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쉬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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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교사(사진 오른쪽)가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시각장애인 밴드, ‘플라마’가 2019년 11월,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최 'V.I.P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장면 / 사진 = 유튜브 캡처
▲안승준 교사(사진 오른쪽)가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시각장애인 밴드, ‘플라마’가 2019년 11월,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최 'V.I.P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장면 / 사진 = 유튜브 캡처

[더인디고= 안승준 집필위원] 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노래를 엄청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즐겨 부르다 보니 어쩌다 밴드 보컬까지 하고 있다. 물론 밴드를 한다고 해서 갑자기 노래 실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나의 노래 부르기는 특기 아닌 취미다.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그래도 공연을 할 때는 온 힘을 다해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이 있다. 이를 위해 나름의 연구와 노력을 하는데, 역시 가장 어려운 것은 호흡이다. 고음을 내거나 멋진 음색을 만들기도 어렵지만, 노래 한 곡을 완곡하기 위해서는 호흡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처음엔 악보에 작게 그려진 숨표의 의미를 몰랐다. 숨을 쉬라는 표시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굳이 그 시점에 쉬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숨이 차지 않으면 계속 부르다 목 끝까지 숨이 차면 그제야 억지로 숨을 쉬곤 했다. 혼자 흥얼거리거나 노래방에서 부를 때는 그래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너무 숨이 차면 그만 불러도 되었고 목이 쉬거나 하면 노래방에서 그만 놀아도 되었다.

난 노래를 불렀다기보다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무대는 그렇지 않았다. 나 혼자 즐기다 내가 힘들다고 그만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내가 즐거운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나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야 했다. 고음을 내는 것도 멜로디를 부드럽게 이어가는 것도 좋은 발성을 유지하는 것도 나 나름의 최선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악보에 표시된 숨표를 정확히 지켜야만 했다. 숨이 모자라서 악보대로 부를 수 없다면 나만의 숨 쉴 공간을 분명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무조건 꾹 참고 부르는 것은 한 곡을 완곡 하는 것에도 문제가 생겼지만 때로 다음 노래를 부르는 것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적당히 쉬어주고 숨을 쉬어야만 노래도 공연도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내 어릴 적 좌우명은 ‘하면 된다’ 였다. ‘도전’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었고 ‘열심히’는 어느 상황이라도 필수 덕목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쉴 때도 열심히 해야 했고 남들보다 많이 쉬는 것은 나태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온종일 그리고 일주일 혹은 한 달을 빠짐없이 빼곡하게 스케줄을 채우면서 일하면 얻게 될 것이라는 특별한 성취는 공허한 허탈함을 동반했다. 쉴 틈 없이 강한 운동을 하면 최고의 체력과 몸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근육통과 부상이 찾아왔다.

사는 것은 노래방에서 악을 지르는 것과는 달랐다. 힘들다고 쉬고 싶을 때 기계의 멈춤 버튼을 누르듯이 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노래방에서 나가듯이 중간에 도망갈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무대에 서 있는 것처럼 나의 삶 또한 나름의 숨표를 지켜가며 완주해야 하는 하나의 공연이었다.

요즘 예상치 못했던 부상으로 스케줄을 줄이고 운동의 강도도 매우 약하므로 조절을 했다. 몸이 나아지고 있는 지금 난 이전보다 조금 더 즐거운 맘으로 새로운 스케줄들을 준비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적당한 시기에 내게 주어진 삶의 숨표 덕분인 것 같다.

인생은 길고 긴 시간의 무대이다. 무사히 마치려면 내 나름의 숨표를 적당한 곳에 찍어야 한다. 오래 달리려면 충분히 쉬어야 하고 멋지게 노래 부르려면 숨표를 지켜야 한다. 멋지게 살고 싶다면 쿨하게 쉴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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