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삿포로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딩동’ 하는 벨 소리를 듣게 된다. 처음 한두 번 들었을 땐 어느 가게에서 틀어 놓은 알림 벨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이곳저곳에서 반복해서 들리는 종소리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지하철역을 알려주는 건가 싶었는데 그렇지 않은 장소에서도 들렸다. 엘리베이터 알림이라고 하기엔 또 다른 곳에서도 들렸다. 화장실 앞에서도, 개찰구 앞에서도 ‘딩동’ 하는 소리가 났다.
생각해 보니 특정 장소를 상징하는 소리라기보다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주요 장소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려주는 신호였다. 모두 다른 소리로 설정해 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면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 때문에 오히려 시끄럽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그리 크지 않게 울리는 벨 소리는 내가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꼭 필요한 장소들을 요란하지 않게 알려주고 있었다. 인도를 걷다가 지하철역 입구에서 ‘딩동’ 소리가 나면 어떤 상황에서도 입구를 지나칠 리가 없었다.
개찰구에서 나는 ‘딩동’ 소리는 처음 방문한 낯선 역사에서도 도움 없이 플랫폼을 찾아갈 수 있는 훌륭한 안내가 되고, 화장실의 ‘딩동’은 급한 볼일이 생겼을 때 나를 당황하지 않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안내하는 소리가 ‘딩동’ 하나로 모두 같았지만, 시각장애인들도 대략적인 위치 파악이 끝나면 같은 소리가 난다고 해서 혼동하지는 않는다.
역사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역사를 안내하는 것일 테고, 지하철 진입음과 함께 들리는 소리는 개찰구를 안내하는 것일 테다. 물소리가 함께 나면 화장실일 테고, 모터 소리가 들리면 에스컬레이터일 것이 분명하다. 누가 처음 생각한 것인지는 몰라도 다른 이들에게 크게 거슬리지 않으면서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작은 배려로 큰 효과를 내는 좋은 예였다.
외국의 도시들을 다니다 보면 국내에서는 보지 못했던 좋은 사례들을 만나곤 하는데, 이 또한 우리나라에 도입하고 싶은 시스템이었다. 아주 오래전 런던에서 경험한 AD(Audio Description) 서비스가 그랬고,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의 터치 투어가 그랬다. 파리 호텔에서의 휠체어 대여 서비스도, 심지어는 그 나라들에서 만난 사람들의 배려까지도. 해외에 나가기만 하면 너무도 인상적이고 부러운 것들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됐다.
귀국하자마자 내가 한 일은 글을 쓰고 방송에 나가고 강연을 다니면서 선진국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소리치는 일이었다. 그 나라의 제도나 인식이 얼마나 좋은지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더 솔직한 마음은 우리나라에서 내가 얼마나 불편하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불평이었다.
“오디오 디스크립션 서비스는 정말 멋진 경험이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선 이런 게 없어서 스포츠 경기도 관람할 수가 없어요.”라는 뜻이었다. “터치 투어 덕분에 작품 관람을 깊게 할 수 있었죠.” 이 말 또한 “국내에서는 나를 배려해 주지 않아서 박물관에 다니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모두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꽤 많은 해외 경험을 하는 동안 그 나라의 나은 점을 배워 왔다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의 불편함을 들추고 불평하는 시간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시각장애인들의 이동권 토론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역시 다른 나라의 제도들은 우리나라에 없는 부러운 것들이었다. 이번에 들은 것들도 다 정리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알려야지 하면서 나의 발표를 시작했다.
“한국에는 복지콜과 바우처 택시 제도가 있고요. 지하철과 기차에는 안내 서비스가 있어요.” 몇 마디 하기도 전에 나에게 질문들이 쏟아졌다. “복지콜이 24시간 운영된다는 것은 밤에도 부를 수 있다는 뜻인가요?”, “택시 요금을 그렇게 적게 받는다고요? 모든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나요?”
처음 발표를 시작할 땐 ‘우리는 특별한 제도는 없고 이런 정도만 있어요.’라는 마음으로 소극적으로 시작했는데, 질문을 받고 대답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깨가 올라가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요. 조금 늦게 잡히기는 하지만 밤에 집에 못 돌아갈 염려는 없지요.”
“맞아요. 가격도 저렴하고 기사님들의 서비스도 매우 훌륭합니다.”
다른 나라 발표자들의 사례 중엔 여전히 우리나라에 없는 탐나는 제도들이 수두룩했지만, 다른 이들도 내가 누리고 있는 혜택에 대해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토론회가 끝난 뒤 이어진 좌담에서도 각자 자기 나라에 없는 서로의 제도들에 대해 감탄하고 질문했지만, 나의 경우는 이전과 좀 달라져 있었다.
새롭게 알게 된 복지 시스템에 관심이 가긴 했지만, 그것이 무조건 우리의 것보다 나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것은 다른 나라의 것이 좋았지만, 또 어떤 것은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것이 낫기도 했다. 배우고 도입할 것은 그것대로 추진해야 했지만, 다른 이들이 가진 좋은 단면만을 보고 나의 상황을 불평하고만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익숙해져 버린 감사는 잊은 채 아직 가지지 못한 것들만 동경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삿포로의 ‘딩동’ 소리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이고, 우리나라에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엔 그것과는 다른 배려 서비스들이 존재한다. 무임승차 제도도 있고 안내 서비스도 있다. 다만 그런 것들은 너무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을 뿐이다.
난 지금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것은 나의 재활 상태가 훌륭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난 이미 많은 서비스의 혜택을 보고 있고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다른 나라에 있는 것들을 부러워하는 만큼 내가 누리는 것들에도 충분히 감사해야 한다. 내가 그런대로 잘 살고 있는 것은 나에게도 그럴 만큼의 멋진 환경들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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