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변화가 만드는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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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공사로 인해 차량이나 자전거는 다닐 수 없다는 안내 표지가 세워져 있다. /사진=픽사베시
▲도로 공사로 인해 차량이나 자전거는 다닐 수 없다는 안내 표지가 세워져 있다. /사진=픽사베시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아침 출근길 지하철 출입구가 공사 중이다. 알고 있던 다른 출구로 돌아가 보지만 그곳 역시 공사가 시작된 듯하다. 다른 이들에겐 또 다른 출입구를 찾으면 되는 약간의 불편함 일 수 있지만 내겐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무기력한 장애인으로 돌아가는 사건이 된다. 어쩌면 다른 이들은 벽에 붙어있는 친절한 안내문으로 꽤 오래전부터 오늘의 사태를 합의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난 출근길 아니라 집안의 가구 위치만 변해도 쿵! 쿵! 부딪히는 적응 기간을 가져야 하고 놓인 물건의 위치만 옮겨져도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된다. 편리해지고 더 나아지는 변화의 과정이지만 내겐 그런 바뀜이 늘 달갑지만은 않다.

인간에게 처음 문명이 일어나고 문화가 생겨났을 때부터 사람들은 자신에게 좀 더 편하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세상의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는 일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길을 만드는 것도 집을 짓는 것도 곳곳에 표지판을 세우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긴 했지만, 다수의 편의를 위해 공동체는 그것들을 만들고 설치하는 일에 동의했다.

좀 더 안전해지고 좀 더 편안해지고 좀 더 멀리 갈 수 있는 일들이 진행되면서 인간의 삶의 질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 혜택은 언제나 다수의 몫이었다는 것이다. 계단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많은 이들에겐 더 높은 곳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의 상승으로 다가왔겠지만, 어떤 이들에겐 배제되는 공간의 확대였다. 곳곳에 안내판이 설치되는 것은 다수에겐 편리해지는 과정이었지만 눈이 불편한 사람들에겐 정보 불균형의 출발점이었고 왁자지껄하게 모이는 광장의 문화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들에겐 또 다른 장애 선고였다.

비슷한 신체 능력 가진 다수들은 세상이 변할 모양을 결정할 때 조금 다른 이들의 입장을 모르기도 했지만, 알고 있는 몇몇이 있다 하더라도 다수를 소수가 설득하기는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모두가 편해지는 것보다는 다수만 편해지는 쪽으로 결정은 내려지곤 했다. 그렇게 불편함이 커진 소수들을 언젠가부터는 장애인이라 부르고 몇몇은 그들의 편의를 되찾아 주기 위해 경사로를 만들고 점자를 붙이고 수어 통역을 하기도 했지만, 또다시 변하는 세상에서 다수의 결정은 소수를 포함하는 일을 또 잊고 또다시 배제하는 일을 반복한다. 높은 빌딩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날 때 현관의 놓인 턱 하나는 휠체어 탄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구분 짓는 장벽이 되었고, 스마트폰이 개발되고 터치패드가 일상화되는 세상에서 눈 못 보는 이들은 문화지체인으로 분류되었다.

내가 장애인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것은 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이 변하는 과정에서 나 같은 소수는 다수를 설득하지 못했고 그 이유로 세상은 점점 내가 불편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몇 번의 큰 변화가 있을 때 우리에겐 모두가 나아질 기회가 있었지만, 다수는 소수를 포함하는 더 나은 변화를 효율과 경제의 논리로 그럴듯하게 뒤로 미루어 버렸다. 몇 년 전 코로나라는 새로운 위기가 닥쳤을 때도 그랬다. 국민 모두에게 마스크가 씌워지고 학교의 수업과 회사의 업무 형태는 온라인으로 급격하게 변했지만, 그 와중에 소수에 대한 고려는 찾기 힘들었다. 많은 이들은 이제야 제대로 된 방역 의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싹을 틔웠다고도 했고 합리적인 재택근무와 교육모델이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어쩌면 다수에겐 이번에도 소수 배제를 덮을 그럴듯한 논리가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마스크가 덮어버린 사람들의 입은 상대의 입을 보며 대화해야 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겐 음 소거된 스피커일 뿐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플랫폼들 속에서 시각장애 있는 학생들은 무기력하게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이들이 되었고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공공의 방역센터나 집 근처 병원들은 휠체어 탄 이들을 무방비 무장해제 상태로 내몰았다. 예상 못 한 변화 속에서 다수의 결정은 코로나를 극복한 역사적 모범사례로 기록되고 인간의 새로운 진화모델로 칭송받겠지만 안전지대에 포함되지 못했던 소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대화가 통하는 다수 종족의 일부를 설득하는 부가적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투명한 마스크가 보급되고 접근성 가능한 플랫폼과 진료센터들이 생겨나면서 소수는 다수의 편의에 조금이나마 다가갔지만, 세상은 코로나 종식이라는 또 다른 변화 앞에 놓였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고 온라인은 대면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간다고 이야기들 하지만 사람의 역사는 되돌아가는 듯하게 완벽히 다른 미래로 간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전에 우리가 살던 세상과는 확연히 다른 구조와 시스템들로 변해 갈 것이다. 그 방향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이들이 다수 종족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

다수만을 위한 결정은 짧은 시간에 많은 이들을 편리하게 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편안했던 소수를 또다시 불편하게 만드는 나쁜 일임도 분명하다. 세상을 나아지게 만들려는 변화를 시도한다면 나아지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나누어 더 불편해지고 배제되는 이들은 없는지 바라보기를 바란다.

인간들이 지향하는 세상의 올바른 변화에 소수가 배제되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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