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내 맘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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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가족이 물 위에서 수영하고 있다. ⓒunsplash
▲오리 가족이 물 위에서 수영하고 있다. ⓒ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내가 실명한 지도 30여 년쯤 되었고 우리 아버지와 내 나이 차가 서른 살 정도 되니 내 부모님은 내 나이쯤 아들의 실명을 경험하신 것이다. ‘만약 지금의 내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이라고 상상하니 끔찍하기 그지없다. 열 살 갓 넘었던 내게 마흔 살 부모님은 단단하고 완벽한 존재일 거라 막연하게 여겨졌지만 내가 그 나이 되어보니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운 일 많은 연약한 존재다. 단지 어른스러운 척, 괜찮은 척, 담대한 척하는 스킬이 조금 늘었을 뿐이다. 내가 힘든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부모님도 무섭고 겁이 나셨을 게 분명하다. 내가 받았던 것만큼 두 분도 위로와 힘이 필요하셨을 것이 틀림없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중고등학교 다닐 적 내가 우러러보던 선생님들은 학교 안에서만큼은 무슨 일이라도 해결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교사가 된 지금 난 솔직히 아이들보다 크게 나은 것이 없다. 어른인 척, 담담한 척하지만 지내다 보면 해결 방법 떠오르지 않는 난감한 문제투성이다. 여전히 주말이 좋고 방학 기다리는 별다른 것 없는 “어른이”이다. 역시나 다 할 수 있는 척, 해 본 척하는 기술을 발휘할 뿐이다.

부모님 맘 몰랐던 어렸을 적 나처럼 내 제자 녀석들도 나의 허술함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수학 선생님은 어떤 문제라도 척척 풀어내고 교사는 딱딱할 만큼 바른생활만 한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다. 나도 문제 풀다 보면 땀이 날 때가 있고 어쩌다 주어지는 재량 휴업일에 무엇할까가 지상최대의 고민이 되기도 한다.

재미난 건 그 녀석들이 나에 대해 잘 모르는 만큼 나도 그 아이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 나이 그 또래의 시간을 거쳐왔으므로 대체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도 있겠으나 그건 그 만의 착각일 뿐이다. 난 학생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감성에 공감하지 못하고 때때로 그 녀석들에게 주어지는 정책들에 대해 똘똘 뭉쳐서 분노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어린아이가 어른들을 모르듯 어른들도 어린 학생들을 모른다. 10대, 20대, 30대를 거쳐 40대를 살지만 내가 그나마 잘 아는 것은 40대의 마음뿐이다. 비장애인으로도 살았고 장애인으로도 살았지만 지금 내가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시각장애인의 입장밖에 없다. 며느리 입장으로 수십 년 살아 온 시어머니가 며느리 입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비유하면 적절할까?

우리는 너무도 다른 시간 다른 모양으로 같은 공간에서 살아간다. 서로 이해하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체로 그건 자기중심적인 입장일 뿐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도 교사와 제자도 부모와 자식마저도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이해하는 것은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나의 입장이다. 우리 곁에 있는 이들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와 마주한 상대들은 생각보다 많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할 수도 있고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것들을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에 서로를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겠다. 다만 서로 다른 입장이 되었을 때 아주 미안하거나 후회되지 않도록 조금만 더 면밀히 살피자.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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