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장애를 가진 이들의 투쟁이 ‘불법’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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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간에서는 이들의 투쟁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한다고 주장한다. 되레 묻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만큼 좋았던 적이 있었던가? ⓒ 더인디고 편집
▲항간에서는 이들의 투쟁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한다고 주장한다. 되레 묻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만큼 좋았던 적이 있었던가? ⓒ 더인디고 편집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윤석열 대통령의 시민단체 불법 보조금 사용에 대한 질타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활동을 옥죄려는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의 노력이 실로 가상하다. 여당의 시민단체선진화특별위원장이라는, 맡은바 중책에 충실하겠다는 거야 뭐라 트집을 잡을 일도 아니고, 보조금을 불법 사용하는 시민단체들을 발본색원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를 뭐라 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 본보기로 삼은 시민단체가 전장연이라는 데에는 고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물론 그동안 전장연의 시위에 대해 국민의힘은 못마땅해했고, 끊임없이 트집을 잡았다. ‘최대다수의 불편’이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겼던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그러했고, 명절을 앞두고 ‘처벌’을 촉구했던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 그리고 오세훈 서울시장까지 거듭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비난했다. 그 과정을 통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지하철 시위는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고 비난 못지않게 시민들을 공감과 지지도 끌어냈으니 전장연 입장에서는 그리 손해 보는 싸움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 싸움의 양상은 다르다. 이준석 등과의 싸움이 시위의 당위성에 대한 명분 찾기였다면 하태경은 보조금 유용을 트집 잡았다. 이를테면 시민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예산 낭비 문제를 언급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켜 일단 싸움의 기선을 잡자는 것.

보조금 유용 여부 특히 ‘최중증장애인 권리중심공공 일자리’의 직무인 장애인 권익옹호 활동이 시위 참여까지 해석될 수 있는지는 경찰조사 이전에 사업의 목적부터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 사업은 노동시장 참여가 불가능한 최중증장애인의 고용을 위해 서울시가 2020년 도입한 사업이다. 직무유형으로 △장애인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등이 직무로 서울시는 그동안 ‘장애인 권익옹호를 목적으로 한 집회 참여’도 직무로 해석해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보조금 불법 사용’이란 올가미로 변해 전장연 옥죄기에 무기로 이용되고 있다. 황당한 노릇이다.

싸움의 기술로 치면 하태경은 장애인 이동권 시위 명분 싸움을 벌였던 이준석 들보다 한 수 위인 듯하지만, 그런 만큼 저열하다. 게다가 하태경은 장애당사자 국회의원인 이종성이 모았다는 자료를 언론에 유포함으로써 다시 싸움의 전선을 장애당사자들 간의 이전투구로 확대시키고 있다. 하태경이 공개한 이종성 의원실 자료에는 ‘최중증장애인 권리중심공공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던 장애당사자들의 시위 참여 불만 사례가 지난 3월부터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종성 의원실은 진작에 자료를 모아왔던 자료로 싸움이 시작되자 하태경에게 제공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당최 납득할 수가 없다. 이종성은 왜 국회의원으로써 정당한 절차 대신에 확인되지도 않은 자료를 전장연 옥죄기 근거로 제공했을까? 권리중심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던 장애당사자들의 불만과 애로를 듣는 거야 국회의원의 당연한 책무일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으로서 제대로 된 절차는 사업 주체인 서울시에 참여자들의 불만 사항을 전하고 실태조사 등 사실확인과 그에 따른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다. 국민의힘, 아니 싸움을 건 하태경 입장에서야 장애당사자 국회의원이 애써 모아준 자료가 대단하고 기특하겠지만, 이번 자료를 빌미로 관련 사업이 축소되거나 사라지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장애당사자들의 몫이 된다. 이종성은 이에 대한 대책은 마련해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전장연의 활동이 못내 아쉽더라도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다양한 의견표명의 한 방편으로 보면 될 일이다. 아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항간에는 이들의 투쟁은 다분히 정치적이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만큼 좋았던 적이 있었던가 되레 묻고 싶다. 이런 전형적인 비장애인중심주의(에이블리즘, Ableism)적 해석이 오히려 장애를 가진 삶을 옥죄고 국가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틀어막는 기제로 작동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이지 않은 삶이 불가능하듯 장애인들의 자유의 권리 또한 정치적 환경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경험한 수많은 비장애인은 두렵고 의아했을 것이다. 거리나 상점에서, 혹은 학교나 병원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대체 어디에서 세상에 쏟아져 나왔는지 말이다. 하지만 두려움 대신에 비장애인들은 우리 사회의 눈부신 발전은 이들의 존재를 지우고 방치함으로써 얻어낸 결과였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되었다.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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