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라이트 핑크색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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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에 있는 라이트 핑크 자몽 피지오 컵.
음료의 라이트 핑크색과 나무 재질인 바닥의 베이지색이 기자의 시력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렵다. ©박관찬 기자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검도 수련을 위해 집을 나섰는데, 생각보다 일찍 검도관 근처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하면 시간 떼우기 위해 늘 가던 검도관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스타벅스는 키오스크나 카운터에서의 주문을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의 사이렌 오더로 기자가 직접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서 시청각장애가 있는 기자에게는 정말 안성맞춤인 주문 방식이다.

날씨가 더워 아이스 커피를 주문할까 고민하다가, 요즘 검도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늘 관장님이 커피를 내려주시는 걸 생각하고 커피가 아닌 다른 메뉴를 마시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메뉴는 스타벅스에서 처음 선택해 보는 메뉴였다. 메뉴의 이름은 ‘라이트 핑크 자몽 피지오’.

주문을 하고 여유있게 기다리다가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하는 걸 보고 화면을 확인했다. 고객님의 메뉴가 모두 준비되었다는 알람이었다. 역시 여유있게 자리에서 일어나 픽업 코너로 갔다.

당시 오후 낮 시간대라 매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이 한산했고, 기자의 주문도 첫 번째 주문이었기 때문에 픽업 코너에는 기자가 주문한 음료만 준비되어 있었다. 즉 픽업 코너에 있는 메뉴를 가져오면 끝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픽업 코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스마트폰의 화면을 확인하니, 분명히 고객님의 메뉴가 모두 준비되었다는 알림이 떠 있었다. 설마 기자가 너무 여유있게 픽업 코너로 오느라 그 사이에 다른 고객이 실수로 본인 음료인 줄 알고 기자의 메뉴를 가져가 버린 걸까?

기자는 어쩔 줄 몰라 픽업 코너에서 혼자 쩔쩔매고 있는데, 카운터 쪽에 있던 직원이 픽업 코너로 다가왔다. 기자는 스마트폰 화면에 있는 기자가 주문한 메뉴가 준비되었다는 알림 화면을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직원은 기자의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고는 픽업 코너에 덩그러니 홀로 놓인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매장컵 하나를 기자 앞으로 쓱 내밀었다. 그제서야 기자는 상황을 파악했다.

스타벅스 픽업 코너는 나무로 된 재질이라 베이지색이다. 그래서 기자가 주로 주문하는 커피가 검은색 계열이라서 어떤 컵에 담겨도 그 컵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금방 확인해서 가져올 수 있다. 아니면 기자의 개인컵을 이용하기 때문에 픽업 코너에 놓인 기자의 개인컵을 찾아오면 되니까 그리 어렵지 않게 메뉴를 찾아올 수 있다.

그런데 이날 기자가 주문한 음료는 처음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음료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라이트 핑크’색이다. 투명한 잔에 이 음료가 담기니까 기자의 눈에는 픽업 코너의 베이지색 바닥과 음료의 색깔이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그래서 메뉴가 분명히 나와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기자의 바로 앞에 있었음에도 메뉴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던 것이다.

안그래도 기자는 베이지색과 핑크색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어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많다. 그런데 그냥 핑크색도 아니고 라이트 핑크색은 정말이지 베이지색과 너무 비슷해 보인다. 적어도 기자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 메뉴가 나왔음에도 픽업 코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픽업 코너에 가서 평소 커피를 주문하던, 일상적으로 반복해서 익숙해져 있던 패턴이 아닌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늘 커피만 주문하고 픽업해오다가 새로운 메뉴를 주문하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분명한 건 기자가 색깔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서 메뉴를 찾아오지 못할 뻔 했다는 것이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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