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큰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이나 청문회에 출석한 국무위원 후보자들을 보다 보면 종종 과거에 스스로가 한 발언들에 발목이 잡히는 장면들을 보게 된다. 어떤 사안에 대해 당당하게 A라고 말하고 있는 그는 과거 영상 속에서 정반대되는 처지인 B를 강력하게 외치고 있다. 오늘 불거진 한때의 잘못에 대해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말하는 또 다른 후보자는 같은 실수를 저지른 어떤 이를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우던 바로 그였다.
사람의 행동과 생각이라는 것이 처한 상황이나 때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이 전혀 다른 역할들로 채워진 옴니버스 영화에서 같은 배우가 각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처럼 보일 때,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지도, 뽑아 주지도 않는다.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아들을 키울 때 그 나이 때의 나를 기억해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게임할 시간에 책을 한 번 더 보아라.”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그런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불완전성으로 가득 찬 나의 판단이 항상 옳을 리 없기도 하겠지만, 게임을 하는 것보다 책을 보는 것이 낫다는 것이 불변의 진리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욕구가 항상 진리만을 좇도록 설계되지는 않았다. 누군가 30년 전 나의 모습을 소환해 줄 수 있다면, 그때의 나는 게임을 하는 것이 주는 유익함이나 책 대신 이따금 게임을 해도 괜찮은 이유에 대해 나름의 논리로 지금의 나를 설득할 것이다.
집 밖의 경험들로 인해 달콤함과 짭짤함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햇살이는 엄마와 아빠가 먹는 음식은 매워서 못 먹는다는 단순한 통제만으로는 더 이상 욕구를 제어하기 힘든 판단력을 가지게 되었다. 부모의 욕심으로는 생후 천 일 혹은 3년 정도까지는 설탕이나 염분과 분리된 유기농 청정의 먹거리만을 아들에게 먹이고 싶지만, 그 또한 한계가 분명한 내 머리의 판단일 뿐, 아들에게 최선의 결정은 아닐 수도 있다.
TV나 스마트폰의 영상을 보여 주지 않는 것이 아들의 시력이나 뇌 발달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어쩌면 어린 나이에 스마트 기기들을 접하는 것이 줄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도 든다.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과 자극적인 영상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현대인들이 지켜 나가야 할 덕목이라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지만, 내 삶의 적지 않은 장면에서 난 술잔을 기울이고 가십거리 영상을 소비하며 그런 일탈적 휴식의 시간이 필요함을 큰 소리로 떠든다.
내 아들이 내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알고 그런 상황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유기농을 권하면서 정크 푸드를 소비하고 영상을 통제하며 유튜브를 보고 있는 나를 향해 청문회장의 어느 청문위원처럼 날카롭게 나의 태도를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가치 판단만으로 자신을 지켜 내기 힘든 어린아이들에게 어른은 바른 방향을 안내해 줄 의무가 있지만, 우리가 정한 방향성과 판단에 대해 과거의 나와 대화하며 점검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내 결정은 나의 아들이나 제자를 건강하게 만들거나 좋은 성적으로 이끌 수는 있지만, 그것이 그들을 행복하게 하거나 기쁘게 하는 방법인지는 또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엄마 몰래 사 먹은 수많은 불량 식품과 학창 시절 작은 일탈의 시간에 대해 긍정의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는 과거의 나와 대화해야 한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사는 나는 비장애인과 의견을 나눌 때 장애가 없던 어린 시절의 나와 대화해 보아야 하고, 한 아이의 아빠인 나는 총각 선생님들과의 대화에서 오래전 나의 생각들을 끄집어내 봐야 한다.
40년을 훌쩍 넘게 살면서 내가 거쳐 온 위치와 역할과 생각들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별개의 조각들이 아니고, 더 나은 방향으로만 진화한 단방향의 산물도 아니다. 하나의 삶을 거쳐 온 다름의 경험이고, 현재의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참고의 기억들이다.
내가 맡고 있는 오늘의 역할들을 내가 열심히 살아내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다른 역할을 맡게 된 내일의 내가 좀 더 많은 다름과 건강하게 어울려 살게 하기 위함이다. 오늘의 내가 과거의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나의 인생이 그때그때의 처세와 임기응변으로 살아내는 파편의 조각들이 아닌, 하나의 줄기로 조금씩 다듬어져 가는 성장의 서사가 되기 위함이다.
좀 더 나은 자리를 탐하려다 인생 전체를 사상과 철학 없는 거짓으로 평가받는 정치인의 모습이 너무도 안타깝다. 두 살쯤의 나와 열 살쯤의 나와 스무 살쯤의 나와 깊게 대화해 보고 싶은 오늘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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