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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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더인디고

“도움이 되지 않는 도움의 실체는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도움’은 왜 도움이 되고 ‘도움이 되지 않는 도움’은 무엇 때문에 도움이 안 되는가” (p.16)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땐 제목에 눈길이 끌렸다. 나름의 개똥철학을 갖고 사는 나로서는 저자가 정신과의사라는 사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서성이며 책을 훑어보기만을 몇 번 하다 큰 맘 먹고 책을 구입했다. 이유는 그녀의 주장이 일반적인 정신과의사와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임상에서 ‘환자’를 보지 않고 저술이나 강연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서일까?

한국은 빠른 속도로 급격한 성장을 해 오면서 기술적으로는 선진국의 행렬에 들었을지 모르나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아직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세대 간, 성별 간, 직급 간에 좀처럼 소통이 되지 않는 ‘의사소통’이라는 부분이다. IMF 이후로 사회가 매우 삭막해져 마음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또 들을 여유가 없다는 사실과 동시에, 막말이 너무도 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바꿔 말하면, 일상에서 대화하는 법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사람 마음은 외부에서 이식된 답으로는 절대 정돈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p.152), 타인의 고통과 대면하여 “내가 너보다 더 힘들어” (또는 “이 세상에 안 힘든 사람 하나도 없어”)라는 말을 위로랍시고 건넨다. 혹은 상대방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일방적인 판단이나 충고를 제공하기 바쁘다. 마치 자신이 지적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불구덩이 속으로 빠질 것 같은 위험천만한 상황인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바른말의 폭력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충고, 조언, 평가, 판단(줄여서 “충조평판”) 대신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을 표현하는 ‘온 체중을 실어’ 듣고 말하고, 질문하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정서적인 내 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을 존재자체로 인정하지 않고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과 탈진을 조장하는 한국의 경쟁사회에서 치여 자신을 잃고 소리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의 핵심이다.

이 책의 핵심 포인트인 공감의 중요성만큼이나 내게 실제적으로 와 닿았던 부분은 자신이 정신과의사로서 오랜 기간 동안 정신의학적 관점인 질병 위주로 사람(‘환자’)을 대해왔고,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시각이었는지를 깨달았다는 그녀의 정직한 고백이었다.

“사람을 정신의학적 관점, 질병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모든 게 단순명쾌해진다. 거의 모든 걸 생물학적 원인이라고 설명하니 간단하기도 하다. 그에 맞는 약을 건네면 됐다. 그 순간엔 나만 알고 있는 내면의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의학적 설명에는 환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으니까. 오히려 그럴수록 더 전문가로 대우하고 그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접수해 주니까”(p.19).

일상의 문제나 어려움은 종종 사회구조적인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있으나 현대 정신의학은 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화학적 불균형으로 초래된 것으로 몰아가며 우리 ‘존재의 핵’인 감정도 무조건 병의 증상으로 간주해 눌러버리는 정신보건 서비스의 산업화와 약물의 과다처방을 가져왔다. 궁극적으로, 그녀의 건설적인 비판은 이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전문가주의’의 부작용(그녀의 언어로 “일상의 외주화”)에 대한 논의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는 ‘전문적 도움’이나 처치라는 것이 오히려 개별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정서적 소외와 무력감을 강화시키는 ‘도움이 되지 않는 도움’일 수 있고, 예고 없이 일상에서 수시로 찾아오는 “우리 삶의 고통은 정신과의사와 상의해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p.82).

다른 사람에게는 공감을 할 줄 모르면서도 내 이야기엔 너무나도 절실히 공감이 필요한 우리, 그게 정치적인 성향이나 이념을 넘어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베스트셀러가 된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자칫 독자들이 여기서 쉽게 놓칠 수 있는 이야기, 즉 전문가주의의 한계와 문제점 및 의료산업이 되어버린 정신건강 분야도 이 짧은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 싶었다. 그리고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의 가치가 주류의 흐름과 달라도 위험을 감내하고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용기, ‘거북이 걸음’보다 더딘 변화에도 달걀로 바위깨기를 멈추지 않는 인내심을 북돋아주는 계기에서 찾아지기를 바란다. [더인디고 The Indigo]

캐나다 위니펙 대학에서 유일무이하게 ‘정신의학 생존자 운동과 정신보건 시스템의 개혁’을 주제로 전공을 만들었고, 토론토 대학에서 Equity Studies로 교육학 석사를 마쳤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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