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낮은 시선으로부터] 밈의 경계, 그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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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을 어깨에 짊어진 채 경쾌한 춤을 추는 Coffin Dance라는 서아프리카 전통적인 장례 모습
관을 어깨에 짊어진 채 경쾌한 춤을 추는 Coffin Dance라는 서아프리카 전통적인 장례 모습/ⓒ유튜브 화면 캡처/https://www.youtube.com/watch?v=EccrNNQoTSk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위원]

이용석 편집위원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위원

트둥이. 한 지인이 내게 붙여준 별명이다. 틈만 나면 트위터를 들여다보는 버릇 때문인데 내가 수천수만의 팔로워를 거느린 파워 트위터리안도 아니어서 영 민망한 별명이기는 하다.

다른 사람들이 포털이 제공하는 정보를 얻는다면 난 그저 내가 정한 팔로잉들이 전하는 정보를 읽는다. 이 정보들은 팔로잉의 가공을 통해 전해지는데 그들의 간단한 평가가 추신(追伸)처럼 붙는다. 이 추신을 읽는 맛이 여간 쏠쏠하다. 난데없는 비난도 있고 정확한 평가와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비판이 곁들여진 글도 제법 있으며, 세상의 얽히고설킨 일들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까지 뚝딱 제시하는 명징한 글을 발견할 때면 강호의 은둔 고수를 만난 듯 신비롭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밈화 그 얄팍한 정서놀이

그렇게 트둥이로 지내는 중에 우연히 무거운 관을 짊어진 남성들이 밝고 쾌활하게 춤을 추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게 되었다. 죽음을 기리는 방식이야 세상 천차만별이어서 희로애락 그 어떤 감정으로도 가능할 텐데, 이 의식은 Coffin Dance라는 서아프리카 전통적인 장례 풍습으로 고인의 이승 길을 즐거운 여행인 듯 관을 어깨에 짊어진 채 노골적으로 경쾌한 춤을 추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관짝 소년단’이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춤을 추며 죽음을 대응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줘 국내외 수많은 커뮤니티 유저들의 다양한 방식과 표현으로 패러디 재료로 사용되었다. 영상 합성으로 상황이나 현상을 조롱하는 데 주로 쓰였는데, 사람들은 이를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해석하고 인터넷 밈(internet meme)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밈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가 1976년 출간한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다.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미메시스(mimesis)와 유전자(gene)의 합성어인 밈(meme)은 유전자처럼 자기복제로 번식하며 대를 이어서 전해져 오는 사상이나 종교, 이념 같은 정신적 사유로 정의된다. 즉, 믿음이나, 신, 예술, 과학 등은 모두 밈으로써 언어나 책, 예술 작품, 경험 등을 통해 사람들의 뇌에서 뇌로 퍼져 스스로 복제되고 진화하며 이어간다는 것이다. 이제 밈은 리차드 도킨스가 주장한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원래의 개념에서 특정 콘텐츠를 대중이 따라 하고 놀이로 즐기는 현상을 일컫는 문화용어가 된 셈이다.

약자 혐오를 유행시키는 밈화(化), 그 위험한 조짐

물론 성공한 밈이 되기 위해서는 재미도 중요하지만, 장수(오래 남는 것), 다산성(넓게 퍼지는 것), 복제의 정확도(같은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가 담보되어야 한다. 유전자는 3세대 정도를 거치면 거의 사라지지만 밈은 훨씬 더 오래 생존한다. 소크라테스의 유전자가 지금까지 남아있을 리가 없지만, 그의 정신, 즉 밈은 여전히 살아남아 급기야 나훈아의 노래에도 ‘테스 형’으로 등장할 정도다.

그런데 밈과 유전자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인위적인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자기복제와 돌연변이를 통해 진화해 왔으나 유전학이 발달하면서 조작이 가능해진 것처럼 밈 또한 특정 집단에 의해 매우 빠르고 광범위하게 조작되고 전파될 수 있다. 특정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인위적인 유전 조작이 상상할 수 없는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처럼 목적의식을 갖고 밈을 조작 재생산하여 유포시켜 나갈 때도 그 목적의 정당성에 상관없이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약자 혐오는 밈이 아니다

한때, 트윗에서 ‘혐오를 멈춰주세요’라는 밈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특정한 주어에 ‘~혐오를 멈춰주세요.’라는 문구를 붙이는 방식인데 SNS 상에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에 조롱하듯 덧대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장애인 혐오를 멈춰주세요’ 같은 표현이어서 얼핏 차별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지만, 혐오 금지 주장을 비꼬는 대꾸여서 점점 혐오의 대상인 약자들을 조롱하는 방식으로 이용되었다.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번지는 약자를 향한 악의적인 밈은 단순히 재미나 대단찮은 놀이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차라리 노골적 악의를 가지고 쓴 말이라면 그 악의성을 비판하면 된다. 그러나 맥락 없는 무한복제를 통해 퍼지는 밈은 윤리적인지 비윤리적인지를 따지는 것조차 ‘웃자고 하는데 죽자고 덤빈다’는 비아냥만 살 뿐이다.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퍼지는 약자를 향한 조롱 섞인 밈을 지적하고 경고하는 꼰대 노릇 하는 나 같은 트둥이도 한 사람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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