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밥 좀 더 먹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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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창 ⓒ픽사베이
▲대화창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우리 학교는 1년에 한 번씩 학생들과 2박 3일의 수련회를 떠난다. 처음 가는 장소의 낯선 공간들에서 활동하려면 교사인 나도 시력 좋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력 없는 담임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장소에서는 쓸데없는 자존심 보이는 것보다 정중하게 도움을 청하는 게 나을 데가 더 많다.

식사 시간도 그중 하나인데 배식대 구조도 오늘의 메뉴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괜히 국자나 밥주걱 들고 설치는 것보다 떠 주는 밥 맛있게 먹는 게 상책이다. 덕분에 처음 만난 봉사자가 배식해 주는 내 식판은 나의 기호보다는 그의 판단과 관련된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

“선생님 식사 얼만큼이나 드릴까요? 특별히 좋아하시는 건 있을까요? 잘 못 드시는 음식이 있을까요?”라는 대화가 오고 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 양에 대한 기준이 대체로 주관적인 것이어서 나의 대답과 그의 생각이 정확히 일치할 수는 없었다. 그런 연유로 캠프장에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로 먹은 점심 이후 난 한동안 배고픔을 꾹 참고 있어야 했다.

“저는 식사량이 많은 편이에요. 음식을 좀 많이 떠 주시면 좋겠어요.”라고 요청했지만 받아 든 식판 속의 밥과 반찬은 대식가인 나의 속을 채우기엔 너무나 역부족이었다. ‘우리가 늦게 와서 남은 음식이 별로 남지 않았던 것일까?’라고 생각하며 저녁 식사 시간이 되기만 기다렸다. 아주 조심스럽게 “선생님 점심때보다 양을 좀 늘려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부탁을 드렸고 그분도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하시며 “부족하면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라고 웃으며 덧붙이기까지 했다. ‘내 표현이 부족했구나!’라고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받아 든 저녁 식사는 점심의 양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분명 신경 써서 더 주었다고는 하는데 난 첫 숟가락을 뜰 때부터 다음 끼니까지의 주린 배가 걱정될 정도였다. ‘한 번 더 배식대로 가서 추가 음식을 받아볼까?’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학생 수에 비해 넓지 않은 식당은 복잡한 상태였고 무엇보다 난 학생들을 인솔하여 다음 프로그램 준비를 해야 했다.

예상한 대로 난 다음 날 아침에도 또 그다음 점심에도 “전보다 조금만 더 주시겠어요?”라고 부탁했고 이전보다는 나아지긴 했지만 내 배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 채로 활동을 이어갔다. 다섯 번의 식사 시간이 지난 둘째 날 밤에 간식으로 치킨이 주어졌다. 양이 넉넉한 편은 아니어서 아이들에게 배분하고 봉사자 선생님께도 몇 조각 먹어볼 것을 권했다.

한두 조각 정도를 집어 드시던 선생님은 배가 부르다며 학생들 많이 먹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난 나처럼 아이들에게 양보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몇 번을 더 권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는 정말로 배가 부른 상태였다. 그는 나와 정반대인 극소식가였다. 대화를 좀 더 주고받으면서 그간의 식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내일은 좀 더 신경 쓰겠다고 답변했고 난 지금까지 주던 것의 몇 배라도 좋으니, 식판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의 양을 달라고 했다.

마지막 날 아침 난 비로소 배부름이 무엇인지 사흘 만에야 느낄 수 있었고 봉사자 선생님은 그동안 너무 미안했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하셨다. “부탁하셔서 떠오기는 했는데 정말 이것을 다 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사실 나도 ‘치킨 두 조각에 정말 배가 부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는 말로 웃으며 답했다.

그는 매 끼니 나의 배부름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나는 나름대로 나의 배고픔을 알리는 요청을 반복했다. 배식대의 음식도 특별히 모자라거나 부족한 적은 없었다. 다만 그가 느끼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그가 너무도 달랐을 뿐이다.

마지막 날 아침과 점심은 너무도 맛있고 배부르게 나를 만족시켰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전날 저녁 우리의 대화 덕분이다.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은 생각보다 작은 대화로 해결될 수 있다. 노력도 사람도 환경도 많은 것들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다만 우리의 큰 다름을 이해할 대화가 부족했을 뿐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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