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두 몸의 정체성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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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 두 개의 그림자. /사진=픽사베이
▲하나 사물에 두 개의 그림자.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언어사회학자인 백승주는 자신의 책 ‘미끄러지는 말들_혀의 연대기’에서 자신의 혀가 두 개가 있다고 고백한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싶기도 하겠지만, 그의 고백은 사뭇 진지하다. 첫 번째 혀는 고향인 제주도 말을 하는 혀와 두 번째 혀는 낮은 목소리 톤으로 표준어를 구사하는 교양 있는 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개의 혀는 쓰임에 따라 사회적 계급을 규정하게 되는데 사회언어학에서는 힘이 약한 집단 또는 개인은 힘이 센 언어의 위세를 빌려 와 자신의 약함을 벌충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힘이 센 언어는 두 번째 혀로 구사되는 교양 있는 말일 터다. 마찬가지로 나의 장애를 가진 몸의 정체성 또한 백승주의 혀처럼 세월에 따라 혹은 사회적 환경에 맞춰져 왔다.

다름을 인정하는 몸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몸.
이 양극단의 장애정체성은 때로는 사회의 시혜적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동원되거나 비장애인과 동등한 삶의 기본권을 요구할 때 적절하게 이용한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내내 나의 몸은 누군가의 일방적인 도움이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이동은 기거나 누군가의 등에 업혀야 했으므로 나의 몸이 다르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시킴으로써 도움의 양과 질적 향상을 유지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는 행위의 명분과 보람을 제공해 도움의 지속성을 도모한다. 이러한 지혜는 세월이 흐르고 성공과 실패를 되풀이하면서는 쌓인 경험들이 두터워질수록 더욱 영악스러워지고 교묘해진다. 그렇다고 몸의 다름을 인정한 마당에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반면에 장애를 가진 몸이 장애가 없는 몸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평등에 근거한 보편적 몸의 가치 안에 장애를 가진 몸을 등치시켜야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즉 ‘정상’된 몸의 가치와 ‘비정상’의 가치가 보다 넓은 의미의 사회적 가치 안에서 긴장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장애를 가진 몸의 일상적 경험들은 ‘정상’인 몸을 가진 사람들의 경험을 공유할 수는 있지만 공감은 얻어내기에는 쉽지 않다. ‘정상’인 몸이 사회적 지지를 받는 가치와 장애를 가진 몸으로 사회적 지지를 받는 가치는 보이지 않는 구조적 장벽 사이에서 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긴장 상태는 사회적 가치인 평등에 근거한 기본권이 부여되더라도 동시에 장애를 가진 몸은 다름을 인정한 하찮은 몸으로 구분되거나 배제되는 현재의 정치·경제적 시스템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몸은 백승주의 두 개의 혀처럼 다름을 인정하는 몸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몸 사이를 무시로 오가며 그 쓰임에 따라 재빠르게 수정되고 변용을 꾀한다. 하지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몸의 욕망과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온 경험 사이의 격차는 어쩔 수 없는 불일치로 격렬하게 부딪쳐 부서지곤 한다. 이 모순적 상황은 장애를 가진 몸이라는 현장의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종종 세상살이가 전보다 나아졌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장애를 가진 몸이야 한결같고 더구나 이제는 늙어 한 뼘 높이의 문턱도 버둥대며 겨우 넘을 만큼 운동 능력도 쇠잔해졌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몸으로써 마땅히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사회적 지원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또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몸으로써의 권리도 법제도를 통해 분명하게 보장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착각을 깨우는 건 언제나 엄혹한 현실이다. 이제 다름을 인정하는 몸으로 살기 위해서는 명분과 보람 대신에 다른 몸 중에서도 더 심하게 달라야 하는 제도 때문에 판정의 도마 위에 놓여야 한다. 그렇기에 ‘다름을 인정한 몸뚱이’로 거리를 누비며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몸’들의 풍경을 매일 목격한다.
문득, 나의 두 몸이 내게 늙고 지쳐 옅어진 목소리로 묻는다.

더 나은 세상이라면 다르거나 다르지 않은 두 몸이 아닌, 장애를 가진 단일한 한 몸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하지 않냐고 말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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