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난 당신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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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느낌을 표현한 안경 이미지
사진=더인디고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났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런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로 시작하는 그의 말은 말투부터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기분 나쁘게는 듣지 말고… 너랑 다니는 내내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도 대놓고 쳐다보더라. 눈을 피할 생각도 안 하고 위로 아래로 열심히도 살피더라고. 요즘도 세상 사람들이 이런가 하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어.”

길에서 마주치기 힘든 시각장애인을 어쩌다 보게 되면 사람들은 기본적인 시선의 예의라는 것을 잊는 것 같다.

홍보 목적으로 관심 끌려고 일부러 특이한 분장을 하고 나온 피에로를 만난 듯 거리낌 없이 뚫어져라 쳐다본다. 시각장애인이 단수가 아닌 복수이거나 휠체어 탄 장애인과 같이 나타날 때는 그 관심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고 얼굴 두꺼운 몇몇은 카메라 셔터까지 주저 없이 누르기도 한다.

사지 멀쩡해 보이는 동행인이 있으면 호기심은 그와의 관계로까지 이어지고, 어떤 이는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나와 같이 다니는 것이 힘들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는 연예인이다’고 최면을 걸거나 ‘모른 척 하면 되지’라며 다짐도 하지만 들을 때마다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정말 궁금할 것 같기는 하다’는 생각도 한다. 서로의 다름에 대해 모르는 것이 차이의 차별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시작점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용납 가능한 건전한 소통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대다수의 관계에서 그런 시도가 허용되어야 한다. 적어도 나와 그들 사이의 관계에서만큼은 그래야 한다. 낯선 사람을 만날 때 나도 상대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 대략적인 나이, 생김새, 옷차림, 체형 등등…

그런 것은 조금의 시력만 있으면 파악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나에겐 허락되지 않는 정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요즘 인류에겐 매우 감수성 떨어지는 행동으로 규정되어 있다. 만약 내가 길거리에서 나를 훔쳐보던 사람들처럼 용기를 내어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 생김새, 옷차림 등을 물어본다면 어떨까? 운이 좋다면 몇 가지 충고를 들을 것이고 운이 아주 나쁘다면 경찰관이나 판사와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상대의 대략적인 외형에 대해 아는 것은 때때로는 선입견으로 작용할지 모르겠으나 대체로 나에게나 그에게나 유익한 쪽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목소리가 나이보다 유난히 젊은 이성에게 괜한 실수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연령대에 맞는 적당한 배려를 할 수도 있다. 또 대략 어울리는 옷을 선물하기에도 도움이 되고 피해야 할 농담을 미리 걸러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린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많은데 예의와 감수성이라는 이름으로 꾹 참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나이나 몸무게를 묻는 것도 그 자체로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알게 되었을 때 폄하하고 왜곡하여 평가하는 이들의 생각이 문제다.

모든 정보를 드러내고 공개해도 부끄럽거나 민망하지 않은 세상이라면 묻지 말아야 하거나 궁금해 할 필요도 없다. 장애도 그렇다. 알고 나면 별것 없는데 물어보기 힘들어서 슬쩍슬쩍 곁눈으로 보다 보니 계속 몰래 봐야 하고 그렇게 바라보는 이도 그 시선을 견뎌내는 이도 힘든 것이다.

내가 왜 안 보이게 되었는지, 오늘은 왜 시각장애인들끼리 우르르 함께 나왔는지, 내 옆에 있는 여성과는 어떤 관계인지 차라리 시원하게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 처음 만난 이의 나이, 몸무게, 키, 성적 지향, 종교, 정치 성향도 그냥 서로 물어보고 알려주는, 차라리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뒤에서 찾아보고 훔쳐보고 하는 것보다 그게 낫다. 지켜야 할 예의도, 갖춰야 할 격식도 쓸데없는 것이 너무 많다. 서로 모두 열어두고 감출 필요 없는 세상을 바란다. 알고 나면 별것 없다. 서로에 대해 안다는 것은 서로가 인정하고 가까워지는 시작일 수 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생각하고 사이좋게 지내자!

길에서 나를 만난다면 궁금한 거 다 물어봐도 좋다. 다만 나에게도 당신을 알려주어야 한다. 당신이 나를 궁금해 하는 만큼 나도 당신이 궁금하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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