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T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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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동산 ⓒ픽사베이
▲놀이동산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뭐니 뭐니 해도 놀이동산 하면 롤러코스터 타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화려한 회전목마의 낭만도 좋고 쿵쿵대는 범퍼카의 긴장도 좋고 아찔한 바이킹의 스릴도 좋지만, 롤러코스터 없는 놀이동산은 뭔가 앙꼬 없는 찐빵처럼 허전하고 심심하고 애매하다.

청룡 열차나 88 열차라고 불리던 어릴 적 그것은 용기 있는 어린이의 인증 절차였고 조금 더 자란 어느 때부터는 놀이동산을 방문하는 목적이자 첫 번째 방문 기구로 고정되었다. 한두 시간쯤의 기다림을 감수하면서도 두 번 세 번 그 몇분 안 되는 짜릿함을 선택했던 건 놀이동산 방문의 8할은 거꾸로 뒤집히는 그 장면을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교사 생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던 2008년의 소풍날에도 내 심장은 롤러코스터를 향해 뛰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그곳이 우리의 목적지로 정해졌을 때 장담하건대 난 아이들의 몇 배만큼이나 좋아하고 있었다. 홈페이지를 검색하고 내용을 살피고 놓친 게 없는지 또다시 훑어내렸다.

‘혹시 잘못 봤나?’

시각장애인의 탑승을 제한한다는 문구를 생전 처음 보았던 내 느낌은 그랬다. 뭔가 착오가 있다고 여기며 연결한 담당자와의 첫 번째 통화가 끝났을 때도 조금의 설명으로 되돌릴 수 있는 실수라고 확신했다. 어르고 달래고 화내고 자료를 보내고 몇 날 며칠을 실랑이하고 나서 소풍 장소를 다른 곳으로 변경하고 나서야 이것이 현실임을 인정할 수 있었다.

칼럼을 쓰고, 방송에 나가고, 진정을 넣고, 힘 있는 관계자를 찾아가고… 그때부터 틈나는 대로 불합리한 상황을 되돌리기 위한 시도를 했다. 그러던 중엔 또 다른 놀이동산의 차별 사례도 겪고 다시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최선을 다해서 롤러코스터를 시각장애인에게 되돌려주려고 노력했다.

여론이 형성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이고 7~8년 전에는 나보다 더 용기 있는 이들에 의해 소송이 시작되었다. 현장검증을 하고 1심을 지나 2심에서 원고의 승소가 확정되면서 20년이 다 되도록 내게 닫혀있었던 롤러코스터로 가는 문이 열리게 되었다. 너무도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내겐 다시 놀이동산을 방문해야 할 이유가 생겼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인증할 기회가 생겼다.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여러 번 밝혀진 일이지만 시각장애인에게 롤러코스터의 탑승을 제한할 특별한 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구에는 이미 충분한 안전장치가 존재했고 혹시 모를 비상정지의 상황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보다 빠르게 탈출했다. 대다수의 탑승객이 눈을 감고 타는 기구의 특성상 어쩌면 그런 것은 굳이 검증할 필요 없이 모두의 안전을 강화하는 선택을 하는 편이 옳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만들어진 매뉴얼 때문에 난 우리나라에서 제일 재미있다고 소문난 놀이기구로 가는 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 내가 그 기구에 왜 탑승할 수 없는지에 대한 분명한 근거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규칙은 만들어졌고 그것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선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나에겐 이유 없이 굳게 잠긴 문들이 존재해 왔다. 장애를 이유로 입학을 제한하던 학교도 있었고 원서를 낼 수조차 없었던 기업들도 그랬다. 여전히 갈 수 없는 곳, 탈 수 없는 것, 할 수 없는 일, 만날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이 내게 금지된 명확한 이유 같은 것은 없다.

단지 내겐 장애가 있고 어떤 이에겐 그것이 나의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로 느껴졌을 뿐이다. 놀이동산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은 티켓을 사는 것만으로 충분해야 한다. 학교에 입학할 자격은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업무능력으로 충분해야 한다.

많은 사람의 염원과 노력이 합쳐져 불합리하게 닫혔던 문 하나가 열리게 되었다. 이번 봄엔 에버랜드의 T익스프레스를 타 보고 싶다. 아울러 하나의 문이 열림을 계기로 이유 없이 닫힌 다른 문들이 차례로 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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