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랑의집 폐쇄 3년… 13명에게 남은 선택지는 또 ‘시설’

61
▲제주 사랑의집 전경 /유튜브 캡처
▲제주 사랑의집 전경 /유튜브 캡처
  • 퇴소 24명 중 20명은 타 시설로…지역사회 자립 단 2명
  • 제주시, 전원 대상 시설 25곳 안내하면서 자립 정보 미제공
  • 안내 시설 9곳 중 5곳은 정원 30인 초과…자립 신청에는 ‘7일’ 기한
  • 복지부, 지난해 도외시설 전원 협조 요청…“시설 아닌 지역사회 전환 국가가 책임져야”

[더인디고] 반복된 학대로 2023년 7월 시설폐쇄 처분을 받은 제주 장애인거주시설 ‘사랑의집’이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8월 1일 문을 닫았다. 하지만 시설에서 생활하던 장애인들의 삶이 지역사회로 전환하지 못하고 또 다른 시설로 이동하는 현실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폐쇄 이후 퇴소한 24명 가운데 20명은 다른 장애인거주시설로 옮겨졌고, 지역사회에서 자립한 사람은 2명에 그쳤다. 2명은 가정으로 돌아갔다. 현재도 사랑의집에는 중증 발달장애인 13명이 남아 있다. 제주시는 이들을 전원시키기 위해 오는 10월 31일까지 임시운영 기간을 두고 있다. 임시운영의 목적도 ‘이용자 전원 조치를 위한 최소한의 운영’으로 명시했다.

시설을 폐쇄한 뒤에도 상당수 장애인이 또 다른 시설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집 폐쇄 후 24명 중 20명은 또 다른 시설로

서미화 의원실이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시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랑의집 폐쇄 처분 이후 퇴소한 24명 가운데 다른 시설로 전원된 사람은 20명으로 전체의 83%에 달했다. 반면 지역사회 자립으로 전환한 사람은 2명, 가정으로 돌아간 사람도 2명에 그쳤다.

전원된 장애인 중 일부는 인천, 청주, 강릉, 안산 등 제주도 밖 시설로 옮겨졌다. 잔류자 가운데 1명은 현재 경기도 시흥시 소재 시설에 가입소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설폐쇄가 곧 지역사회 전환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설 목록은 있었지만, 자립 정보는 없어

남아 있는 13명에 대한 제주도의 전원 방식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제주시는 지난 7월 보호자들에게 공문을 보내 “적합한 거주시설로 전원”하는 데 협조해 달라고 안내했다. 그러나 해당 공문에는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주거·돌봄·활동지원 등 자립 관련 정보는 포함되지 않았다.
9월에는 희망하는 전원 시설을 알려달라는 내용과 함께 전원 대상 시설 25곳의 목록을 보호자들에게 전달했다.

이 가운데 유형별 장애인거주시설 9곳이 안내됐는데, 5곳은 정원 30명을 초과하는 시설이었다. 서비스 안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단기장애인거주시설도 목록에 포함됐다.

반면 자립을 희망하는 경우에는 욕구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안내하면서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제출 기한은 9월 21일까지였고, 공문에는 “기한 내 제출자에 한해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자립을 원하는 당사자와 가족에게 충분한 선택지와 정보를 먼저 제공하기보다, 우선적으로 다른 시설로의 전원을 안내한 셈이다.

특히 현재 사랑의집에 남아 있는 13명은 모두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10대 미성년자부터 4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지만, 평균 입소기간은 약 15년에 이른다. 어린 시절부터 사랑의집에서 생활한 장애인도 있다. 만 8세에 입소해 17년을, 만 10세에 입소해 16년을 시설에서 살아온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게 다른 시설로의 이동은 단순한 ‘전원’이 아니다. 삶의 대부분을 시설에서 보낸 장애인이 기존 생활공간을 떠나 또 다른 집단거주시설로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랑의집은 학대가 반복돼 폐쇄된 시설이다. 학대 피해를 경험한 장애인이 충분한 회복과 지역사회 전환을 지원받지 못한 채 또 다른 시설로 이동한다면, 시설폐쇄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인 당사자의 의사와 욕구를 확인하고,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주거와 돌봄, 건강관리, 일상생활 지원 등을 개인별로 설계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발표했지만…

사랑의집 문제를 제주도와 제주시만의 책임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10일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를 발표했다. 그런데 불과 나흘 뒤인 9월 14일 제주시는 사랑의집 보호자들에게 전원 대상 시설 목록을 전달했다.

앞서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18일 개최한 장애인거주시설 시·도 간담회에서는 사랑의집 이용자의 도외시설 전원에 대한 협조 요청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사랑의집 장애인의 전원 문제가 이미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공유된 사안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내년에는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장애인지역사회자립법)’ 시행과 함께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지원이 본사업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시설에서 장기간 생활한 장애인이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는 시점인 만큼, 학대 피해 장애인의 전환을 단순한 ‘시설 간 이동’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미화 의원은 “학대로 문을 닫은 시설의 피해 장애인들을 또 다른 시설로 보내는 것은 피해의 연장”이라며 “보건복지부와 제주도, 제주시가 자립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당사자와 가족에게 제공하고, 전원이 아닌 자립을 기본값으로 한 개인별 지원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선언한 정부가 지자체 소관이라며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며 “보건복지부는 사랑의집 13명 전원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지원 본사업 및 통합돌봄 우선 연계 등 직접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인디고 THE INDIGO]

▶ 관련 기사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 본격화…주간활동·최중증 돌봄 확대

더인디고는 80대 20이 서로 포용하며 보듬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인터넷 저널입니다. 20%의 사회적 소수자의 삶을 쪽빛 바닷속 살피듯 들여다보며 80%의 다수가 편견과 차별 없이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할 수  있게 편견의 잣대를 줄여나가겠습니다.

0 Comments
Langua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