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PD 20주년]⑩ 미세먼지 앞에 장애인은 없다

28
▲미세먼지 앞에 장애인은 없다.
▲미세먼지 앞에 장애인은 없다.
  • 법의 사각지대를 걷어내야 할 때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이 국내에서 비준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수 법률은 협약 기준과 충분히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에 2023년 12월 출범한 ‘CRPD 국내법 개정 연대’는 규범 반영 지표를 마련하고, 상충 법률의 제·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연대는 39개 법률을 분석·검토해 16건의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모자보건법, 상법, 최저임금법 등 주요 쟁점 법률을 중심으로 사회적 논의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장애인권리협약 채택 20주년을 맞아, 연대는 릴레이 기고를 통해 협약의 국내 적용 필요성과 향후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l 황정희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사무국장

▲황정희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사무국장
▲황정희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사무국장

[더인디고] 우리나라의 사계절 중 가을은 ‘하늘이 높고 푸르다’는 표현으로 정의되곤 한다. 2026년의 가을도 그렇게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질 수 있을까? 현실은 어김없이 미세먼지 예보가 뜨고, 정부는 곧바로 마스크 착용과 외출 자제를 권고한다. 그런데 이 권고는 과연 모두에게 동등하게 닿고 있을까. 뇌성마비 장애인 706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 결과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고 답한 뇌성마비 장애인 가운데 49.2%가 ‘숨쉬기 어렵거나 침 흘림 등 신체적 이유로 마스크를 유지할 수 없다’고 했고, 30.7%는 ‘심한 불편감·거부감’을 호소했다. 반면 경제적 이유로 마스크를 못 쓴다는 비율은 겨우 1.3%에 불과했다. 이것은 태도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 배제의 문제다.

법이 장애인을 빠뜨리고 있다

현행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23조는 취약계층을 어린이·영유아·노인·임산부·호흡기질환자·심장질환자로 규정한다. 장애인은 한 줄도 없다. 「대기환경보전법」도, 「환경보건법」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를 비롯한 주요 지자체의 미세먼지 관련 조례 역시 다르지 않다. 법에 이름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누락이 아니다. 법에 이름이 없으면 예산도, 가이드라인도, 책임도 따라오지 않는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환경부에 ‘고농도 미세먼지 대응 매뉴얼에 장애인을 포함하라’고 권고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장애인 특화 지침은 여전히 없다. 2025~2029년 제2차 미세먼지 관리 종합계획도, 제7차 계절관리제도 장애인을 명시적 보호 대상으로 적시하지 않았다.

역학 연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데이터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단기 PM₁₀ 노출로 인한 심혈관 질환 입원 위험이 장애인에게서 유의미하게 높았으며, 뇌병변 장애인과 중증 장애인에서 그 격차가 더욱 컸다. 장기 PM₂.₅ 노출과 사망 위험의 관계 역시 장애인에게 더 강하게 나타났다. 특히 신장 장애인과 중증 장애인에서 비사고 사망 및 심혈관 사망 위험이 두드러졌다. 만성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사회경제적 취약성이 높으며, 정보 접근과 자기 보호 행동에 구조적 장벽이 더 많은 장애인이야말로 미세먼지로부터 더 강한 보호를 받아야 할 집단이다. 그런데 현행 법체계는 이 집단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

세 가지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법령에 장애인을 명시해야 한다.

「미세먼지특별법」 제23조의 취약계층 정의에 장애인을 추가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이 한 줄의 개정이 미세먼지 쉼터 접근성, 예·경보 전달 방식, 마스크 배포 및 대체 보호 수단 등 모든 정책 수단의 설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환경보건법」과 지자체 조례도 마찬가지다. 또한 이미 존재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정당한 편의 제공’ 조항과 「장애인건강권법」의 건강권 보장 규정을 미세먼지 정책과 연결하는 법령 간 연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제25조가 보장하는 건강권 역시 이 문제의 국제 규범적 근거가 된다.

둘째, 정책 수단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

마스크 보급 정책은 ‘접근성’을 확보했다고 ‘적절한 보호’가 이루어졌다고 보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착용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에게 마스크 배포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장애 유형별 대체 보호 방안과 활동지원사·돌봄 인력을 통한 맞춤형 대응 지침이 필요하다. 미세먼지 쉼터는 「편의증진법」상 접근성 기준을 의무적으로 충족해야 하고, 예·경보 시스템은 시각·청각·인지 장애인이 각각 접근할 수 있는 다중 채널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교육 자료는 쉬운 말 버전과 그림·영상 형식, 수어 영상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

셋째,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장애 당사자가 참여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필요한지는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 미세먼지 관련 국가 계획과 지자체 조례를 수립·개정하는 과정에 장애인 단체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장애인자문위원회 구성과 정책 접근성 모니터링 체계 마련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보편 설계’는 모두를 위한 설계다

장애인을 위해 설계된 정책은 사실 모두를 위한 정책이기도 하다. 수어 통역이 달린 재난 방송은 소음이 심한 환경에 있는 비장애인에게도 유용하고, 쉬운 말로 쓴 대기오염 안내문은 노인과 어린이도 더 잘 이해한다. 접근성이 높은 미세먼지 쉼터는 유모차를 끄는 부모와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하는 노동자에게도 편리하다. 포용적 설계는 더 강한 공중보건 체계를 만드는 길이다.

대한민국은 2024년 기준 전체 인구의 5.1%인 약 265만 명의 등록 장애인을 두고 있으며, 고령화와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그 수는 계속 늘고 있다. 미세먼지 정책이 이 265만 명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책 실패이자 건강 불평등의 고착이다. 법의 한 줄이 사람의 목숨값이 될 수 있다. 「미세먼지특별법」 제23조에 장애인을 추가하는 일,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더인디고 THE INDIGO]

더인디고는 80대 20이 서로 포용하며 보듬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인터넷 저널입니다. 20%의 사회적 소수자의 삶을 쪽빛 바닷속 살피듯 들여다보며 80%의 다수가 편견과 차별 없이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할 수  있게 편견의 잣대를 줄여나가겠습니다.

0 Comments
Langua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