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장애인권리위원회, 정치·공적생활 참여 구체화… 일반논평 11호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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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임기 종료 포함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 /사진=국제장애인연합(IDA)
▲2026년 임기 종료 포함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 /사진=국제장애인연합(IDA)
  • 투표·피선거권 넘어 공직·정당·시민사회 등 참여 범위 확대
  • 장애인 한 명 임명으로는 부족…다양한 장애인의 실질적 참여 강조
  • 접근 가능한 선거정보·투표조력·합리적 편의 등 국가 의무 제시
  • 국내 판결·인권위 권고에도 더딘 제도 개선…선거법 개정에 영향 주목

[더인디고] UN 장애인권리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장애인의 정치적·공적 생활 참여를 단순한 투표권 보장을 넘어 공적 의사결정의 동등한 주체로 참여할 권리로 구체화했다.

위원회는 지난 8월 열린 제35차 회기에서 장애인권리협약(CRPD) 제29조 ‘정치·공적 생활 참여’에 관한 일반논평 제11호(General Comment No. 11)​를 채택했다.

일반논평은 협약에 새로운 권리를 추가하는 문서는 아니다. CRPD에 담긴 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사국이 이를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를 장애인권리위원회가 해석하고 구체적인 이행 방향을 제시하는 공식적인 지침이다.
따라서 이번 일반논평은 특히 장애인의 정치적 권리와 공적 생활 참여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보장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투표에서 공적 의사결정까지…참여의 범위 넓혀

CRPD 제29조는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조건에서 정치적 권리와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투표하고 선출될 권리뿐 아니라 선거 절차와 시설, 선거정보에 접근할 권리, 공적 기능을 수행할 권리, 정치·공적 생활에 참여할 권리가 포함된다.

위원회는 일반논평 제11호를 통해 이러한 권리를 선거일 하루의 투표권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관련해 장애인은 선거 전·중·후의 모든 과정에서 정치적 참여를 보장받아야 하며, 후보자로 출마하고 당선된 이후에도 공직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정치적·공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정당과 시민사회 활동에 참여하며, 공공의 의사 형성과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집회·시위 등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고 공적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도 장애를 이유로 배제되거나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결국 일반논평이 제시하는 정치적 권리는 ‘투표할 수 있는 권리’에서 ‘정치와 공적 생활에 참여할 권리’로 확장된다. 이는 선거가 끝난 뒤 장애인이 다시 정책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현실에 대해서도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비밀투표와 투표조력…‘지원’도 권리의 일부

장애인이 정치적 권리를 실질적으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투표권을 법률상 보장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일반논평은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비밀투표를 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장애인의 정치적 의사가 제3자에게 노출되거나 추적될 위험이 있는 방식으로 투표가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장애인의 필요에 맞는 보조기기와 접근 가능한 투표 장비, 선거정보와 투표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투표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에게는 필요한 지원도 제공해야 한다. 특히 장애인이 자신이 선택한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투표조력은 장애인의 의사를 대신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조력자는 장애인이 스스로 형성하고 표현한 정치적 의사를 그대로 실행하도록 지원해야 하며, 그 선택을 해석하거나 변경·대체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국가는 투표조력 과정에서 장애인의 자율성과 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명확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일반논평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선거환경을 제공받지 못해 불가피하게 제3자에게 의존하게 되는 구조 자체도 문제로 봤다. 즉, 투표조력은 접근성 부족의 대체물이 아니라 장애인의 동등한 참정권을 실현하기 위한 지원 수단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장애인 한 명’으로 대표할 수 없다…실질적 참여와 대표성

일반논평 제11호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참여의 질과 대표성이다.
장애인에게 의견을 말할 기회를 주거나 정책기구에 장애인 한 명을 임명하는 것만으로는 장애인의 정치·공적 생활 참여를 보장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관련해 장애인의 참여는 효과적이고 의미 있어야 하며, 당사자의 의견이 실제 정책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장애인 대표단체를 통한 참여가 중요하다. 장애인은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 유형과 지원 필요 정도뿐 아니라 성별, 연령, 사회적 배경 등에 따라 경험과 요구가 다르다. 따라서 특정 장애인 한 명이 장애인 전체를 대표하는 방식의 형식적·상징적 대표성(tokenistic representation)​을 경계하고, 다양한 장애인의 목소리가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논평의 취지다.

여성과 장애아동·청년 등 정치·공적 생활에서 더욱 배제되기 쉬운 집단의 참여도 별도로 강조했다. 특히 장애아동은 자신의 연령과 발달 수준에 맞는 방식으로 의견을 표현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장애청년 역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공정책과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가족이나 전문가, 서비스 제공자의 참여가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 대표단체의 직접적인 참여를 대신해서도 안 된다.

장애인단체도 ‘협의 대상’ 아닌 독립적 참여 주체

이번 일반논평에선 장애인단체의 역할도 강조하고 있다.
장애인단체는 장애인을 대신해 국가에 의견을 전달하는 단순한 민간단체가 아니라, 장애인이 스스로 조직하고 운영하며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대표하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로 이해돼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관련해 국가는 장애인단체가 정책과 법률의 결정 과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참여에 필요한 정보와 접근성, 합리적 편의와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어 협의 역시 정책이 사실상 결정된 이후가 아니라 정책 구상과 입법의 초기 단계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것도 밝혔다. 또한 장애인단체의 의견을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견이 어떻게 검토되고 정책에 반영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투명한 절차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애인의 참여를 정책 수립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법률과 정책의 의제 설정, 기획과 수립, 집행, 모니터링, 평가 전 과정에서 장애인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공개토론과 공청회, 협의체, 온라인 의견수렴 등 다양한 참여 절차를 마련하고, 장애인이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 가능한 정보와 의사소통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한국의 장애인 참정권, 국제기준에 비춰 다시 봐야

이번 일반논평은 한국의 장애인 참정권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위원회는 2022년 한국에 대한 최종견해에서도 장애인의 선거 참여와 관련해 투표소와 투표 절차·시설·자료뿐 아니라 공개 선거토론, 선거공약, 온라인·인쇄 선거자료 등에 대한 접근성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모든 장애인이 선거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평이한 언어와 읽기 쉬운 형식(Easy Read) 등을 포함한 조치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국내에서도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와 시각장애인의 점자형 선거공보, 청각장애인의 선거정보 접근성 등을 둘러싼 문제 제기가 계속돼 왔다.
법원 역시 발달장애인이 필요한 투표보조를 받지 못할 경우 실질적인 선거권 행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린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올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장애인의 실질적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선거정보와 투표 지원을 마련하고, 점자형 선거공보의 정보 제한을 개선하는 등의 내용이다.

그러나 선관위는 점자형 선거공보의 면수 제한 폐지 등 일부 권고에 대해 이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고,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와 관련한 권고도 충분히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국내에서도 장애인의 참정권을 둘러싼 문제점이 법원과 인권위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됐지만, 권리의 인정과 실제 제도 변화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남아 있다.

22대 국회 공직선거법 개정에 영향 주목

국회에서는 발달장애인 등 기표에 어려움이 있는 유권자의 투표보조를 확대하고, 이해하기 쉬운 선거정보를 제공하며, 점자형 선거공보의 실효성을 높이는 등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일반논평 제11호는 이 같은 국내 입법 논의에 새로운 국제적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장애인의 참정권을 단순히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사대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고 공적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일반논평 자체가 국내법과 같은 직접적인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이 당사국인 장애인권리협약 제29조의 의미와 당사국의 이행 방향을 제시하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공식적인 해석인 만큼, 향후 공직선거법 개정과 선관위의 선거관리 제도 개선 과정에서 중요한 국제인권 기준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국내에서 이미 법원 판단과 인권위 권고가 있었음에도 제도 개선이 지연되고 있는 만큼, 22대 국회의 장애인 참정권 관련 법안 심사와 선관위의 제도 개선이 일반논평 11호가 제시한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참여’ 기준을 얼마나 반영할지 주목된다.

▶ 일반논평 11호 원문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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