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레벨업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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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고ⓒPixabay
▲포켓몬고ⓒPixabay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5년째 ‘포켓몬고’라는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다. 제작 업체에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여 달라는 편지를 몇 차례 보냈지만, 그 이후로도 나의 편의성이 높아지지는 않았다.

눈으로 보아야만 할 수 있는 부분들은 주변의 도움을 받거나, 너무 큰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재미는 포기하면서 나만의 게임 루틴을 만들고 즐기고 있다.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하면 레벨업의 속도도 느리고, 누릴 수 있는 콘텐츠의 폭도 좁다. 하지만 나름의 재미를 추구하며 최고 레벨인 50레벨에 몇 걸음 남지 않은 43레벨에 올랐다.

현실에서의 내 삶 또한 포기할 것은 내려놓고 느린 속도를 인정하며 사는 터라 꾸준하게 즐기고 있다. 그렇다고 ‘조금 더’라는 욕심마저 완전히 쿨하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안 보여도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볼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걸 수 있어.”라고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에는 같은 게임을 새로 시작한 친구가 생겼다. 1레벨부터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하는 친구에게 난 그동안 축적한 정보를 주고 친구는 나의 눈이 되어 내 즐김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처음엔 ‘아이템 정리만 부탁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편리해지니 ‘몬스터 정리도 부탁해볼까?’가 되고 며칠 지나서는 ‘유저끼리 하는 베틀까지는 같이 해도 좋지 않을까?’하면서 내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의 크기가 커져간다. 착한 친구 덕분에 난 그전보다 훨씬 더 많은 콘텐츠를 즐기고 나의 레벨도 어느새 한 단계 더 높은 44레벨에 가까워졌다.

‘43레벨도 괜찮아!’라고 생각하던 내 머리는 어느 틈에 50레벨을 향해 있고 아무렇지 않게 참을 수 있던 정리되지 않은 아이템들도 이젠 매일 매 시간 정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더 재미있어졌지만 더 큰 갈증이 생겼고 내 즐거움을 나누려고 했지만, 누군가를 귀찮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자릿수 레벨을 겨우 벗어나고 있는 친구는 나와는 반대로 아무런 욕심도 없이 마냥 게임을 즐기고 있다. 작은 포켓몬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즐겁고 아이템 하나만 더 생겨도 뛸 듯이 기뻐한다. 내겐 큰 의미 없이 보이는 성취로도 그는 충분한 만족을 느끼고 행복해한다. 반면에 나는 조금 더 누릴 수 있다면 무작정 즐거울 거라 생각했는데 레벨업이 될수록 욕구의 크기만 커졌다. 44레벨, 45레벨이 되어도 50레벨의 끝이 되기 전까지는 난 그럴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몬스터 몇 마리를 잡고 새로운 과제 몇 가지가 더 주어지겠지만, 그것을 다 이룰 때까지 난 조급할 것이고 목마를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 이루는 순간 재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1레벨에겐 1레벨만의 과제가 있고 그것은 그것대로 즐겁다. 2레벨, 3레벨, 나 같은 43레벨에게도 그렇다. 내 친구처럼 우리가 게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그때 그 상황에 맞게 도전하고 즐기고 웃을 수 있어야 한다. 굳이 조급하게 올라가려고 할 필요도 더 잘하는 유저처럼 되려고 발버둥 칠 필요도 없다. 잘못하면 나도 기쁘지 않고 다른 이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다.

보이지 않지만 난 여전히 충분히 행복하다. 내 목표가 오로지 보이는 것이라면 난 시력을 회복한 이후에도 또 무언가를 더 얻기 위한 끝없는 조바심 속에 살아갈 것이다. 더 많이 가지고 이룬 것만이 답은 아니다. 끝없이 허우적거리는 것도, 다 이루고 허탈해 하는 것도 내 삶의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난 다시 지금의 레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즐거워하는 연습을 하려 한다. 레벨업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늦어지더라도 혹은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어느 날 ‘나이앤틱’의 도움으로 접근성이 개선된다면 그 또한 너무나 기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그대로 플레이를 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모두 각자의 레벨에서 각자의 행복을 찾기를 바란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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