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방향과 속도에 발맞춰 함께 꿈을 연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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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람 피아니스트는 발달장애인 대상 음악교육, 부모의 정서 치유 프로그램을 아이템으로 하여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제공. ©현아람
현아람 피아니스트는 발달장애인 대상 음악교육, 부모의 정서 치유 프로그램을 아이템으로 하여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제공. ©현아람
  • 기자가 만난 사람들 3 – 현아람 피아니스트
  •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하는 예술가
  • 창업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하는 중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바야흐로 봄이 성큼 다가왔다. 독자들은 날씨가 따뜻해지면 새싹들이 파릇파릇 피어나는 걸 보고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새싹이 피어나듯 우리도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고.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목표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시작하는 것과 그 시작을 위해 준비하는 마음가짐은 참 중요하다. 그 ‘시작’을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소개하려고 한다. 피아니스트 현아람 씨를 만났다.

발달장애인에게 음악교육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다는 현아람 씨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이화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또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도 피아노 전공 석사와 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귀국 후 2019년 2월 19일 금호아트홀에서 독주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매년 많은 연주회를 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거친 피아니스트다. 학력과 경력만 놓고 보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탄탄대로에서 그가 장애계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제가 가르치던 학생의 언니가 발달장애인이었는데, 레슨 때마다 피아노로 소통을 했어요. 말로는 소통이 어렵지만 피아노를 치는 것으로 뭔가 소통이 되는 게 행복했고, 그때부터 발달장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고요. 결정적인 계기는 재작년에 언어치료센터를 등하원하는 발달장애인 친구를 우연히 돕게 되면서예요. 그때 부모님들과 음악교육의 한계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특히 부모님들이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을 매주 이야기하면서 뭔가 이런 쪽으로 준비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현재 현아람 씨는 발달장애인 대상 음악교육과 부모의 정서 치유 프로그램을 아이템으로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실제 2023년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했던 ‘예술플러스창업’에 해당 아이템으로 도전해서 최종 우승을 하기도 했다. 현재는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발달장애인 복지관에서 리듬 수업으로 개발한 걸 난타로 풀어서 진행하고 있는데, 요즘 굉장히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와서 발달장애인 대상 관련 프로그램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단다.

서울문화재단 예술플러스창업에서 최종 우승한 현아람 씨가 창업 아이템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현아람

“그래서 이화여대에서 피아노 외에 심리학을 복수전공했었고, 창업을 준비하면서 심리상담사, 언어발달지도사와 같은 자격증을 땄고, 장애인식개선교육 자격증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직접 작사 및 작곡한 곡들을 저작권 등록 준비 중에 있습니다.”

저작권 등록 준비 중이라는 곡은 ‘인사노래’라고 하는 것으로, 간단한 동요같은 곡인데, 장구의 장단과 리듬을 활용한 것이다. 그 노래 안에서 각자 이름을 불러주는 파트가 있고, 날씨나 계절을 불러주기도 하는 등의 방법으로 인지 부분을 건드릴 수 있게 구성했다고 한다. 덕분에 그룹으로 하는 수업에서 출석 대신 장단으로 한 명씩 이름을 불러준단다. 그렇게 시작되는 수업을 다들 즐거워한다고 현아람 씨는 미소지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는 끝나는 인사를 하는 장단 노래도 있어요. 그런데 보통 수업 마지막에는 ‘감사합니다’나 ‘고맙습니다’라고 하잖아요. 우리는 대신 ‘사랑합니다’로 바꿔서 서로 사랑한다고 마무리를 지어요. 처음에는 같이 하는 분들이 너무 부끄러워했는데, 1년을 함께하니까 이젠 서로 사랑한다고 자연스럽게 하트 모양도 하세요.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아람 씨는 수도권 지역의 발달장애인 복지관이나 센터에 음악수업을 하고, 강원도처럼 거리가 있는 곳은 비대면(줌)으로 하는 등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발달장애인을 만나서 수업을 했을 텐데, 그때마다 음악이 가진 힘을 느낀다고 한다.

서울시립발달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 대상 굿데이팀의 리듬난타. 사진 제공. ©현아람

“6개월동안 전혀 말을 하지 않는 발달장애인이 있었는데, 피아노 건반을 치는 손으로 대화를 했어요. 그러다가 6개월이 지난 뒤 ‘네’와 ‘아니오’로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더라고요. 또 1분도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고 폭력성이 있는 발달장애인이 있었는데, 피아노 안에서 스토리로 풀어서 이야기나 그림을 같이 하니까 폭력성이 줄어들기도 했어요. 덕분에 1분도 앉아 있지 못하던 친구가 30분 넘게 집중해서 수업을 할 수 있었어요.”

부모의 정서 치유 프로그램

현아람 씨가 창업으로 준비 중이라는 아이템 중 하나인 ‘부모치유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살짝 공개해달라고 했다. 부모 대상으로 하는 치유 프로그램은 각종 복지관에서도 이미 다양한 모습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현아람 씨가 계획하는 프로그램은 기존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 걸까.

“부모 대상 프로그램은 보통 시간을 내서 어디를 가거나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장기간 시간을 내서 뭔가를 하기 굉장히 어려워하세요. 그래서 꼭 그런 시간이 아니더라도 자녀의 상담을 위해 부모가 같이 왔을 때, 기다리는 시간을 유의미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려고 해요.”

현아람 씨에 의하면 발달장애인 자녀의 치료를 위해 함께 방문한 부모는 자녀가 치료나 수업을 듣는 동안 휴대폰만 보거나 그냥 기다리기만 하는 걸 봤다고 한다. 그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고, 그래서 부모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나잇대별로 원하는 게 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단다. 그냥 쉬고 싶다는 분도, 무언가를 알차게 하고 싶다는 분도 있다. 현아람 씨는 부모들의 그런 바람을 정리해서 시간과 공간 등을 확보하여 뭔가 유의미하게 할 수 있는, 부모의 정서를 ‘치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획 중인 것이다.

당신의 방향과 속도에 발맞춰 함께 꿈을 연주합니다

꿈은 크게 가지는 게 좋다는 말이 있다. 현아람 씨를 인터뷰하면서 딱 이 문장이 떠올랐다. 지금은 창업을 준비하는 단계지만, 이야기를 이어갈수록 그가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현아람 씨는 함께하는 사람들의 방향과 속도에 맞춰 꿈을 이뤄갈 수 있게 돕고 싶다고 했다. 사진 제공. ©현아람

“사실 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음악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장르를 융합해서 저희만의 특별하고 즐거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통해 함께하는 분들이 행복해하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그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지금도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서 소통하고, 부모들도 계속 만나며 뭐가 필요한지 대화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장애, 비장애 통합된 예술중점학교를 설립하고 싶단다. 유아기부터 생애주기를 가리지 않고 평생교육이 가능한, 그것도 장애와 비장애 구분없이 모두가 예술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학교 말이다. 그러기 위해 현아람 씨는 지금도 함께하는 사람들의 방향과 속도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다.

모두가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디에선가 작지만 조금씩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그의 활동에 완연한 봄날씨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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