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⑤ “무슨 스포츠를 할 수 있나요?”보다 “무슨 스포츠를 하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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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son Stubbs 크리켓 코치와 인터뷰 장면/ 장애청년드림팀(AURA팀)
▲ Jason Stubbs 크리켓 코치와 인터뷰 장면/ 장애청년드림팀(AURA팀)

장애청년드림팀 21기 AURA는 ‘스카이다이빙 도전을 통한 장애인식 재정의’를 주제로 호주 시드니를 찾았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과 공간을 통해 장애인의 이동과 접근성, 그리고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살펴본 이야기를 6편의 연수기에 담는다.

[글=AURA 팀리더 및 회계 정한슬, 부리더 및 서기 이정현] 예상치 못한 기상 악화로 스카이다이빙 일정이 변경되면서 AURA는 현지 기관 인터뷰 일정도 급하게 조정해야 했다. 5박 7일이라는 짧은 연수 기간에 하루의 일정 변경은 생각보다 큰 변수였다.

하지만 장애인 스포츠와 복지 체계가 비교적 잘 갖춰진 호주까지 와서 현지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팀원들과 늦은 시간까지 연락처와 이동 경로를 확인한 끝에, 계획했던 Blind Sports NSW/ACT(이하 ‘Blind Sports’) 담당자와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다양한 장애인 스포츠를 지원하는 Blind Sports NSW/ACT

Blind Sports는 1974년 설립된 비영리단체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New South Wales, 이하 ‘NSW’)와 수도 준주(Australian Capital Territory)의 시각장애 및 저시력 주민들이 스포츠와 여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크리켓, 골볼, 축구, 골프, 테니스 등 다양한 종목을 운영하며, 연령이나 신체 능력과 관계없이 시각장애인이 원하는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정기적인 캠프와 프로그램을 통해 스포츠 참여가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계기도 마련한다.

인터뷰를 담당한 Jason Stubbs(이하 ‘제이슨’)는 Blind Sports의 부장이자 크리켓 코치다. NSW주의 시각장애인 크리켓 선수들을 지도하며 호주 전국 대회 6연속 우승을 이끌었고, 국가대표 친선전과 겨울 캠프 등을 추진하며 장애인의 스포츠 참여 확대에 힘쓰고 있다.

인터뷰 장소인 Cricket Central에 도착하자 제이슨은 우리를 반갑게 맞은 뒤 곧바로 크리켓 훈련장으로 안내했다.
넓은 실내 훈련장과 여러 개의 네트, 각종 훈련 장비가 한눈에 들어왔다. Cricket Central은 NSW주의 지원을 받아 건립된 크리켓 전문 시설이다. 하지만 시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시각장애인이 이곳에서 어떻게 스포츠를 하는지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제이슨은 우리 앞에 여러 개의 안경을 꺼내놓았다. 안경마다 보이는 방식이 달랐다. 어떤 안경은 시야 전체가 뿌옇게 흐려졌고, 어떤 안경은 가운데가 가려졌으며, 또 다른 안경은 주변 시야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 팀원들은 차례로 안경을 착용했다. 나 역시 안경을 쓰는 순간 훈련장의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사람이나 시설은 어렴풋이 보였지만, 공처럼 작은 물체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는 것은 훨씬 어려웠다.

이번에는 직접 시각장애인 크리켓을 체험했다. 일반적인 크리켓과 달리 시각장애인 크리켓에서는 공을 공중으로 던지는 대신 바닥으로 굴려 보낸다. 공 안에는 소리가 나는 장치가 있어 선수들은 공이 굴러오는 소리를 들으며 위치와 방향을 파악한다.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섰다.

“공이 옵니다.”

공이 굴러오기 시작했다. 눈으로 공을 찾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바닥을 따라 가까워지는 소리에 집중하며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공은 그대로 지나갔다. 헛스윙이었다. 몇 번의 헛스윙 끝에 제이슨의 도움을 받아 자세와 방망이 위치를 조금씩 고쳤다. 다시 공이 굴러왔고, 이번에는 방망이 끝에 공이 닿았다. ‘탁’ 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단 한 번 공을 맞힌 것뿐인데도 꽤 큰 성취처럼 느껴졌다.

짧은 체험이었지만 시각장애인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소리와 집중력을 얼마나 중요하게 활용하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장애인이 스포츠를 할 수 있느냐보다, 참여할 수 있도록 규칙과 장비, 환경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인터뷰 종료 후 Jason Stubbs  크리켓 코치, Shaun Fitzpatrick 크리켓 선수와의 기념사진
▲ 인터뷰 종료 후 Jason Stubbs 크리켓 코치, Shaun Fitzpatrick 크리켓 선수와의 기념사진

장애인 스포츠 코치가 해야 하고, 해낸 노력

제이슨은 시각장애인을 코칭하면서 겪는 어려움부터 이야기했다.
“오늘 밤 여성 시각장애인 선수 10명이 여기서 훈련합니다. 그런데 저는 한 번에 한두 명의 타자만 훈련할 수 있어요. 지금 건물 지붕에서도 작업자들이 공사를 하고 있죠. 만약 우리가 서 있는 네트와 양옆 네트에서 동시에 공을 던지기 시작하면 선수들은 공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은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어렵습니다.”

시설이 물리적으로 잘 조성돼 있다고 해서 접근성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각장애인 선수에게는 다른 네트에서 나는 공 소리, 사람들의 목소리, 공사 소음까지도 중요한 경기 환경이었다.

제이슨은 훈련장 한쪽에 놓인 기계를 가리켰다.
“소프트볼은 공을 아래로 던집니다. 이 기계는 원래 소프트볼용으로 제작됐는데 제가 크리켓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직접 개조했어요. 제 뒤에 있는 기계는 예전에 사용하던 겁니다. 호주에서 이런 기계를 가지고 있는 곳은 우리 주가 유일합니다. 다른 주에는 없어요.”

필요한 장비가 없다면 직접 개조해서라도 선수들이 경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애인 스포츠에서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종목’을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이 하고 싶은 스포츠가 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기술은 발전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활용하고 있을까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제이슨은 휴대전화로 한 영상을 보여줬다.
“호주 오픈(Australian Open) 아시죠? 지금 보여드리는 것은 시각장애인이 테니스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입니다.”

영상 속 시각장애인은 작은 장치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있었다. 경기 중 테니스공의 움직임에 따라 장치가 반응했고, 사용자는 손끝으로 공의 이동을 따라갈 수 있었다. 제이슨은 이런 장치를 통해 시각장애인도 경기의 흐름과 공의 이동, 점수 변화를 실시간에 가깝게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우리가 체험한 시각장애인 크리켓에서도 공을 소리가 나도록 바꾸고, 공중으로 던지는 대신 바닥으로 굴리고, 필요하면 훈련 기계까지 개조했다. 기술 역시 장애인의 스포츠 참여를 넓히는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 자체보다 그것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활용하느냐였다.

시각장애인 크리켓 선수가 스포츠를 통해 얻은 변화

AURA는 이날 시각장애인 크리켓 선수 Shaun Fitzpatrick(이하 ‘숀’)도 만났다. 숀은 약 15년 동안 크리켓 선수로 활동했고, 호주 시각장애인 크리켓 국가대표 주전 투수로도 활약하고 있었다.

“호주의 시각장애인 크리켓은 자체적으로 리그가 활성화되어 있나요?”
우리의 질문에 숀은 호주 전국 대회에 대해 설명했다.

“호주의 각 주가 매년 1월에 모여 전국 대회를 합니다. 저희 NSW 팀이 6연속 우승을 했어요. 각 주에도 리그는 존재하지만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에는 연봉을 받는 완전한 프로 선수들도 있습니다.”

이어 호주에서 시각장애인 스포츠를 운영할 때의 어려움도 이야기했다.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겠지만 호주는 땅이 너무 넓어요. 그래서 선수들이 다 같이 모여 훈련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숀이 크리켓을 통해 경험한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그는 크리켓을 시작하기 전에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후드티를 입은 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크리켓을 시작하고 나서 자신감이 정말 많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고개를 들고 다녀요. 제가 스포츠를 하면서 이룬 것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행복해합니다.”

숀에게 크리켓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함께 훈련하고 경기에 출전하며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몸과 능력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장애인이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여가 활동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자신감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장애인에게 갖고 있는 사회적 인식을 바꿔라

제이슨은 스포츠 프로그램 외에도 사회적 인식 개선 활동을 운영한다고 했다. 기업 관계자들을 초청해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다양한 시각장애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안경을 직접 착용해보도록 한다.

그는 특히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공공 인프라를 건설하는 주체가 바로 정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장애인’이라고 하면 휠체어를 탄 사람을 먼저 떠올립니다. 휠체어는 눈에 바로 보이니까요. 하지만 길거리에서 숀을 만난다면 그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시각장애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Cricket Central에서 착용했던 안경만 해도 중심부나 주변부 시야가 제한되거나 전체적인 시야가 흐릿하게 보이는 등 차이가 있었다.

제이슨은 자신의 아들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의 아들에게는 안구진탕이 있는데, 어느 날 클럽에 갔다가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본 경호원이 마약을 복용했다고 오해해 밖으로 내보낸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장애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장애로 인한 행동이나 특성이 오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시설과 기술뿐 아니라 장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함께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무슨 스포츠를 할 수 있나요?”가 아니라 “무슨 스포츠를 하고 싶나요?”

우리는 제이슨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스포츠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제이슨은 이렇게 답했다.

“어떤 스포츠를 할 수 있는지 고민하지 마세요. 당신이 어떤 스포츠를 하고 싶은지를 저에게 말해주세요. 그러면 당신이 경기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바꿔줄 테니까요.”

이 한마디는 이날 Blind Sports에서 들었던 여러 이야기 가운데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다.

우리 역시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스포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직접 안경을 쓰고 크리켓 방망이를 들어보니 질문이 달라졌다. 공이 보이지 않는다면 소리가 나는 공을 사용하면 된다. 공중에서 날아오는 공을 치기 어렵다면 바닥으로 굴리면 된다. 기존 훈련 기계를 사용할 수 없다면 개조하면 된다.

스포츠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스포츠의 규칙과 장비를 바꾸는 것이다. 숀은 그렇게 변화된 환경에서 15년 동안 크리켓을 해왔고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제이슨은 선수들이 계속 경기할 수 있도록 장비를 고치고 훈련 방식을 바꾸며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우리가 Cricket Central을 떠날 때도 그들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곧 저녁 훈련을 위해 시각장애인 선수들이 이곳으로 모일 예정이었다. 우리가 체험 삼아 들었던 방망이와 소리가 나는 공은 누군가에게는 매주 반복되는 일상이자 경기였고, 삶의 일부였다.

Blind Sports에서 보낸 시간 동안 우리는 ‘장애인이 스포츠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 AURA에게도 그 질문을 직접 시험해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호주에 오기 전부터 우리 팀이 가장 기다렸던 도전.
높은 하늘에서 몸을 던지는 스카이다이빙이었다.

기상 악화로 한 차례 일정이 미뤄지며 더욱 애타게 기다렸던 그날, 우리는 과연 하늘을 날 수 있었을까.

* AURA가 발견한 것: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스포츠를 찾기보다, 하고 싶은 스포츠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는 것이 먼저였다.

다음 이야기는 AURA의 대망의 스카이다이빙 도전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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