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장애’를 밝히지 않고 첫 거래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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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3번 출구 표지판
기자는 저시력으로 사진에 있는 ‘3’이라는 숫자가 있는 곳에 가까이 가야 그곳이 3번 출구로 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박관찬 기자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지난 주말 지인으로부터 링크가 하나 공유됐다. 보니까 중고거래 당근 앱이었다. 지인에게 필요한 건데, 지인 동네에는 없고 기자의 동네에 마침 있어서 공유했던 거다. 기자는 지인과의 친분도 있기에 무턱대고 거래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면, 기자는 그동안 당근 앱을 깔아놓고 ‘눈팅’만 했지, 실제로 거래를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무래도 기자가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며 거래를 성사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인이 필요한 물건이 마침 기자의 동네에 있다고 링크를 보내주니까 거래를 해본 적도 없으면서 ‘나도 뭔가 해주고 싶다’라는 마음에 앞서 덜컥 거래를 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우선 해당 물품을 올린 분에게 채팅을 시도했다. 곧 연결이 되었고, 거래를 희망하는 장소를 물으니 ‘목동사거리’라고 했다. 기자는 목동사거리가 어디인지 모르기 때문에 목동역 쪽에서 거래하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자 ‘배스킨라빈스 목동역점’에서 거래하자고 답이 왔다.

목동역은 기자가 검도를 배우러 가기 위해 5호선을 타고, 또 기사를 쓰러 스타벅스 목동역점을 자주 간다. 그런데 목동역에서 배스킨라빈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상대방의 제안을 받고 얼른 네이버에서 ‘배스킨라빈스 목동역점’과 ‘스타벅스 목동역점’을 차례로 검색했다.

스타벅스 목동역점을 자주 이용하면서도 굳이 ‘스타벅스 목동역점’을 검색한 이유는 그때까지 스타벅스 목동역점이 목동역 몇 번 출구 쪽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 출구에서 몇 m’보다는 기자가 볼 수 있는 잔존시력으로 어느 길, 어느 방향에 위치해 있는지를 주로 보기 때문이다.

검색을 해보니 스타벅스 목동역점은 목동역 2번 출구에서 24m, 배스킨라빈스 목동역점은 목동역 3번 출구에서 73m로 나왔다. 스타벅스와 출구가 달라서 3번 출구를 찾아야 했고, 3번 출구에서 100m도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으니 충분히 혼자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하고 배스킨라빈스 목동역점에서 거래하기로 했다.

약속한 거래시간보다 조금 일찍 목동역에 도착했다. 우선 목동역 3번 출구가 어디 있는지 찾아야 했다. 평소 이용하던 곳이 2번 출구니까 바로 옆 출구인가 싶어서 가 보았지만 1번 출구였다. 그래서 다른 쪽으로 가 보았는데 이번엔 7번, 8번 출구만 있고 3번 출구는 없었다.

기자는 목동역 안으로 들어와서 다른 계단을 찾아서 올라갔다. 그곳은 1,2번 출구가 있던 곳과 반대 방향이었는데, 그곳이 바로 3번 출구였다. 이제 배스킨라빈스 간판만 찾으면 된다.

사실 3번 출구에서 73m라고 해도 마음속엔 불안함이 있었다. 출구를 나오자마자 직진해서 73m에 배스킨라빈스가 있는지, 아니면 출구를 나온 뒤 유턴해서 73m를 가야 배스킨라빈스가 나오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직진해서도 가 보고, 없다 싶으면 다시 3번 출구로 돌아와서 유턴한 방향으로도 가볼 요령이었다.

그런데 첫 거래가 무사히 성사될 거라는 좋은 예감인지, 3번 출구는 유턴할 길 자체가 없고 무조건 직진해야 하는 길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바로 직진해서 걸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자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눈에 익숙한 간판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이 제법 큰 사거리인 걸 보고, 목동 사거리라는 걸 직감했다.

약속한 거래시간 10분 전이 되자 기자는 거래 상대방에게 문자를 보냈다. 검은색 반팔티와 청바지를 입은 남자라고 인상착의를 알린 뒤 배스킨라빈스 앞에서 기다렸다.

이런 거래를 처음 해보는 순간이라 그런지 약속시간이 다가올수록 괜히 마음이 초조해졌다.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거래가 잘 안 되면 어떡하지? 물건이 이상하면 어떡하지? 사기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등등 그 짧은 시간에 별의별 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이윽고 약속시간이 되자, 누군가가 기자에게 다가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한눈에 거래 상대방인 걸 눈치채고 기자도 인사했다. ‘첫 거래’라는 걸 숨기기 위해 짐짓 진지한 태도로 상대방이 건네는 물건을 이리저리 꼼꼼하게 살피는 ‘척’을 한 뒤 상대방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현금으로 드려도 될까요?”

상대방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뒤, 준비했던 현금을 꺼내 건넸다. 상대방이 현금을 확인하고 기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거래가 끝난 것이다.

지금까지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기자에게 시청각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이렇게 무사히(?) 무언가 끝난 게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하거나 자주 가는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도 굳이 시청각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무사히 넘길 때가 종종 있지만, ‘거래’라는 걸, 그것도 지인이 부탁한 걸 이렇게 장애를 밝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성사시킨 스스로에게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당근에서 ‘첫 거래 배지’를 준 것보다 지인이 고맙다고 보내준 메시지가 더욱 큰 성취감을 안겨준다. 기자는 지인에게 당연히 이렇게 대답했다. 혹시 사고 싶은 게 있는데 거기(지인 동네) 없고 우리 동네에 있으면 언제든지 또 부탁하라고.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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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y153@hanmail.net'
박현주
12 days ago

ㅋㅋ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