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오늘은 아파서 즐겁다

0
54
▲운동기구 바벨.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하루에 두세 시간씩이라도 매일 운동하던 내가 개인적인 일들로 한동안 제대로 된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틈틈이 맨손 운동도 하고 계단으로 움직이려고 하긴 했지만, 몸이 무거워지고 찌뿌둥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별것 아닌 몸의 차이였겠지만 운동 좋아하는 내가 느끼는 몸의 무거움은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답답함이기도 했다.

마침 찾아온 짬 나는 시간을 최대한 이용해서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달리고 뛰고 들고 당기고… 전에는 어렵지 않게 습관처럼 하던 동작들이 어느새 어색해져 있었다. 힘들더라도, 무겁더라도 더 들어보려고 했지만, 무게를 낮추어도 지속해서 반복 운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다리가 아플 정도로 달리고 싶었지만, 몇 분 되지 않아 숨이 차오고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마흔 넘으니 안 선생도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한다. 나 자신도 ‘이젠 예전처럼 되기는 힘든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또 들고 또 뛰고 또 달렸다. 한 번에 못 달리면 한 참 걷다가 다시 달리고 여러 번 못 들면 조금 더 쉬고 난 뒤에 다시 들었다. 1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고 더 며칠이 지날 때쯤 몸 상태의 변화가 조금씩 느껴졌다. 여전히 힘들었지만, 지난주보다 어제보다 한 번 더 들고 1분 더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몇 주가 지나고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그것이 찾아왔다. 상완이두근과 삼두근, 삼각근과 승모근, 광배근과 대퇴사두근, 비복근과 복직근… 드디어 그곳들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통증이 찾아왔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반가운 신호가 바로 근육통이다. 몇 시간 공들여서 운동한 그 부위가 다음날 뻐근한 통증을 가져올 때 비로소 난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며칠이 지나도 가벼운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는 근육들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과는 반대로 말이다.

근육통이 있는 상태에서 바벨이나 덤벨을 든다는 것은 그렇지 않았을 때 비해 당연히 더 힘들다. 하지만 그 감각이 의미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뻐근함은 내게 있어 시원한 마사지처럼 느껴진다. 그제도 달리고 어제도 달리고 오늘도 달리다 보면 누적된 피로 같은 것이 올라오지만, 그 또한 몸이 변하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을 알기에 참는 기분마저 달콤하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은 근육이 더 많이 아프다. 내 근육을 구성하는 작은 근섬유들은 그 용적과 가진 힘의 한계를 느끼고 조금씩 손상되고 찢어진 것이 분명하다. 내 몸은 다음번에 오게 될 것 같은 자극 혹은 그보다 더 큰 자극에 대비하기 위해 더 많은 양의 근섬유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난 어제보다 더 무거운 바벨을 더 많은 횟수로 들게 될 것을 안다. 당분간은 피곤한 몸 때문에 더 많이 숨이 찰 것을 알지만 조금만 견디면 며칠 뒤엔 더 빨리 더 오래 뛸 수 있게 되는 것을 안다. 그 증거가 다름 아닌 오늘의 통증이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딱딱하고 한 번 부러진 뼈는 더 단단하고 굵게 재생되어 붙는다. 사람이 하는 대부분의 신체 운동은 아프고 찢어지고 붓고 하면서 조금 더 강해지고 발달한다. 처음 운동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아픔 때문에 멈춰 서거나 돌아설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선 희열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근육통들에 기쁨과 성취감을 느낀다. 오늘은 아프지만, 그 아픔이 닿을 곳이 성장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몸이 자라는 일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자라고 인격이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무 어려움도 불편함도 없이 자라고 성장하기를 원하지만, 근육들이 그렇듯 마음도 인격도 아픔을 거치지 않고는 성장하기 어렵다.

부모님께 선생님께 혼나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알게 되고 친구들과 다투면서 함께 살고 관계하는 것들에 대해 조금씩 배워왔다. 비에 젖고 눈길에 미끄러지고 시리도록 추운 날을 겪으면서 사계절을 배우고 휘청거리고 넘어지면서 일어서고 버티는 힘을 길렀다. 근육을 단련해가듯 의도적으로 아픈 삶을 살 수까지는 없겠지만 힘든 시간이 나의 내일에 어떤 시간으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 이제는 조금씩 알아간다. 어느 생일날의 파티처럼 웃고 즐길 수 있는 날들로만 삶이 채워질 수는 없다. 사람이기에 아파야 하고 아프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다.

내게 있어 실명이 소중한 것은 그 아픔의 크기가 큰 만큼 내가 더 큰 것을 볼 수 있게 된 성장의 계기가 되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원하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도, 사랑하던 이들과 원치 않던 이별을 경험했을 때도 그 아픔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난 마음 근육의 근섬유를 늘려갔다.

근육통을 겪으면서 내 근육은 조금씩 성장한다. 삶의 어려움을 넘어서면서 난 조금씩 인생의 맛을 아는 어른이 되어간다. 오늘의 근육통을 반가워하며 한 번의 바벨을 더 들어 올리는 것처럼 내 삶의 오르막길을 즐길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승인
알림
66470099a21c0@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