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난 딱하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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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에 ‘Good Vibes Only’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Unsplash
▲모래사장에 ‘Good Vibes Only’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로 나가는 계단을 향하는데 “어디로 가셔요?”라는 할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긴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었지만 한 마디만으로도 연세가 지긋하신 인자한 어르신인 것을 짐작하기엔 충분했다. 따뜻한 마음이 느껴짐에 감사하며 “익숙한 곳이라 혼자 가도 괜찮습니다.”라고 정중히 말씀드리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럼에도 내가 가는 길이 못내 걱정되셨는지 할머니는 느린 걸음으로 내가 가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계단을 무사히 찾고 오르는 내 뒤통수에 어르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딱한 것! 아이고! 딱해서 어째?”

할머님의 그 마음이 너무나 커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라도 나를 지속해서 도와주길 바라시는 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도 컸다. 감사한 마음은 순간적으로 온데간데없어지고 불쾌한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다. 난 분명 딱한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의 그런 시선이나 판단을 받을 이유도 없는 사람이다. 길 조금 알려주려고 했다고 공공장소에서 공개적으로 내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여러 사람의 시선이 내게 모이는 것 같아 피부가 쭈뼛거리기도 하고 괜스레 누가 따라오는 것 같아 발걸음도 빨라졌다. “딱한 것! 딱한 것! 딱한 것! 딱한 것! 쯧쯧쯧!!” 환청 같은 것이 반복적으로 들리는 것 같고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만나기로 한 친구는 마침 늦는다고 하고 내 머릿속은 시내 한복판에서 반강제적으로 할머니의 발언과 그 의미에 대해 곱씹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의도는 다시 생각해도 선한 것임에는 분명했다. 그렇지만 내게 있어 딱하다는 단어는 어울리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고 예의 있는 것이 아닌 것 또한 분명했다.

만약 내가 다시 내려가서 어르신에게 올바른 표현이 무엇인지 알려드리고 앞으로 다른 장애인들에게는 그렇게 하실 것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의 그런 행동들은 용기인가? 이해심의 부족인가? 정의 구현인가? 또 하나의 예의 없는 오지랖인가? 수십 가지 생각이 오가는 가운데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의 음성에 오래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음성이 겹쳤다.

그랬다. 생각해 보니 ‘딱한 것!’ 그 말은 우리 외할머니가 나를 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었다. 당신이 건강하실 때도 치매로 힘들어하시던 시간에도 내 얼굴을 마주하시면 그렇게 말씀하셨다. 재미있는 건 내가 눈이 보이지 않을 때도 그러셨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그러셨다. 내가 한 번도 할머니에게 난 딱하지 않다고 조리 있게 주장하지 않았던 것은 그 표현은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표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어느 때부터인가 그런 말은 듣는 사람이 불쾌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교사라는 직업적 책임감은 그런 것을 고쳐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할머니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더 좋았다. 또 언제부터는 나의 교정작업이 가져올 긍정적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작은 지식으로 인한 언어의 수정이 할머니의 오랜 시간 지속해온 습관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도 했던 것 같다.

할머니는 나를 만난 처음부터 돌아가시는 날까지 나를 ‘딱한 것!’이라고 불렀고 난 그 말을 ‘사랑한다!’ 또는 ‘기운 내라’ 같이 들었다.

할머니는 수십 년간 손자·손녀들의 한글 선생님이기도 하셨는데 외갓집 안방 한쪽 벽엔 그림과 한글이 짝지어져 여러 칸으로 분할되어 있는 한글공부 종이가 크게 붙어있었다. 어느 나이 많은 사촌부터 꼬마 사촌까지 그 종이로 공부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 적힌 원숭이, 만두, 비행기는 언제나 ‘원생이’ ‘맨두’ ‘비양개’로 또박또박 가르쳐졌다. 그림도 글자도 언제나 똑바로 적혀있는데 할머니는 온 마음을 다해 손주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셨다. 어린 꼬마 녀석이 원생이, 맨두, 비양개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 틀린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할머니의 교육을 나무라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잠시 웃고 지나갈 헤프닝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아이들의 발음은 고쳐줘야 했지만 할머니의 사투리는 우리의 힘으로 고칠 수도 없는 것이었고 고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그대로 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부탁한 적도 없는 한글 교육을 열정적으로 하고 계신 할머니의 마음만 감사히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친구를 만나고 학교에 가면서 어렵지 않게 원숭이, 만두, 그리고 비행기의 올바른 이름을 찾았다.

세상엔 바르지 않은 표현과 단어들이 숱하게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표준화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으로 바꾼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고 또 불필요하다.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노력이야 당연히 중요하겠지만 예외는 존재하고 그런 부분들은 우리의 아량과 이해로 채워져야 한다.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는 내게 “딱한 것!”이라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분명 최선을 당한 응원의 표시였고 힘을 내라는 기도였다. 난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할머니를 돌아보며 “고맙습니다. 할머니! 기운 내겠습니다. 파이팅!”이라고 말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많은 순간 내게 주어진 역할은 장애인의 올바른 인식을 전파하는 용기이지만 그 순간 내게 필요했던 건 딱하다는 단어를 ‘응원한다’로 들어줄 수 있는 젊은이의 아량이었다.

용기! 정의! 올바름! 때로는 그런 것들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융통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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