 나와 다른 신체와 정신 소유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멈추지 않는 세상이길 바란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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