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금순의 토크백] 내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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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청각 지체장애 등을 상징하는 픽토그램이 어우러진 모습 ⓒ픽사베이
▲시각 청각 지체장애 등을 상징하는 픽토그램이 어우러진 모습 ⓒ픽사베이

▲유금순 더인디고 집필위원
▲유금순 더인디고 집필위원

[유금순 = 더인디고 집필위원] 11월에 갑자기 배우자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전조증상을 무시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고 할까. 여름 쯤 목 오른쪽에 뭔가 만져지는 덩어리가 있다는 남편에게 빨리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던져놓고, 여기저기 ‘내 할 일’에 쫓겨 세심하게 살펴주지 못했던 내 탓만 같아 내심 우울하고, 미안했다.

내 할 일이란 대략 이렇다. 밥하는 주부 역할(자립생활이라 쓰고, 주어진 성적 역할이라 읽는다), 휠체어에 몸을 싣고 저상버스에 탑승하여 다른 승객들 틈바구니에서 균형 잡고 목적지에 이르는 것(대중교통 이용이라 쓰고, 권익옹호라 읽는다), 장애는 왜 앓는 것이 아니고 겪는 것인지를 약속된 장소에서 설명하는 일(교육이라 쓰고, 소통이라 읽는다), 아파트 단지 내 휴게공간에 놓인 단차에 딴지를 걸어 깎아내는 일(주거권 요구라 쓰고, 배리어프리라고 읽는다), 노점상인에게서 싱싱한 푸성귀를 알뜰히 챙겨 사는 일(정당거래 소비라 쓰고, 지역사회 속 자립생활이라 읽는다) 정도라 하겠다.

만세 동작이 안 되는 아픈 어깨로 재활의학과를 찾아 초음파검사를 받던 중 발견하게 된 남편의 암은 대학병원 내 협진 의뢰를 통하여 외과에서 CT 촬영과 조직검사, 여러 차례의 채혈 등을 거친 후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수술대에 올려졌다. 혼자 찾았던 병원에서 의사를 만난 날, 병원 구내식당에서 늦은 점심에 반주 서너 잔을 기울였다는 남편은 전화로 덤덤하게 암을 알렸다. 우리 둘 다 힘드니까 수술은 안 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수술만이 답이라면 같이 살길을 찾자고 배우자의 명분으로 밀어붙였다.

남편의 수술 소식을 듣고, 누나 내외분과 여동생 내외분 그리고 서울 모 병원의 간호사인 조카 둘이 득달같이 내려와서 입원 수속을 밟고, 함께해줘서 내심 고맙고 든든했다. 입원절차를 위해 안내를 받을 때마다 어느샌가 발 빠른 간호사 조카 둘이 나를 대신하여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 몫인데 싶어 쭈뼛대면서도 휠체어를 탄 채 키오스크랑 키 재기하며 번호표를 뽑아야 하는 어려움, 안내받기 위해 데스크를 기웃거려야 하는 불편함에 조카들에게 슬그머니 보호자를 양도했다. 여러 가지 검사와 수술을 앞둔 남편도 내심 조카들의 도움에 안도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어쩌면 몸의 한계에 대한 절감은 이미 내게 있는 장애 때문이 아니라, 그 장애를 들춰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부상했던 것 같다. 서로의 불편함을 아는 만큼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온전한 손길을 동경하며 기다렸던 것 같다. 나는 맏이였지만, 장애 있는 딸이어서 맏이 노릇을 동생에게 넘겼고, 큰며느리이지만 동서에게 집안 행사를 위임해야 했다. 오랜 시간 들여 음식을 하고도 상 차리고 설거지한 시누이와 동서에게 미안해야 했다.

남편과 함께 외과 교수를 만나러 진료실에 들어서는데, 의사 눈빛에서 당황스러움이 읽혔다. 누가 누구의 보호자인가 하고 묻는 듯한 눈빛에 OOO 씨의 아내라고 얼른 대답해주었다. 남편은 외과 의사에게 봄부터 목에서 덩어리가 만져졌다고 말했다. 내게 말했던 건 여름쯤이었는데, 못난 화가 치밀어올랐다. 왜 화가 치밀었는지.

어릴 때 나는 장애로 인해 내 존재가 무시되고, 의지가 꺾였던 경험을 수없이 했었다. 내가 힘들까 봐, 나를 위해서, 나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이 가장 뭔가를 하지 못하게 했고, 어딘가에 가지 못하게 했다. 별수 없는 나는 순응하고 따랐지만, 가슴 속에 켜켜이 억울함과 서글픔이 쌓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나를 부끄러워했고, 술에 취하면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때론 그와 상반되는 부정을 표출하기도 해서 어린 나를 아주 불안하고 헷갈리게 했다. 술에 기대는 아버지가 애처로워 보였던 건 시간이 한참 지나서였다. 나이를 먹고, 한 사람의 배우자가 되고, 비슷한 장애를 겪고 있던 친구들과 커피잔을 기울이면서 내 안의 무릎 꿇은 속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때부터 금순이는 비로소 굳셀 수 있었다. 남들이 굳세라고 해서가 아니라, 장애가 있는 동료들을 만나면서 단단해지고, 좌우에 날 선 검과 같은 말을 시의적절하게 뱉기도 하니 비로소 나는 자립에 이른 것일까. 내가 굳세면 굳셀수록 이상하리만치 평안에 이르기엔 힘들었다. 처처에서 만져지는 불편함에 용기 내어 입을 뗄수록 얼굴을 붉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뜻이 같은 벗도 있고, 눈엣가시처럼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는 게 인생이지, 뭐.”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불현듯 땅에 번지수가 있듯이 하늘의 별에도 번지수가 있다던 어느 시민천문대의 천문 해설사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도 별처럼 자기 자리가 있고, 양도할 수 없는 인격과 인권이란 게 있음에도 어떤 이들은 빼앗긴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 장애가 남편보다 심하지만, 그가 빠뜨린 것을 챙겨주고, 말과 표정으로 그를 다독이면서 내 특유의 계획성과 섬세함으로 일상과 삶을 꾸려나가는, 나는 남편의 보호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는데, 그는 어떨지 모르겠다. 그는 나의 보호자이다. 만세 자세와 앞으로나란히 자세가 안 되는 나를 보살펴주고, 활동지원서비스가 미치지 못하는 밤에 내 체위변경을 해주고, 자리끼를 챙겨준다. 장애가 없어도 있어도 우린 서로에게 보호자이다. 우린 알고 있는데, 세상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더인디고 THE INDIGO]

장애인권강사, 동료상담 및 사례상담가로 활동하였으며 2019년 대전 무장애 관광 가이드북(무장애대전여행)을 발간(5인 공저)하였습니다. 현재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이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소속 직장내장애인인식개선교육과 활동지원사 및 근로지원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실제 교육과 보수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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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ccb769c238@exam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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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h2403@hanmail.net'
임연정
1 month ago

누가 누구를 섬긴다라는 것은 사랑이 없으면 그저 짐으로 다가오지만, 사랑이 보이면 그 섬김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내 삶의 지표가 되어줌을 나는 평생 보았습니다. 언니는 나의 버팀목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