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글램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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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 ⓒ픽사베이
▲캠핑장 ⓒ픽사베이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장애인 가족 휴식지원 사업에 신청서를 내고는 잊고 있었다. 글램핑 여행에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으니 반가웠다. 여행은 잠자리가 편해야 한다는 가족들에게 색다른 경험으로 글램핑을 제안했지만 다들 심드렁했었다. 캠핑의 고급스러운 형태라 설명해도 달가워하지 않던 남편이 가족센터 행사에 선정되었다고 하니 따라나섰다.

당일, 가장 먼저 도착한 우리 가족은 배정된 카바나(글램핑장의 객실)에 짐을 풀고 바로 물놀이를 했다. 아무도 없는 물놀이장은 태풍 카눈의 흔적으로 물이 차가웠다. 그래도 물속에 들어가니 처음의 차가움은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남편과 아들의 공놀이 모습을 보면서 어렸을 때는 감히 생각도 못 했던 일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그저 혼자 놀기에 바빠 옆에서 뭔가 함께 하자면 도망만 가던 아들이었다. 억지로라도 해보려면 울음떼로 정신을 쏙 빼놓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리는 게 불편해서 아들 울었던 곳은 자연스레 기피 장소가 되어버렸다. 성인 된 아들이 물을 즐기는 걸 보니 꽤 오랜 세월의 고단함이 물에 고스란히 녹아내리고 있음을 느꼈다. 한참을 그 자리에서 싫은 소릴 내면서도 계속 공 던지기를 하는 아들이 내 눈엔 또 대견해 보였다.

내 아들에게만 머물러 있던 나의 시선은 한쪽 구석에서 고군분투 중인 학생의 모습에 멈췄다. 얕은 곳까진 내려왔지만 한 번 더 내려가야 하는 깊은 곳에 발을 내딛다가 포기하고 다시 올리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마도 발끝이 물 밑 땅에 닿지 않아 불안해서 그런 것 같았다. 발을 내디뎠다가 다시 올리기를 계속하더니 어느새 가슴까지 오는 곳에 들어가 환한 얼굴로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스스로가 스스로 내려갈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모습, 천천히 시도하다가 마침내 성공한 자신에게 잘했다고 칭찬하는 듯한 표정에 보는 내가 흐뭇했다. 그 아이 곁에 어른이 있었다면 아마도 재촉이 있었을 것이다. ‘안 무서워, 괜찮아, 어서 내려서 봐’ 등의 잔소리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무섭지 않고 괜찮은 건 그 아이의 생각이 아니다. 보는 이의 마음일 뿐인데 우리는 가끔 그런 감정들을 강요하고 산다. 나도 아들에게 가했던 숱한 재촉과 채근이 아들을 더 힘들게 했음을 몰랐던 시절을 지나왔다. 그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잘 보인다. 자폐인 엄마 역할이 그땐 틀렸고 지금은 맞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틀릴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부모 역할에 대한 무수한 이론적 접근에 따라갈 수 없던 나였다. 처음 해보는 장애부모 역할이 버거웠다. 전문가에게 맡기고 누군가 아들을 잘 교육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아들을 바라보는 내가 바뀌기보다 아들을 바꾸려고 한 내가 이제라도 보이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한발 물러나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아들의 행동이 성격에서 나오는 것인지 자폐의 특성인지를 구분해서 보는 게 중요했다. 바꿀 수 없는 성격이라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굳이 스트레스 주면서까지 바꿀 필요는 없다. 장애의 특성으로 보이는 행동 역시 인정할 건 인정하고 다른 행동으로 전환해 줄 수 있는 걸 생각하며 살다 보니 아들이 많이 편해진 것 같다.

자신의 엄마와 얘기하는 나를 빤히 바라보던 아이.

“누구세요?” 정확한 발음으로 내게 묻는 아이는 만 36개월의 꼬마였다.

“응? 난 저 형아 엄마야.” 대답하면서도 형이라기보다 삼촌뻘 되는 아들이 엄청 커보였다. 4세라면 그 정도의 발달상태가 늦진 않아 보였는데 아직 장애 진단을 받진 않았지만, 또래보다 성장이 늦어 ‘발달지연’으로 특수교육에 입문했단다. 전문가의 진단에 태클을 걸고 싶진 않았지만 저녁을 먹으며 유심히 보니 내 눈엔 활달하고 호기심 많은 평범한 아이로 보였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엄마는 아이 셋의 엄마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앳되어 보였다. 남편이 없는 건지 안 온 건지 몰라도 아이 셋을 혼자 감당하는 게 버거워 보였다. 그 가족과 한 카바나를 이용하는 또 한 가족은 두 남매를 둔 엄마였다. 그러고 보니 앳된 엄마 둘에 자녀 다섯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작은 놀이방처럼 보였다. 만약 엄마 혼자 장애 자녀를 키운다면 한부모 장애 가족에 대한 촘촘한 지원 대책이 반드시 정립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남이 구워주는 캠핑장의 숯불고기를 먹을 줄만 알았지 처음 구워보는 나는 우리 가족과 그들 가족에게 어설프지만 최선을 다해 구운 고기를 제공했다. 바비큐 그릴에서 다 익은 고기를 식탁으로 옮겨줄 때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잊지 않고 말하는 젊은 엄마는 잘게 잘라 아이들에게 먹이는 모습이 참 예뻤다.

처음 고기를 구울 때 연기만 많이 나고 매워서 ‘내가 이러려고 휴식지원 신청한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게와 가위를 놓고 그냥 저녁을 따로 나가서 사 먹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유난 떨면 안 되지 싶었다. 그릴 앞에서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나름 요령이 생겼다. 노릇하게 구워지는 고기를 나눠주면서 아들의 장애를 처음 알았을 때가 생각났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아이가 왔냐며 누군가를 향한 증오가 깊었고 도망가고 싶었다. 긴 세월을 지나 보니 그 당시를 잘 견딘 힘이 쌓여 현재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잘 안되는 숯불이야 내가 포기해도 다른 사람이 하면 된다. 자식이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기에 포기를 모르고 살아왔다. 고작 바비큐 그릴 앞에서 고기를 구우며 아들의 과거를 떠올리다니 나는 아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장애 부모가 맞나 보다.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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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syk@gmail.com'
cooksyk
8 months ago

작가님의 배려와 온정에 내마음도 사르르
감동입니다
어제밤 마흔이 된 아들의 징징거림에
힘들어했던 나자신 깊이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