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새 운동화와 친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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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꽃 ⓒunsplash
▲선인장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꽃 ⓒ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운전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새 차를 구입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할 때처럼 낯선 종류의 핸들을 잡게 되면 다소간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운전 못 하는 나 같은 사람이 느끼기엔 똑같은 모양의 핸들과 발판을 사용하는 것 같지만 약간의 높이와 모양의 차이는 큰 차이로 다가오는 듯하다. 어떤 이에게는 두려움이기도 한 그 낯섦을 보이지 않는 난 새 운동화를 신을 때 느끼곤 한다.

아내가 선물해 준 운동화는 가격으로 보나 브랜드로 보나 다른 인터넷의 정보들로 보아도 좋은 신발임이 분명했다. 발목의 피로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것만 같은 푹신함에 깔끔한 디자인도 맘에 들었다. 갓 출시된 어느새 차를 받아본 이의 마음이 이런 것인가 상상할 만큼 선물은 저절로 마음을 들뜨게 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부터 바로 내 발과의 협업을 시작한 운동화의 첫 느낌은 역시나 최고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떼어 놓은 발걸음이 가볍고 출근길은 괜스레 짧아진 것 같았다. 아내의 팔을 붙잡고 안내를 받을 때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서로의 출근길을 향해 손을 놓았을 때부터 조금 다른 상황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매일 다니던 길인데 처음 가는 길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운동화의 높이가 달라지면 얼마나 달라졌겠냐마는 괜히 작은 턱에도 걸리는 것 같고, 신발의 길이가 크게 변한 것도 아닌데 계단의 넓이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주춤거리기 일쑤였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신중하게 길을 걸었다. ‘사이즈가 작은가?’라고 고민하다가 ‘사이즈가 큰 건가’라고 반대의 생각이 들기도 할 만큼 불안한 부적응의 상태가 이어졌다.

“오빠! 새 운동화는 어때?”라는 말에 “최고지!”라는 대답은 분명 진심이었지만 다른 한 편에서 느껴지는 불안과 낯섦도 현실이었다. 복도를 걸을 때도 운동할 때도 신고 벗을 때마저도 어색하고 불편했다. 언젠가 새 차 뽑았다고 자랑하며 드라이브해 주던 친구가 마음껏 엑셀러레이터를 밟지 못하던 이유를 이제야 공감했다.

멈칫멈칫! 주춤주춤하던 시간이 지나고 며칠이 더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운동화와의 호흡이 맞아갔다. 그제야 처음 아내 팔 붙잡고 느꼈던 푹신함도 느껴지고 가벼움도 살아났다. 조금 더 지나서는 ‘이래서 좋은 운동화 신는 것이구나!‘라는 감탄사도 절로 나왔다. 오래 뛰어도 피곤하지 않은 것 같고 약간 불편했던 관절도 나아지는 것 같을 만큼 좋았다.

새 차 샀던 내 친구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쌩쌩 달렸던 걸 보면 새로움은 언제나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학교에 입학했던 아주 어릴 적 꼬마 시절에도 그랬지만 첫 직장을 얻었을 때도 직장을 옮겼을 때도 집을 이사할 때도 그 변화의 의미가 긍정이든 부정이든 낯섦과 불안함이 동반되었다. 지금의 내가 특별히 불편함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면 그런 것들은 대부분 적응의 시간이었을 뿐 얼마간의 시간 이후 안정으로 귀결되었다.

살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경험하지만, 그것이 익숙해질 거라는 확신은 곧 잘 잊고 산다. 새로 만난 사람이나 새로 부여된 역할과 새로운 환경도 적응의 시간 속에 편안해진다. 교사로서 남편으로의 역할도 시간이 지나면서 편안함이 되었지만 마흔이 넘은 나이와 보이지 않는 눈마저도 내겐 익숙함이고 편안함이 되었다.

새 차에, 새 운동화에, 혹은 또 다른 새로움이 불안하다면 시간 속에 익숙해지는 내 적응의 힘을 믿기 바란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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