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감기에 대처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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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감기에 걸리다. ⓒ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요 며칠 무리를 했는지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이마에는 미열이 느껴진다. 교탁 옆에 간이 의자를 놓고 수업하는 내게 학생들은 몸이 안 좋으시냐고 물어 온다.

“순이한테 옮으셨나 봐요. 매일 감기를 달고 살더니 결국 선생님께까지!!!”

“아냐! 선생님 초등부에 영희 점자 가르칠 때 손잡고 가르치시잖아. 걔한테 옮은 게 분명해!”

“건강한 선생님이 걸리신 걸보면 매일 붙어 계시는 사모님한테 옮은 거 아닐까?”

키득거리면서 이야기하고 있긴 했지만, 그 녀석들은 나의 감기는 누군가로부터 전염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알아내고 싶은 건 내게 감기 바이러스를 나눠준 사람의 정체였다. 지난번 철수가 걸렸을 때도 영미가 걸렸을 때도 그들은 그보다 먼저 콜록대던 누군가를 본인이 감기에 걸리게 된 원인이라고 확신했다.

물론 그 녀석들의 추측이 확률적으로 맞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근거들을 가지고 세심한 관찰 이후에 지목한 사람이 바이러스의 원천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를 찾아내서 질병이 발생하게 된 상황을 원망한들 나아질 것은 그다지 없다.

“다음부터는 마스크를 좀 써줄래?” 정도를 부탁할 수는 있지만 그 정도 에티켓은 그도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다시 한번 주지시켜 주는 것이 그가 또다시 감기에 걸리게 되었을 때 얼마만큼의 행동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그 변화 또한 자기 생각과 의지에 달렸을 뿐 다른 이의 지적은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 때문에 감기 걸렸잖아.”라는 말을 듣고 뼈저리게 반성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정확히 범인을 찾아낼수록 그와 나의 사이만 좋지 않게 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나의 어떤 습관이나 행동들로 인해 몸 상태가 좋지 않게 되었는지를 되돌아보거나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좀 더 빠르게 몸이 나아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가진 변이를 통제하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대비하는 것이 좋지 않은 상황을 마주한 이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내가 오늘 색출한 질병의 원인을 꾸짖고 멀리한다고 하더라도 내 몸의 면역상태가 떨어진다면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난 감기에 반복적으로 걸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종종 내 장애의 원인에 대해서 궁금해하곤 한다. 어떤 질환으로 어떤 상황을 거치면서 현재가 되었는지를 묻기도 하지만 의사의 실수는 없었는지 또 다른 이의 잘못된 행동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를 더 궁금해한다. 내 실명 역시 나를 수술한 의사의 실수가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위들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수십 가지 수백 가지의 상황들과 그보다 더 많은 사람과의 셀 수 없는 시간이 합쳐져 이루어진 결과이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내 눈을 보이지 않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또다시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난 다른 이들의 수많은 행동과 상황들을 여전히 통제할 수 없다.

단지 억울해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 말고는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게 필요한 것은 범인을 잡는 일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계획하는 것이다. 과실 비율을 나누고 범인을 잡는 것은 보험회사 직원이나 경찰에게 넘기고 우리는 미래를 위해 스스로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자.

최근에 난 조금 무리한 운동을 했고 과도하게 신경 쓸 일들을 만들었고 손을 자주 깨끗이 씻지 않았다. 내가 감기에 걸린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다음번 감기 바이러스와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내게 좀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 줄 방법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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