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무례한 시대, 태아살해 욕망의 프릭쇼(freak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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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무례한 시대, 태아살해 욕망의 프릭쇼(freak show)
▲이치카와 사오의 '헌치백'은 2023 아쿠타카와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에게 ‘당사자성 소설’이라는 극찬과 함께 일본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 더인디고
  • 이치카와 사오의 ‘헌치백’, ㅋㅋㅋ 웃으며 읽는 위악적 글쓰기

[더인디고 = 이용석 편집장]

소설은 사람을 온전히 드러내고 환대(歡待)하기 위한 찬양의 노래여야 한다. 그래서 소설적 글쓰기는 ‘무엇’을 이야기하기 보다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가 본질이라고 한다면 일본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통해 화려하게 등단한 이치카와 사오의 ‘헌치백((Hunchback)’은 기꺼이 본질에 닿은 소설이다. ‘헌치백’에서 보여준 소설적 글쓰기는 기존의 질서나 뻔한 도덕적 경계를 송두리째 뒤집고는 ‘어떻게’ 쓸 것인지에 천착한다.

▲소설가 이치카와 사오 ⓒ 산케이신문

소설은 임신과 태아 살해를 꿈꾸는 황당하고 도발적인 이야기다. 곱사등이를 뜻하는 ‘헌치백’이라는 제목부터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니컬하고 공격적이며, 발칙하다. 이치카와 사오는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샤오의 장애 상태를 아주 꼼꼼히, 그리고 되풀이해 묘사한다. 치밀한 묘사의 반복을 통해 ‘불쌍하고 비극적인’ 샤오의 ‘비정상 몸’을 “신기하고 기묘하고 놀랍고 무섭고 경이로운 존재”로 마침내 드러낸다. 그 과정은 프릭 쇼에 출연했던 기묘한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장애 극복’ 대신에 ‘장애를 과시’했다고 봤던 일라이 클리어의 주장과 묘하게 겹친다.

1인칭 화자인 이자와 샤키는 곱사등이처럼 뒤틀린 척추 때문에 코르셋을 입고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며, 호흡기를 달아야 하며, 가래제거기를 수시로 써야 일상이 가능하다. 근육 한 점 없이 가늘고 힘없는 팔로는 책을 들기조차 힘들며 식사나 신변처리, 샤워조차도 타인의 조력을 받아야 하는 증증장애를 갖고 있다. 게다가 호흡기에 연결하기 목에 꽂은 삽입관 때문에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래서 샤키의 일상은 ‘정상성’과는 먼 외모나 신체의 조건과는 상관없는 공간인 인터넷에 남성으로 가장해 섹스 클럽 잠입취재기 따위를 상상해 원고료를 챙기고 트위터에 익명의 계정을 만들어 평범하면서도 도발적인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짓으로 전부다. 그리고 꿈꾼다.

“평범한 인간 여자처럼 아이를 잉태해서 중절하는 것.”

임신과 태아 살해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따지고 보면 세상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흔하게 선택하는 평범한 행위일 뿐이라느 샤키의 변명은 옹졸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해서 샤키의 황당하고 부도덕한 태아 살해 욕망의 근원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 사회에서의 중증장애가 있는 여성의 약자성에 있다는 사실은 결코 달라지지는 않는다. 임신할 수 없는 몸으로 규정된 중증장애를 가진 여성의 사회적 역할의 한계라는 약자성과 더해 유전적 장애 거세를 위한 국가의 합법적 태아 살해에 대한 위악적(僞惡的) 복수 욕망은 되려 타당하기까지 하다.

작가는 샤키의 위악적 욕망의 실현을 위해 그룹홈을 운영할 수 있는 규모의 건물을 부모의 유산으로 선물하고 넉넉한 현금자산까지 챙겨줘 불로소득의 조건을 마련해 준다. 샤키는 자신의 소유인 그룹홈 <잉글사이드>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가난한 청년인 다나카에게 불온한 내용으로 가득한 트위터 계정을 들키자 내친김에 욕망 충족을 위한 거래를 제안한다.

샤키의 욕망을 위한 거래는 이루어졌을까? 아니 이치카와 사오는 왜 샤키로 하여금 ‘남성 약자’와의 연대 대신에 거래를 선택하게 했을까? 답은 소설 말미에 독립된 구조로 덧댄 단락에 있다. 샤키이기도 하고 작가인 이치카와 사오이기도 한 상상 속의 또 다른 존재인 샤카는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죽이고자 했던 이를 언젠가 / 지금 잉태할 것”이라는 독백을 통해 살아있는 동안의 영속적인 욕망이지만 한없이 미뤄질 수밖에 없는 욕망임을 고백한다.

제법 근엄하게 혹은 겸양을 보여야 할 시상 소감에서 느닷없이 ‘독서 배리어프리’를 주장할 만큼 이치카와 사오는 천진난만하다. 산케이신문에 발표한 기고문에서도 그는 ‘독서 베리어프리에는 좌우가 없다’고 잘라 말하고, 10대 중반부터 우익 보수지로 정평이 난 월간 ‘정론’의 골수팬인 자신에게 ‘배리어프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반일 좌파 활동가라며 비난하는 일본의 사회상을 투덜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영악하다. ‘헌치백’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뒤틀고 뒤집으려는 이치카와 사오의 글쓰기는 ‘당사자성 소설’이라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극찬과 함께 일본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장애가 있는 몸을 ‘과시’하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촘촘하게 직조해낸 이치카와 사오의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의 환대에 압도당해 버린 독자의 한 사람으로 나는, ㅋㅋㅋ 웃으며 다음 소설을 읽을 수 있을 테니까.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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