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정의 정정당당] 경험전문가는 모든 경험의 전문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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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뒷주머니에 Support( 서포트, 지지하다)라는 글이 쓰여있다. ⓒ픽사베이
▲바지 뒷주머니에 Support( 서포트, 지지하다)라는 글이 쓰여있다. ⓒ픽사베이

[더인디고=조미정 집필위원]

▲조미정 더인디고 집필위원
▲조미정 더인디고 집필위원

요즘 들어 정신장애계에서 정신장애 동료지원가를 ‘경험전문가’로 부르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청주정신건강센터의 활동가들은 인권위와 협업한 ‘정신장애 인권토크 캠페인’에서 경험전문가를 정신장애를 선경험하여 다른 당사자를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으로 말하고 있다.

내가 몸담은 후견신탁연구센터도 ‘정신장애 당사자 전문가 플랫폼 사업’을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지원 아래 진행하고 있다. 정신장애 당사자의 경험과 지식이 당사자 집단 전체의 자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당사자나 동료에 머물던 정신장애인을 경험의 ‘전문가’로 칭하는 것은 전복적인 시도로 볼 수 있다. 전문가라는 말은 의사, 임상심리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 등 정신건강 관련 전문 자격증을 취득한 인력에만 붙여지는 칭호였다. 당사자는 전문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수혜자’였고, 어찌저찌 정신건강 서비스 제공 체계에 들어가더라도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한된 역할과 책임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 활동가, 동료지원가와 다른 직역 간의 불평등을 일으켰던 전문가라는 칭호를 당사자에게 돌려준다니, 그 얼마나 낭만적인 발상인가! 홍길동이 부잣집의 재물을 가져다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 흐름, 좋다. 하지만 어쩐지 찝찝하다. 마침 정신장애 독립언론 ‘마인드포스트’에 날카로운 글이 올라왔다. ‘전문가를 흉내내는 동료지원가들에게’(서늘 맞이 달, 2024)라는 제목의 글에서, 필자는 “동료가 아니라 내가 이끌어야 할 선생님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절대 당연한 것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일도 아니다.” “동료성이 없는 동료상담가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라며 현재의 흐름을 비판하고 있다.

‘경험전문가’ 흐름은 정신장애 당사자를 자신의 역경과 회복 경험, 즉 당사자성을 다른 직역과 협력 및 견제를 이루는 동등한 전문가의 한 축으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험전문가’는 어떤 경험의 전문가인가?

‘경험전문가’라는 칭호는 정신장애 당사자가 이전에 정신적 어려움을 ‘경험’했고 스스로 혹은 타인의 힘을 합쳐 고생에서 회복하여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다. 즉, ‘경험전문가’는 ‘자기 경험의 전문가’이지, ‘타인의 경험의 전문가’라거나, ‘모든 경험의 전문가’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일을 직접적으로 알거나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동료지원가 과정을 정식으로 이수한 적이 없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모든 동료지원가 양성과정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평등한 위치에서 동료(흔히 내담자라고 하는)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동료지원가가 동료지원가라는 자리를 의식하여 동료를 가르치거나 동료의 경험을 단정하거나 판단하려는 일들을 막기 위함이다. 동료지원가와 동료가 동등한 동료시민으로서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동료지원가를 ‘경험전문가’라고 칭하는 흐름은 당사자로 하여금 자신이 ‘전문가’라는 의식을 더욱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전문가’라는 말에 포함된 권위, 아니 권위주의의 함정으로 동료지원가를 빠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이때 권위와 권위주의의 차이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권위는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이고, 권위주의는 “어떤 일에 있어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이다. 흔히 말하는 권위는 사람들이 스스로 따르도록 하는 힘이지, 강압적으로 내세우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권위주의에 가깝다.

그렇다면 동료지원가를 ‘경험전문가’로 만드는 권위는 무엇인가? 동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료의 슬픔을 이해하고 동료가 고생에서 회복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에서 올 것이다. 동료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단정 짓고, 멋대로 판단하는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허나 어떤 경우를 보면 자신의 ‘권위’만 내세우지, 당사자와 동행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동료지원가가 있다. 나는 한 동료가 간단한 상담 중에 울며 뛰쳐나가는 것도 보았다.

앞서 말했듯 동료지원가의 권위는 어려움을 경험하는 동료를 마음을 다해 경청하고 지원하는 일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동료지원가를 ‘경험전문가’로 만들어줄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동료지원을 받는 당사자 동료이다. 동료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동료지원가는 ‘경험전문가’가 될 수 없다.

동료지원가가 자신의 전문가성만 내세울 때, 그는 동료의 경험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타인의 경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전문가를 ‘경험전문가’로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을 ‘경험전문가’로 부르는 일도 좋지만, 전문가로서의 권위는 당사자 동료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명심하고 동료 앞에서 신중한 언행을 보일 필요가 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정신적 장애인의 당사자주의는 아직 미약하다. 정신적 장애인이 정말 당찬 당사자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미약한 당사자주의가 창대해질 수 있도록 자그마한 글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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