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해운대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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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해변 ⓒ전윤선
▲해운대 해변 ⓒ전윤선

[더인디고=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부산은 장애인 등 휠체어 사용하는 관광 취약계층이 여행하기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부산역까지 열차도 수시로 다니고 비행기로도 이동할 수 있다. 부산에 도착해서도 이동의 문제는 타지역에 비해 수월한 편이다. 지하철, 저상버스, 장애인 콜택시, 저상시티투어버스 등 대한민국 제2의 도시답게 다양한 교통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산의 저상버스는 2021년 기준 728대, 28.9%로 대구, 대전 등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저상버스가 좀 더 보급된다면 그럭저럭 다닐만 한 여행지이다. 부산은 관광자원도 풍부해 나열하기 벅찰 정도로 여행할 맛이 나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부산을 여행할 때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둘러볼 것인지 동선을 잘 체크해 여행하는 것도 필요하다.

부산의 명소 여행지 중 해운대를 빼놓을 수 없다. 너무 유명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휠체어 사용 장애인 등 관광 취약계층의 동선을 고려해 여행하면 여행이 한결 매끄러워진다. 동백섬, 해운대, 해운대 전통시장, 미포항, 블루라인파크 미포정류장, 다릿돌 전망대까지 여행코스를 잡았다. 해운대와 동백섬은 누구나 한번쯤 꼭 가보고 싶은 곳이고 해운대는 열린 관광지로 선정돼 편의시설 등 접근성이 한결 나아졌다. 먼저 동백섬부터 둘러본다. 동백역에서 동백섬까지는 8백여 미터로 동백사거리를 지나 동백로를 따라 걷다 보면 섬 입구 오른쪽으로 더 베이 101이 있다. 이곳은 휠체어 탄 사람도 무리 없이 접근 가능하고 식당과 장애인 화장실까지 있어 동백섬 진입 전 화장실을 들렀다 갈 수 있다. 더 베이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동백섬 산책로가 시작된다. 오른쪽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동백나무가 무성해 “꽃피는 동백섬에” 노래가 입안에서 맴돈다. 산책로를 따라 키 큰 나무가 우거져 터널을 만들고 한여름 땡볕을 막아준다. 산책로 주변 벤치에 앉아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느껴진다.

▲누리마루 1층 자유광장 ⓒ전윤선
▲누리마루 1층 자유광장 ⓒ전윤선

산책로를 따라 걷으면 남쪽 절벽에 누리마루APEC하우스를 만날 수 있다. 2005년 아시아 태평양 21개국 정상들이 모여 APEC정상회의와 오찬을 한 곳이다. 누리마루 3층에는 당시의 정상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회의한 테이블을 전시하고 있어 그때를 엿볼 수 있다.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면 야외 자유마당과 평화마당 풍경이 펼쳐진다. 자유마당에는 카페도 있어 커피 한 잔 시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수영만 풍경을 직관할 수 있다. 눈길 가는 곳마다 바다와 도심의 풍경은 조화를 이루고 기다랗게 놓인 광안대교는 인간의 문명에 감탄사를 난발하게 한다. 오륙도와 이기대 스카이 워크도 아스라이 아른거려 마치 현실에서 비켜난 것 같은 경이로운 풍경이다. 한참을 바다 멍하다 정신을 차리고 발길을 이어간다. 누리마루 바로 위에는 하얀 등대 전망대가 있다. 바다와 등대는 젓가락 세트처럼 잘 어울린다.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은 또다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바다와 하늘은 왜 서로 닮아가는 걸까. 바다 가득 하늘을 들여 놓은 전망이 근사하다.

▲동백섬 산책로 ⓒ전윤선
▲동백섬 산책로 ⓒ전윤선

등대 전망대를 나와 발길을 이어가다 보면 동백섬 산책로 끝에 섬 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이곳은 최치원 선생의 동상이 있는 전망대와 광장이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가팔라 반드시 동행인과 함께 가야 한다. 광장에는 최치원 선생의 일대기가 나열돼 있다. 최치원은 열두 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등과 했고 스물아홉에 고국인 신라에 돌아왔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외국 유학은 쉽지 않지만 당시 타국의 문물을 배워 고국에 돌아오면 인재로 등용됐다고 한다. 광장에서는 주변 풍경이 막힘없이 보여 체증이 내려가듯 시원하다.

다시 해운대로 향했다. 동백섬 입구 부산 웨스틴조선호텔과 송림공원 사잇길로 가면 바로 해운대로 이어진다. 해운대는 놀거리, 볼거리, 체험거리까지 풍성해 장애인도 많이 찾는 곳이다. 해운대는 열린관광지로 선정돼 접근성이 빠르게 진화했다. 송림공원에서 미포항까지 인생사진 찍을 수 있는 곳이 즐비하고 곳곳에 버스킹 장소도 많아 거리의 악사가 귀를 호강시켜 준다. 애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 휠체어 타고 천천히 걷는 사람, 연인끼리, 친구끼리, 혹은 가족끼리, 외국인까지 해운대는 모든 사람을 다 품어준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미처 담을 수 없는 풍경은 해운대 파노라마로 담아낼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돼 있다.

▲수중 방파제 조형 등표 ⓒ전윤선
▲수중 방파제 조형 등표 ⓒ전윤선

해운대 해수욕장 바다 한가운데 근사한 조형물이 여유롭게 서 있다. 이 조형물은 수중 방파제 조형 등표로 단조로운 바다에 포인트를 찍어준다. 물 위에서는 수중 방파제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선박이 방파제 위를 통과할 때 물 밑에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부딪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해운대 바다 한가운데 양쪽 끝에 항로표지 시설인 조형 등표를 설치해 수중방파제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다. 조형 등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각 작품이어서 해운대의 예술성을 높였다. 조형 등표는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의 형상과 세계로 도약하는 사람을 형상화한 “세계를 바라보다”라는 작품이다. 해운대에서는 꼭 가봐야 하는 포장마차촌도 있다. 해운대 낭만을 술잔에 붓고 부딪치면 낭만이 별똥별처럼 뚝뚝 떨어진다.

해운대 중앙에는 아쿠아리움도 있다. 아쿠아리움은 해운대를 찾는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거대한 수족관에는 다양한 수중 생물이 헤엄친다. 어항 속 물고기를 보고 있자니 문화체육관광위에서 활동하는 시각장애인 김예지 국회의원의 대정부 질문이 떠오른다.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환경에 따라 성장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코이의 법칙은 작은 어항 속에서는 10cm를 넘지 않지만 수족관에서는 30cm까지 크고 강물에서는 1m가 넘게 자라나는 그런 물고기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기회와 가능성의 성장을 가로막는 다양한 어항과 수족관이 있습니다. 이러한 어항과 수족관을 깨고 국민이 기회의 균등 속에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강물이 되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장애인의 삶도 아쿠아리움 어항 속에 있는 물고기와 크게 다르지 않고 무장애 여행 환경과 인식도 마찬가지다. 무장애 여행의 접근권은 사방이 막혀 자유롭지 못하면 세상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쿠아리움을 나와 해운대 시장으로 갔다. 해운대 전통시장은 1910년부터 행상 노점이 모여 해운대 시장이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 시장 상가들은 문턱을 낮춘 곳이 많아져 상가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늘었다. 시장에 왔으니 떡볶이와 순대, 부산 어묵을 꼭 먹어봐야 한다. 요즘 시장은 미슐랭 별을 단 곳도 있다. 미슐랭 별을 달지 않았더라도 시장표 먹을거리는 맛도 있고 정겹다. 게다가 시장만의 정을 덤으로 가져올 수 있어 따스하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해운대 해변 북쪽 끝자락 미포항에 도착했다. 미포항은 해운대 바다에서 잡아 온 싱싱한 횟거리를 좌판에 펼쳐놓고 판매하는 곳이다. 회 맛도 일품이지만 가격도 엄청 착하다. 포구 좌판에서 먹는 회맛은 왠지 더 맛있고 지역 주민들의 치열한 삶에 깊이 들어가는 것 같다. 미포항에서 저렴하게 회 한 접시 먹고 해운대 블루라인 파크 미포 정류장으로 발길을 이어간다. 미포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는 볼거리도 많다. 왼쪽으로는 해운대의 렌드마크 시그니엘 부산이 있다. 해운대의 랜드마크 ‘엘시티(LCT)’ 타워에 장애인 화장실 등 편의시설 접근성이 좋아 화장실 볼일 보고 가기 딱 알맞은 곳이다.

▲미포정류장 공원 ⓒ전윤선
▲미포정류장 공원 ⓒ전윤선

블루라인 파크를 탈 수 있는 미포 정류장까지는 옛 동해남부선 철길을 따라 공원화했다. 동해남부선 철길은 일제 강점기인 1935년 포항 부산 구간이 개통되면서 자원 수탈과 일본인들의 해운대 관광을 위해 만들어졌다. 해방 후에도 포항과 경주, 울산과 부산을 잇는 교통수단으로 역할을 해내다가 몇 년 전 복선 전절화로 열차가 다니지 않게 됐다. 옛 동해남부선 철길은 강릉까지 오가는 기차도 운행했다. 철로가 폐쇄되기 전 해운대역에서 강릉까지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여행하려 몇 번을 시도했으나 기차에 전동 휠체어 좌석이 없어 물거품이 됐다. 그러고 보면 동해남부선은 나의 로망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려 아쉬움이 남는 열차다. 폐선로가 된 동해남부 철길은 지금은 산책로와 쉼터, 녹지 조성으로 그린레일웨이 블루라인 파크로 조성됐다.

▲미포~청사포~송정에 이르는 4.8km 길 ⓒ전윤선
▲미포~청사포~송정에 이르는 4.8km 길 ⓒ전윤선

블루라인 파크는 해운대 미포~청사포~송정에 이르는 4.8km 구간을 오가는 열차 여행이다. 옛 철길을 따라 데크길이 마련돼 있고 여러 가지 조형물과 편의시설이 설치돼 해운대 해양관광벨트의 중심이 됐다. 빼어난 해안 절경을 따라 해운대 해변열차와 해운대 스카이캡슐을 운행하는 새로운 관광 명소다. 해운대에 오면 누구나 블루라인 파크에서 열차를 타고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며 기차여행의 낭만을 꿈꾼다. 아쉽게도 전동 휠체어 사용인은 수동휠체어로 갈아타야만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모두를 위한 시설에 전동휠체어 이용인은 왜 매번 제외하는지 화가 난다. 휠체어는 장애 특성에 맞게 세팅된 장애인의 몸과 같은 보조기기다. 시력에 맞게 써야 하는 안경처럼. 그럼에도 케이블카나 모노레일 같은 관광 콘텐츠에는 다양한 신체를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보장구를 막무가내로 요구한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법이 개정돼 케이블카나 모노레일에 접근할 수 있게 됐지만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 때 다양한 휠체어의 접근을 고려하지 않는 조항을 만들어 시설업자에게 면죄부를 준다. 이러니 모법을 아무리 개정한들 무슨 소용 있겠나 싶다. 오히려 정부가 차별을 방조하고 고착화하는 데 앞장서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런 면에서는 블루라인파크 해변열차는 차별을 부추기는 관광시설이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여행할 수 있는 환경은 장애인에게 필요하다. 탈 수 없는 해변열차에 미련을 버리고 철길을 따라 휠 라이딩으로 대신한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느 하루도 하찮은 하루가 없다. 여행은 빽빽한 틈 없는 마음에 넓은 공간을 만들어 내는 우연이다. 우연이 쌓이면 필연이 되는 시간이 여행이다. 해운대 바다를 걸으며 어쩌다 자연의 시간에 끼어들어 무방비하게 노을을 보게 된 시간. 마음을 가다듬고 언젠가는 희미해질 이 순간을 사진으로 붙잡아 두며 다시 발길을 옮겨본다.

무장애 여행 팁

  • 가는 길: 지하철 2호선. 동백역, 해운대역 / 두리발 장애인 콜택시(전화: 051-466-8800)
  • 접근가능한 식당: 해운대 해변 잔뜩 골라먹는 재미
  • 접근 가능한 화장실: 해운대 해변 다수
  • 접근가능한 숙박: 토요코인호텔 부산해운대2호점 무장애 객실 3개(전화: 051-741-1045) / 더펫텔프리미엄스위트호텔 무장애 객실 1개, 애견동반 가능(전화: 051-999-2000)

[더인디고 THE INDIGO]

사)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무장애관광인식개선교육 강사. 무장애 여행가로 글을 쓰며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활동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접근 가능한 여행은 모두를 위한 평등한 여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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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cc0d3bd227@exam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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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mong@hanmail.net'
권오욱
7 months ago

좋은 정보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unk137@naver.com'
박정애
7 months ago

해운대옆 청사포는 아름다운 포구로 추천들 하는데 해운대만 즐겨찾기 하다가 이번에 8월달에 갔다왔는데요 장애인 친구한테는 비추ㆍ빨간등대 계단 하얀등대 계단 실망스럽고 옛 전철같은 기차길도 절차복잡 포기 ᆢ윤선대표님 화이팅 !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