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물건을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편이다. 고장 나거나 부서지지 않으면 새것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가족들의 만류나 권유가 없다면 옷이나 신발은 구멍이 나거나 바닥이 닳도록 입고 신는다. 알뜰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익숙한 편안함이 낯선 적응으로 바뀌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가방은 매일 똑같은 것을 들고 되도록 오래 쓴다. 수납공간이 여러 개로 나뉜 것을 선호하는데, 각 주머니에는 물건들의 위치가 정해져 있다. 보조배터리는 블루투스 키보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고, 지갑과 열쇠도 서로의 자리를 탐하지 않는다. 케인, 우산, 물병, 운동복, 카드까지 각각 다른 곳에 정리해 두어야 하므로 새로 가방을 살 땐 주머니의 개수를 가장 먼저 세어 본다.
이번 여행에서 갑자기 가방 지퍼가 터졌을 때도 순간적으로 곤란한 상황보다 어떻게 나의 취향에 맞는 새 가방을 살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같은 모양의 가방을 다시 살 수 있을까?’
‘이 물건을 다 넣으려면 크기도 커야 하고 지퍼도 많아야 하는데…’
‘요즘 가방은 크기도 작고 수납공간도 적은 것 같던데…’
고민 끝에 새로 가방을 사는 것보다 지퍼를 수리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런 결정은 새로울 것이 없었다. 거의 매번 같은 선택이었다. 아내는 이번 기회에 새 가방을 선물해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나는 선뜻 응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가방의 수선을 맡기러 갔는데, 수리하는 데 대략 2주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며칠 뒤면 개학인 터라 아내는 이때다 싶은지 여러 가지 새 가방을 나에게 만져 보게 했다.
“이건 주머니가 많고, 이건 용량이 크네요.”
“새로 나온 디자인이라 그런지 물병 넣는 자리가 따로 있고 깔끔하네요.”
비슷하게 생긴 여러 개의 가방을 한꺼번에 만지다 보니 이게 이거 같고 저게 저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딱 하나의 가방을 고르기 어려웠던 것은 어제까지 들고 다니던 가방과 똑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건을 각각 나눠 넣기엔 주머니가 부족했고, 주머니가 많은 것은 용량이 작아 보였다.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가방은 수납할 공간의 위치가 직관적이지 않아 보였고, 하나가 만족스러우면 하나가 부족해 보였다. 적극적으로 권하는 점원과 남편에게 새 가방을 선물하고 싶은 아내 앞에서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고를 계속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나름의 선택을 했지만, 마음에 쏙 들어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전에 들고 다니던 가방의 물건들을 하나씩 새 가방에 나누어 넣었다. 새로운 분리와 배치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위치 때문에 가방이 어색했다. 습관적으로 케인을 꺼내려고 열었던 지퍼에는 열쇠가 있었고, 다른 주머니를 열려고 했지만 계속 같은 지퍼만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사무실 앞에서 열쇠를 꺼낼 때도, 버스 정류장에서 교통카드를 꺼낼 때도 편안한 느낌보다는 어렵고 불편했다. 아내에게는 고맙다고 인사했지만, 아내도 내가 흡족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우와! 가방 멋지네요.” 동료 선생님들의 칭찬에도 며칠간 내 가방은 내 가방이 아닌 듯 내 몸에 착 감기지 않았다.
금세 2주가 지나고 지퍼가 고장 났던 헌 가방이 깔끔하게 수선되어 돌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새 가방의 물건들을 다시 원래의 가방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편안함이 느껴질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어색함이 찾아왔다. 지퍼의 위치도 물건의 배치도 전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분명 내가 쓰던 가방이 되돌아온 것이 분명했는데 내 것 같지가 않았다.
2주라는 시간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새 가방의 구조에 손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제서야 새 가방이 좋아 보였다. 디자인도 크기도 주머니의 배치도 모든 것이 예전 가방보다 좋았다.
“이 가방 정말 좋다!” 진심으로 아내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아내는 새삼스럽게 왜 그러냐고 했지만, 그것은 진짜였다. 다시 말하건대, 난 익숙함이 새로움으로 바뀌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눈 때문일 수도 있고, 원래 내 성향이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은 진정 그것이 완벽해서가 아니고 익숙해졌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방도 신발도 옷도 그렇지만, 규칙도 습관도 마음가짐도 그렇다.
학교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도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도 나만의 독특함으로 굳어지지만, 그것이 가장 좋은 교수법이나 업무 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학생들이나 후배 선생님들이 내게 질문할 때 난 내가 말하는 방법들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야 한다. 헌 가방과 새 가방이 그렇듯, 익숙해진 습관들과 어색하지만 새로운 방법들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것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정말 나은 쪽을 택할 수 있다.
새 가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어색함과 불편함을 구분하고 익숙함과 편리함의 차이를 알아내야 했던 것처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굳어진 습관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삶의 지혜를 명확히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하루하루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면서 내겐 지난 시간이 만들어 준 소중한 지혜들이 쌓여 있다. 그렇지만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무뎌지고 굳어진 습관과 고집들도 함께 내 안에 숱하게 존재한다. 천년만년 똑같은 가방만을 찾고 있다 보면 어느새 다시 고칠 수 없을 만큼 낡고 터진 누더기만을 끌어안고 있을 것이다.
수선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과감하게 새 가방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나의 방법이 언제나 옳은 쪽을 향해서 변하지는 않는다. 생각하고 깨닫고 고치면서 살지만, 한 번쯤 내 모든 것에 대해 새롭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새 가방은 많이 어색하지만, 그 또한 짧은 시간 안에 내게 익숙함이 될 수 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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