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52] 이영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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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열린 제52차 화요집회에서 부모연대 경북지부 문경지회 이영순 회원이 발언하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9월 12일 열린 제52차 화요집회에서 부모연대 경북지부 문경지회 이영순 회원이 발언하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시행착오 줄이기

[더인디고] 건강하고 맛있는 사과를 키워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선사하는 농부이자 현재 27살 발달장애를 가진 딸의 영원한 응원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에게 아이를 소개할 땐 “힘센 치매 노인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라고 하니 가장 빨리 알아들으시더라고요. 더 나은 소개 방법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저는 부모회 활동에 있어 앞장서기보다는 뒤에서 지지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부모연대 활동 방향 등에 관한 부분은 좀 더 실력 있는 분들에게 맡기고 저는 아이의 성장 과정의 경험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을 겪으면서도 행할 수밖에 없었던 일을 몇 가지 풀어 놓음으로써 다른 분들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째 결핍이 아이를 성장시킬 때가 있습니다.

시골은 아이를 위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프라가 아주 열악합니다. 특히 교통의 이동권 제약이 가장 심합니다. 활동지원사의 등장으로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초등학교는 스쿨버스가 있어 다행이었지만 중학교부터는 버스타기를 가르쳤습니다. 카드 찍고 환승하고 충전하기, 때로는 택시를 타고 결제하는 방법까지 직접 알려줬습니다. 현재 아이가 다니는 중증장애인자립센터에 가기 위해선 버스 타기가 필수 코스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들으시면 제 아이는 그래도 혼자 버스 탈 정도는 되나 보네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 물론 혼자 걷고 타고 합니다. 그러나 자폐 성향에 지적장애 뇌전증까지 동반한 아이 상태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수시로 지갑이나, 가방, 카드를 잃어버렸습니다. 경련으로 버스를 놓치고 길거리에서 꽁꽁 얼거나 더위에 지친 때도 여러 번, 내리지 않고 다른 동네로 가버려 찾으러 다닌 적도 많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오는 동안 경련으로 넘어지거나 굴러서 흙투성이가 되어 나타나는 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밖에만 나가면 배터리 닳는다고 휴대 전화 전원을 꺼 놓는 습관 때문에 엇갈리는 일이 생기면 찾기가 더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한 것은 먹고 살기 위해 농사짓는 일이 발목을 잡기도 했지만,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스스로 찾아가는 경험이 많이 쌓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물론 현재는 활동 지원을 받고 있어 정말 맘 편한 건 사실입니다.

돌아보면 교통시설 취약한 시골에 살고 있기에 경험의 기회를 더 제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정말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양육자들이 귀찮아서, 힘드니까, 혹은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몸 고생 맘고생이 따르더라도 두려움을 내려놓고 상황에 맞게 한 번쯤 시도해 보심이 어떨는지요.

둘째는 단골을 만들어 주랍니다.

좋은 시설 만들어 아이가 갈 곳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용하는 곳을 아이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세상은 200만 명의 도움으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를 사회에 자꾸 노출 해야 도움 주는 사람도 늘어나고 사람들의 인식도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는 가정의학과, 한의원, 미용실, 속옷 가게, 마트 등 단골로 가는 곳이 있어 이젠 제가 가지 않아도 됩니다.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연락이 옵니다. 간혹 아이를 이용해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 나쁜 사람도 있으니까요. 우리도 두 눈 뜨고 사기를 당할 때가 있잖아요. 하지만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구더기가 무서워도 우리가 장을 담그는 이유와 같지요.

딸도 때론 저를 속이기도 하고 거짓말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능한 존재가 아니라니까요.

셋째 돈은 노동의 대가라는 것을 꼭 알려 줍니다.

의사결정 능력이 없거나 부족해서 돈을 모른다고 생각지 마세요. 가정에서부터 아이의 수준에 맞는 노동을 시키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선행된다면 지역사회로 소통을 넓혀 나가는 일이 훨씬 수월해지겠지요.

우리 집에선 아이가 밥을 하거나 청소, 빨래 등을 할 때는 보상하지 않습니다. 이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과 밭일을 시켜야 할 땐 일할 시간과 하루 일당을 미리 정합니다. 물론 명확하게 인지 하지는 못해도 그렇게 합니다. 가끔 가족 할인이라며 일당을 깎는 협상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아이는 일을 해야 돈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답니다.

돈을 받으면 통장으로 입금하게 하고 사용은 체크카드를 사용하게 합니다. 현실에선 현금보단 카드를 사용하는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아이의 인지 상황에 맞추어 시행 해 보면 좋습니다. 저도 ATM 기기에서 입금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았는데 두려워하면서도 좋아하더라고요. 가끔은 카드를 막 사용하기도 하지만 영수증을 꼭 받아오게 하므로 수습에 도움이 됩니다.

이야기에 두서가 없었지만, 저의 경우엔 결핍이 결코 나쁜 것만도 아니었고, 지역에서 단골로 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참 편리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데 중요한 돈, 노동의 대가라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것이 참 중요할 듯해서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끝으로 저는 아이에게 가끔 질문합니다.

“너는 어떤 사람이냐?” 그러면 아이는 주저 없이 대답합니다.

“나는 참, 소중한 사람이지.”라고요.

그래요. 우리 아이들은 참 소중한 사람입니다.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년 9월 12일 오전 11시, 화요집회 52회차 중에서–

[더인디고 THE INDIGO]

반복되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을 멈춰달라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삭발과 단식에 이어 고인들의 49재를 치르며 넉 달을 호소했지만, 끝내 답이 없자 장애인부모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22년 8월 2일부터 ‘화요집회’를 통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더인디고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협조로 화요집회마다 장애인 가족이 전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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