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랑의 이해(利害)와 이해(理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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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랑의 이해(利害)와 이해(理解)
▲권지명의 에세이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은 사랑에 대한 성장보고서이기도 하다. 권지명 작가(왼쪽)가 남편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저자 제공 및 더인디고 편집
  • 한 사회복지사의 ‘장애를 가진 사람’과의 사랑에 대한 성장보고서
  •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만을 원한 것은 아닌’, 딜레마 해설서

[더인디고 = 이용석 편집장]

권지명(이하, 글쓴이)의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_설렘>은 장애를 가진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후 결코 평범할 수 없었던 삶을 살아낸 한 여성의 일상이 기록된 에세이 형식의 성장보고서다.

뚱딴지같이 에세이를 굳이 성장보고서라 칭한 이유는 이 책에 담긴 사랑은 ‘장애’라는 조건이 전제되어 있으며, 이 불가역의 조건은 글쓴이의 전 생애에 배경처럼 스며 세월과 함께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애’는 이 책 곳곳에 숨어있는 부비트랩이 되어 독자의 마음을 사정없이 쥐고 흔들어댄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사랑의 이(利)와 해(害)이며, 사람들은 횃불처럼 활활 불타올라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마는 사랑의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두 극단의 잣대로 사랑을 이해하려 애쓴다. 소설가 이혁진은 소설 <사랑의 이해>를 통해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만을 원한 것은 아닌’, 딜레마를 지리멸렬한 두 커플의 뒤엉킨 감정의 변화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데 글쓴이 역시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 그 사랑의 선택이 여전히 유효한지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사랑의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는 마침내 자신이 선택했지만 그 사람과 굳이 잘 지낼 필요도 없으며, 이혼을 생각할 만큼 미워하지만 애써 화해를 요청할 필요도 용서할 필요도 없는 텅 빈 상태에까지 이른다. 이 모호하기 짝이 없는 글쓴이의 감정은 책의 제목이자 맨 마지막 이야기의 화두이기도 한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을 도와주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중략>…그래서 사회복지사가 됐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도 했나 보다.”

그리고 이내 고백한다.

“그런데, 고마운 사람이 되기는커녕, 나는 남편을 비롯한 많은 장애인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아왔다.”

23년 경력의 노회한 사회복지사가 ‘많은 장애인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아’왔을 리 없지만,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 혹은 착한 사람이고자 했다는 글쓴이의 솔직한 자기 고백은 독자 입장에서는 되레 고맙기만 하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계약관계가 사랑이라는 낭만적 감정 경험의 결과처럼 행세해온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근대 후반 독일의 사회학자 루만 등은 이를 ‘낭만적 사랑’이라 규정했다. 이는 셰익스피어 등 당대 문학의 주요 소재였던 사랑, 인간의 제도를 통해 제어할 수 없는 성질의 ‘열정’적 사랑과 결혼제도의 공존이 가능하도록 ‘도덕성’을 부여한 결과인 셈인데, 이 부질없는 ‘도덕성’은 사랑의 이해(利害)를 가늠하는 순간 위선임이 명백히 드러난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서른 두 개의 이야기를 네 단락으로 구분해 글쓴이의 연대기를 시간대로 펼쳐 놓고 있다. 기-승-전-결의 전통적 틀거리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쉬울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줄거리를 미리 상상할 수 있는 틈을 내어줌으로써 가독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러한 구성 방식은 담아낸 이야기가 상투적일 때에는 독서의 기대치를 낮추기 마련인데 이 책의 서사성은 독자의 예측가능성을 가볍게 물리친다. 이를테면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해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다는 뻔한 순애보는 없다. 그래서 책의 제목인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의미는 장애를 가진 남자를 만나 살고 있는 현재 삶과 또다흔 선택을 희구하는 마음까지 표현한 솔직한 심정이어서 중의적(中意的)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장치들응 독자들이 이 책을 선택하게 하는 주된 이유가 된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사회복지사로서 학습된 장애에 대한 인식이 가족의 관점으로 시나브로 전환되는 생생하고 치열한 과정이 담겨있는데, 이 생경하면서도 새로운 경험만으로도 감히 일독을 권하고 싶다. 고백하자면, 만약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부박한 감정의 굴레들이 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해(理解)되는 지를 나는, 여전히 몰랐을 것이다.

권지명 작가 – 사회복지사 부모님 딸로 30년, 사회복지사로 23년 살아왔다. 부모님으로부터는 항상 착하게 살아야 함을 배웠고, 학교에서는 고객의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장애인만 보이던 내 눈에 어느 날부터 한 남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사랑은 특별하며, 영원하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장애인의 적은 사회복지 종사자와 가족이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적이 되어 버렸다. 결혼 16년 차, 지금의 나는 그의 적군일까, 아군일까. 장애인의 아내로, 장애인의 동료로 살아오며 만난 ‘나’와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작가의 말 중에서…

■ 주요 책 판매처 – 알라딘 : 예스24 : 교보문고 :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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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man79@hanmail.net'
정영만
1 year ago

정말 좋은 평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더인디고의 무한한 발전과 성공을 응원하며 같이하겠습니다~~